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허버트 Spencer, Heher(18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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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스펜서.

허버트 스펜서.

영국의 철학자. 사회학자. 경험론자. 19세기 후반 고전적 자유 진보주의 사상가이자 종교 사회를 포함한 사회 진화론자.
1820년 4월 27일 영국 더비(Detty)에서 청교도인 아버지 월리엄 조지 스펜서(Willan George Spencer)와 감리교 신자인 어머니 해리어트 홈스(Hamiet Holmes)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소년시절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공부보다는 애벌레나 누에고치 사육 등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13세 되던 해부터 인근 지역에 부임한 극단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의 삼촌 토마스(Thomas Spencer) 목사에게서 약 3년 간 교육을 받았는데, 고어와 프랑스어 같은 어문 계통보다는 주로 물리학과 수학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청년 시절의 스펜서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였고, 어릴 적부터 엄격한 종교적 교육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지만 종교나 신앙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평소 친분을 나누었고 한때 결혼 상대자로 소문났던 소설가 엘리어트(G.Eliot, 1819~1880)와는 자주 신앙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스펜서가 신앙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해 주기도 하였다.
스펜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삼촌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학으로 고등 교육을 습득하였는데, 주로 자연 과학에 심취하였다. 1837년에 17세의 나이로 철도 토목 기사가 되어 약 8년 간 일하면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논평들을 여러 편 집필하였고, 회전 속도계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1853년 삼촌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은 뒤 집필에만 전념하였으나, 과도한 집필 활동으로 신경 쇠약에 걸려 극도로 허약해졌고 실어증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3년 동안 이탈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미국 등을 여행한 다음 돌아와 주로 하숙집을 얻어 칩거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브라이턴(Bighton)에 집을 사서 정착하였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03년 12월 8일 브라이턴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저서와 사상] 1842년에 그는 《비국교도》(Noncomfor-mist)지(詰)에 '정부의 적정 영역' (Proper Sphere of Gov-ermment)이라는 부제를 단 두 편의 편지를 기고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는 정부의 임무는 자연권을 보장하는 데 있으며, 정부가 이러한 임무 이상의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기고문은 훗날 그가 저술하게 되는 반체제적인 저서 《돈과 은행으로 매수하는 국가》(State Tam-pering with Money and Banks, 1858)와 《인간 대 국가》(Man Versus the State, 1884)의 전조와 같은 것이었다. 1848년에는 런던에서 (이코노미스트)(Exmmimim)지의 편집자로 활약하였다.
그가 최초로 펴낸 단행본은 1851년에 나온 《사회 정역학》(社會靜力學, Social Statics)으로, 여기에서 그는 정의란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가 있다는 자유 평등의 법칙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을 중심 원리로 하여 시민 사회의 특징을 연역해 냈고,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을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국가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권리 즉 자연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는 필요악이었다. 최소한의 국가론을 피력하고자 한 스펜서는, 《사회 정역학》에서 온전히 새로운 철학을 창출하려는 야망에 찬 과업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진화론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인간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적인 진화론의 체계를 이끌어 내고자하였고, 인류의 진화적 진보라는 이념을 암시하였다.
진화론 : 스펜서는 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향이 남달리 강했던 사람이었고, 실제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에도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를 대표하는 절대적인 그의 이념이 곧 진화론이었다. 스펜서가 명백하게 진화론을 개진한 것은 그의 논문<발전 가설>(Development Hypothesis, 1852)에서였다. 그는 하느님이 각각의 종(種)을 개별적으로 창조하였다는 종교적인 개념인 '종의 창조' 를 거부하고, 라마르크(J-B.de M. Lamarck, 1744~1829)처럼 기존의 종이 변형되어 새로운 종이 새로운 조건을 갖추고 생겨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1854년에 펴낸 《과학의 발생》(Genesis of Science)에서 '진화' 라는 용어를 철학적인 맥락 속에서 사용하였으며, 1857년의 논문 <진보 : 그 법칙과 원인>(Progress : its Laws and Causes)에서는 진화론을 정립하였다. 이는 1859년에 다원(C. Darwin, 1809~1882)이 《종의기원》(Ongin of the Species)을 발표하기 2년 전이었다.
