스트라우스, 다비트 프리드리히 (1808~1874)

Strauss, David Friedrich

글자 크기
8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성서학자. 튀빙겐(Tübingen) 학파의 신학자로서 성서의 신화론적 해석(mythological inter-pretation)을 시도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1808년 1월 29일 독일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의 루트비히스부르크(ludwigsburg)에서 태어나, 1821년 블라우보이렌(Blaubeuren) 신학교에 입학하여 바우어(F.C.Baur, 1792~1860)에게서 배웠으며, 1825년 튀빙겐 대학교로 옮겨 슐라이어마허(F.E.D. Schleiermacher, 1768~1834)와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으며 공부하였다. 이후 1831년에 베를린에서 1년 동안 연구한 뒤, 이듬해 튀빙겐 대학교의 헤겔 철학 강사와 신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스트라우스는 헤겔 철학의 변증법적인 방법을 적용시켜 성서를 해석하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장을 이해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성서의 내용은 모두 계시를 받았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와 합리주의적 전제에 근거하여 일관성 있게 진행되던 당대의 역사적 연구를 '신화론적인 해석' 으로 봉합하고자 하였다. 1835~1836년에 2권으로 발간한 《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kritisch bearbeitet)는 이러한 그의 사상을 펼쳐 보인 저서이다. 그러나 스트라우스의 이러한 견해는 아주 격렬한 반응을 일으켜 이로 인해 튀빙겐에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반론을 제기하는 책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자 스트라우스는 1837년에 세 권으로 된 《논쟁서》(Streitschriften)를 펴내어 자신의 견해를 명료하게 설명하였다. 1838~1839년에 펴낸《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예수의 생애》 3판에서 그는 비록 자신의 견해를 완화시켰지만, 초판부터 일기 시작한 논쟁의 불길은 더 심화되어 교수직이 정지되고 연금까지 박탈당하고 말았다. 1839년에는 취리히(Zürich)에서 신학 교수직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74년 2월 8일 루트비히스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사 상〕 스트라우스는 합리적 감성과 종교적 심성을 조화시키려 하였던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서 큰 영향을 받아 성서의 신화론적 해석을 펼쳐 나갔다. 그는 《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예수의 생애》를 통해 복음서의 기록은 예수의 삶에 대한 역사적인 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며, 예수의 기적과 부활 기사를 비롯하여 복음서의 내용은 대부분 역사성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복음서의 내용을 신화로 간주하였는데, 역사적인 사실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 안에 영원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역사적인 사건 자체는 도외시하고, 언어에 담긴 신화적인 관념과 주제들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하였던 것이다.
스트라우스가 시도한 성서의 신화론적인 해석은 아이히호른(J.G. Eichhorn, 1752~1827), 가블러(J.P. Gabler, 1753~1826), 바우어, 드 베테(W.M.L. de Wette, 1780~1849)에 의해 이전에 주창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교적인 관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가운데 신화를 덧붙이거나 시적인 형태를 띤 사화(史話) 정도로 여겼을 뿐, 스트라우스처럼 복음서 전반에까지 철저하게 적용시키지는 않았었다. 스트라우스는 구약성서가 사화를 형성하는 주요 원천이며,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메시아적인 대망이 예수에게로 전이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비판 작업에 있어서 스트라우스는 공관 복음서가 서로간에 문학적으로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깨닫고 있지 못하였으며, 신화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 면도 있었다. 한편 그는 비평 작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끊임없이 전승과의 연관성을 추구하였다. 예를 들면,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로 알았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논쟁의 여지없이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는 예수가 점진적으로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예수 자신이 재림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의 의〕 스트라우스의 성서에 대한 신화론적인 견해는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라는 당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체계 대신에,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하려 한 시도였다. 그렇다고 예수의 모든 역사가 신화로 바꾸어 놓는다거나, 그 여부를 알기 위해서 모든 내용을 비판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복음서가 역사의 기록이고, 이 역사는 초자연적인 것이라는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합리주의는 이 두 전제 중에서 후자의 전제를 배척하는 것이었으므로, 연구가 진전될수록 전자의 전제에 가까워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전자의 전제 또한 복음서가 왜 역사의 기록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지가 철저히 점검되어야만 하였다. 그런 면에서 스트라우스의 《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예수의 생애》는 근대 신학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획기적인 저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프로테스탄트 신학)
※ 참고문헌  C. Perrot, Jésus et L'histoire(박상래 역, 《예수와 역사》,가톨릭출판사, 1985)/ E. Krentz,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 Fortress Press, 1975(김상기 역, 《역사적 비평 방법》, 한국신학연구소, 1988)/ F.F. Kearley · E.P. Myers · T.D. Hadley eds., Biblical Interpretation :Principles and Practices, Baker Book House, 1986(전외식 역, 《성서 해석학-그 원칙과 적용들》, 선린출판사, 1990)/ R.N. Soulen, Handbookof Biblical Criticizm, John Knox Press, 1976 & 1981(정태현 편역, 《성서비평 사전》, 성서와 함께, 1993)/ W.G. Kiimmel, The New Testament The History of the Investigation of its Problems, trans. by S. Mclean Gilmourand Howard C. Kee, Abingdon Press, 1972. 〔李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