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전례 時間典禮 [라]liturgia horarum [영]liturgy of the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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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 수도자들은 하루를 여러 순간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 는데, 이를 가리켜 시간 전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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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 수도자들은 하루를 여러 순간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 는데, 이를 가리켜 시간 전례라고 한다.


하루를 여러 순간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바치는 기도. 모든 성직자들에게는 의무이며, 수도자들은 수도회의 회헌으로 규정한 경우 이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간 전례 기도가 하나로 엮어진 예식서를 《성무 일도서)(0ficimiditimm) 또는 《시간 전례서》라고 한다.
: I . 용어와 의미
교회 역사에서 시간 전례를 가리키는 여러 용어들은 그 나름대로 시간 전례의 본뜻을 드러내 주고 있다. '시간 전례' 라는 말은 1959년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교회의 시간 기도를 가리키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하여 제2 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시간' 은 하루의 일정한 때에 따라 기도를 바치는 시간 전례의 특성을 드러내 주고 있고, '전례' 라는 말은 이 기도가 교회의 공적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교회 공동체 전체와 관련되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시간 전례' 란 용어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성화(聖化)하도록 구성된 시간 기도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고대에 교회의 모든 예배 행위를 지칭하였던 '성무 일도' (officium divinum)란 이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시간 기도를 가리키게 되었는데, 라틴어 '오피치움 (officium)이 시간 전례를 바쳐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교회법적인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람직한 명칭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시간 전례를 가리키던 통상적인 이름은 '요약' · '축소' 라는 의미를 지닌 '브레비아리움' (brevianim)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중세 때 여러 권으로 된 《시간 전례서》를 실용적인 이유로 중요 요소들을 간추려 한 권의 책으로 만든 데서 유래한 것이어서 시간 전례의 본질을 드러내 주지 못하였고,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용어가 되었다. 이외에 성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가 자신의 규칙서 즉 《베네딕도 규칙서》(Reglala Sancti Benedict)에서 '하느님의 일' (opus Dei)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용어 또한 베네딕도회가 발전하면서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시간 기도' (preces horariae) · '종들의 의무' (pensum servitutis) · '법정 시간 (horae canonicae) 등도 사용되었다. 한편 동방 교회 특히 그리스 정교회에서 미사 및 시간 전례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호롤로기온)/Homalphin)이)이라는 책 이름에는 시간 전례의 시간적인 특성이 나타나 있다.
: II . 역사와 발전
[기 원] 인간은 본능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하루의 일과에 따라 활동하면서 하루 중 중요한 순간들에 기도를 바치곤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모든 민족 · 문화 · 종교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또 이 점에서 시간 기도는 인류의 공통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 역시 인간의 신체 리듬에 따라 바치는 나름대로의 시간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랍비들의 글들 안에서도 구약 시대에 이미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는 관행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다니엘의 일화에 나오는 기록(다니 6, 11. 14)과 시편 55편 17-18절의 기록에 근거하여 유대교 안에 하루에 세 번(아침 · 낮 · 저녁) 기도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다니엘의 경우는 그것이 일반화된 관행인지 아니면 다니엘의 사적 신심인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고, 시편 55편에 나오는 아침 · 저녁 · 한낮이 하루의 일정한 때를 가리키기보다는 하루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종일토록 기도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아침과 저녁에 거행되는 성전 제사와 연관시켜 기도를 바쳤으며, 예루살렘 밖에 사는 사람들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회당에 모여 기도를 하였다. 이외에 성전 문을 닫을 때도 기도하였고, 일부 열심한 사람들과 분파들은 나름대로의 기도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유대인들의 기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시편을 이용하였다는 것이며, 이러한 유대인의 기도 생활이 예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예수는 기도하기 위해 자신을 추종하던 군중을 떠나 혼자 있곤 하였고(마르 1, 35), 열두 제자들을 선출하는 등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는 홀로 기도하였다. 예수의 기도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의 일상 활동은 "기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그 활동은 기도로부터 흘러 나오는 듯했다··주님은 당신의 수난이 다가올 때(요한 12, 27 이하), 최후의 만찬 때(요한 17, 1-26), 동산에서 고뇌에 짓눌리실 때(마태 26, 36-46 ; 마르14, 32-42 ; 루가 22, 39-46 : 요한 18, 1-11),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루가 23, 34-46 : 마태 27, 46 : 마르 15, 34), 한 마디로 당신 생애를 다 마치는 그 순간까지 기도가 당신의 메시아적 직무와 파스카 희생을 생동화시켰다는 것을 거룩한 스승께서는 분명히 보여 주셨다"(〈〈시간 전례 총지침> 4항, 이하 <총지침>). 이렇듯 행동으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준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항상 깨어 기도하라" 고 당부하였다(루가 21, 36 : 마르 13, 33). 기도할 때에 예수는 주로 일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시편을 주로 이용하였다. 이렇듯 예수의 모범과 가르침 안에 나타나 있는 항상 깨어 기도한다는 이상은 이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과제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시간 전례는 바로 이 이상을 현실 안에서 구체화하는 가운데 태어난 것이고, 그 직접적인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의 모범에 있다.