폰 베어(K.E. von Baer, 1792~1876)는 스펜서가 진화를 동종(同種, homogenous)에서 이종(異種, heterogeneous)으로의 변화라는 의미로 규정하였다고 하면서, 스펜서가 주장한 진화론이 제반 진화론 중에서도 원천성을 지닌 까닭은 진화의 원리가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두루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 스펜서는 가장 하등한 형태의 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전을 추적하고자 했으며, 자연 법칙이란 모든 생명을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힘의 끊임없는 활동이라고 믿었다. 또한 인간 정신도 하등 동물의 단순하고 기계적인 반응에서 출발하여 추론하는 능력까지 발전했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히르슈베르거(J. Hirschber-ger)는 스펜서가 말하는 진화란 헤겔 철학과 같이 법칙이나 이념의 결과가 아니라, 무기체나 유기체 그리고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세계 안에 있는 것으로서 스스로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의 원동자 즉 모든 자연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이러한 스펜서의 입장이 실증주의자적인 시각이 아닌 형이상학자를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스펜서에게 있어서 진화는 하나의 우주적인 원리였으며, 이로써 인간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진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더 나은 진보로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철학 체계 : 스펜서는 철학을 사회 과학 기본 원리의 종합 즉 일종의 종합 과학으로 보았다. 그는 1850년부터 《종합적인 철학 체계》(The System of Synthetic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상의 종합적인 저서라 할 수 있는 방대한 연작서(magnum opus)를 저술하였는데, 총10권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서를 통하여 그는 심리학 ·형이상학 · 생물학 · 사회학 · 윤리학 등에서 진화의 원리를 응용하여 개진하였다.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 1855)에서는 정신의 진보라는 라마르크식 설명을 개진하면서, 지성이란 환경에 적응하는 유기체들의 세대 교체 속에서 마음이 최종적으로 변형되어 발전된 하나의 능력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제1 원리》(First Principles, 1862)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거론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과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은 일반적인 법칙으로부터 연역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경험의 종합이라기보다는 경험적 현상에 따라오는 진리였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진리들은 완전하게 파악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와 같이 형성된 실재의 본성에 관한 최종적인 물음을 '알 수 없는 것' 이라고 하였다. 종교도 또한 '하느님이 존재하는가? , '어떻게 하느님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을 산출하였는데, 이러한 문제들 역시도 일종의 '알 수 없는 것'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스펜서는 무신론자라기보다 불가지론자에 가까웠다. 그는 종교적 교의를 거부하였으며 하느님의 존재 문제를 자신의 진화론과 양립시켜 거론하지는 않았다.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 1864, 1867)에서는 다원의 자연 도태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처음으로 적자 생존' (適者生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라마르크식의 변형설을 적용하여 유기체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펜서는 《사회학의 원리》(Principles of Sociology, 1876~1896)에서, 사회는 어떻게 기능의 분화 과정이 발생하고, 어떻게 권위주의와 획일화와 신분으로 특징지어지는 군대식 사회로부터 자유와 다양성과 계약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산업주의적인 유형의 사회로 점진적인 변형이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는 인간 사회를 하나의 사회 유기체로 보고 상세히 분석하였는데, 이를 설명하는 열쇠가 바로 개인주의였다. 그는 사회 진화는 개별화의 심화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 사회는 노동 분화의 발전을 통해 차별이 없는 군집 상태에서 복잡한 문명 상태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또 진보 뒤에는 파멸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회주의와 전쟁이 소멸된 후에야 비로소 개인주의가 도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종교적 진보에 대하여 설명함으로써 적어도 영국에서는 최초로 '종교 사회학' (sociology ofreligions)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기원은 혼이나 조상들을 예배하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는 인류의 가장 낮은 단계인 원시인들의 종교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이들의 종교는 거의 종교적인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종교의 진보는 보다 문명화된 종교에서 드러난다고 한 스펜서는, 종교가 성숙한 통찰과 제도적으로 복잡한 형태로 진보해왔음을 역사가 입증한다고 역설하였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Ethics, 1879~1893)에서는 자유평등의 법칙에 진화론의 원리를 적용시켜, 인간 개개인은 선이든 악이든 간에 그들 자신의 행위의 충만한 결과를 체험해야 한다고 하였다.
[평 가] 스펜서의 개인적인 성격은 그의 철학적 특성을 이루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권위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며, 과거 · 신앙 · 공적인 견해 · 위대한 이름 · 교의 등에도 무관심하였다. 그는 또 결코 자신의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남의 사상을 인용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본딴 것이라면 불가지론뿐이었다. 스펜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철학에 기여하였다. 첫째는 고전적 자유 진보주의의 철학적인 기초를 마련하는 데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저서 <사회 정역학》은 흡스(T. Hobbes,1588~1679)와 로크(J. Locke, 1632~1704)의 저서에 못지않은 논변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번째로 기여한 것은 그의 진화론적 이념이다. 그의 진화론은 다원이나 헤켈(E. Haeckel, 1834~1919)보다 앞서 그들과 같은 경향의 진화론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후대에 와서는 '사회 진화론 혹은 '사회 다원주의' (Social Darwinism)로 알려진 철학의 창시자이자 '적자 생존'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다원이 아니라 스펜서였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사회 진화론' 혹은 '사회 다원주의' 에 그의 진화론이 주창자로서의 역할을 하였을지는 모르나 그다지 중요한 발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이론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많은 논쟁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저서들을 통하여 종교 문제에도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종교사를 단일한 주제로 선정하여 심도 있게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 종교 사회학 ; 진화론)
※ 참고문헌  P. Ginestier, Dictiomaire des philosophes K~Z, Denis Huesman ed., Universitaires de France, 1984, pp. 2679~2684/ E. Craig ed.,Encyclopedia ofPhlosophy 9, Routledge, 1998, pp. 87~891 J.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I Herder Freiburg, 1958, pp. 487~4891 G.W.Trompf, (ER) 14, pp. 4~5. [梁蕙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