[사도 공동체 시대] 100년경 유대인들로부터 공식적으로 회당 출입이 금지되기 전까지 제자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이루어지는 유대인들의 예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사도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하·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 42-47)는 언급에 잘 나타나 있듯이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또 하루에 세 번 기도하되 유대인들과는 달리 주님의 기도로 기도하라는 100년경에 쓰여진 《디다케》(A180%) TOV 8obero ditootorov)의 증언으로 미루어(8, 3), 사도 공동체는 유대인이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관행을 그대로받아들이면서 그것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들 역시 예수처럼 시편을 애용하였을 것이다(마태 27, 46 : 루가 23, 46 : 골로 3, 16). 사도들이 저녁 제사 예배에 참석하였고(사도 3, 1-2), 베드로가 낮에 기도를 바쳤으며(10, 9), 또한 밤에도 기도를 하고(12, 5-12 ; 16, 25 : 20, 7-11), 오전 9시경에 기도한다는(2, 1 이하) 성서의 기록들로 보아, 당시 사도 공동체는 예수의 '항상 기도하라' 는 이상을 실천하고자 유대인의 기도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기도 시간도 만들어 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3세기〕 로마 제국의 박해에 시달렸던 3세기까지 교회는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찼으며, 시간 전례 역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교회 지도자들은 항상 기도하라는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방법으로 일정한 기도 시간을 정하고 그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각 지역과 인물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는데, 오리제네스(?~254)는 아침 · 저녁 · 낮에 바치는 유대교의 풍습을 지키면서 여기에 밤 기도를 덧붙임으로써 항구한 기도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테르툴리아노(160~223)와 치프리아노(?~258)는 아침 기도 · 저녁 기도와 더불어 소시간경(3시경 · 6시경 · 9시경)을 언급하면서 각 기도 시간들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사도 전승》('Amooro.t.kn Toopoooous)의 저자는 한밤중에 바치는 기도(밤 기도)와 새벽에 바치는 새벽 기도를 덧붙여 하루 7번 기도를 바치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도는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교부들은 소시간 경을 삼위 일체의 신비에 연관시키거나 해당 기도 시간에 일어났던 성서 사건들을 기념하는 식으로 각 기도 시간들을 성서의 사건들과 연계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여러 기도 시간들 가운데 특히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는 모든 신자들이 바쳐야 하는 의무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4~6세기]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시간 전례도 체계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박해로 공동체가 함께 바치기 힘들었던 시간 전례는 이제 공동체의 기도로 확립되었고, 구성에 있어서도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형태의 시간 전례로 나타났다. 하나는 주교와 그 백성이 함께 바치는 주교좌식 시간 전례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수도회식 시간 전례였다. 주교좌식 시간 전례는 주로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로 되어 있는데, 특정한 때(파스카의 밤)에는 밤 기도에도 신자들이 참여하였다. 몇 개의 시편 · 성서 찬가를 불렀으며, 성경 소구(聖經小句)와 이에 따른 강론과 찬미가가 덧붙여지기도 하였다. 주교좌식보다 더 정교한 구조를 갖춘 수도회식은 아침 저녁 · 3번의 소시간경 · 밤 기도 외에 잠자기 전 바치는 끝 기도와 아침 기도, 그리고 3시경 사이에 바치는 1시경이 첨가되었다. 여기서는 시편 전체를 일주일에다 읊고, 일 년 동안 성서를 연속적으로 읽어 나가며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하는 등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이처럼 하루에 8번 기도하는 관행은, 이 관행을 따르고 있는 《베네딕도 규칙서》가 8세기 이래 서방 교회 전체에 퍼지면서 함께 정착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시경을 없앨 때까지 로마 전례 안에서 하나의 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세 이후] 9세기 이후 수도자들이 대도시에 살면서 주교좌식 시간 전례에 참여하고, 주교들도 자기 사제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면서 수도회식 시간 전례가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이로써 서로 다른 두 가지 시간 전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결합되었으며, 9세기 이래 수도회식 시간 전례는 주교좌 성당에서 공동 생활을 하던 참사 위원들에게 의무로 부과되었다. 그러나 수도자들에게 어울렸던 시간 전례가 '세속' 에 사는 평신도는 물론 사제들이나 선교사들에게는 큰 짐이었다. 이에 시간 전례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가 교회 안에서 일어났지만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와 그 회원들이 《소성무 일도서》(Brevanim)를 서방 교회에 널리 도입하였으나, 이 역시 시간 전례가 백성의 기도가 아니라 성직자를 위한 기도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시간 전례는 공동체가 바치는 기도에서 열심한 사람이 홀로 바치는 기도로 변질되었고, 백성의 기도에서 성직자나 수도자의 기도로 인식되었다. 항상 기도하라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루에 24번까지 기도하는 등 횟수를 늘리기도 하였으나(11세기 스페인의 한 예식서), 성모 시간 전례 · 위령 시간 전례 등의 첨가로 과중해진 시간 전례는 더욱더 견딜 수 없는 의무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에 왜 기도하는지에 대한 반성보다는 규정에 따라 기도를 바치는 것에 급급하였던 성직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바칠 때에 시간 전례의 의미가 살아남에도 불구하고, 기도 바치는 '때' 와는 상관없이 자기에게 부과된 의무를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아무때나 기도를 바쳤다.
따라서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의 전례 개혁을 통하여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시간 전례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1568년에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개정된 《로마 성무 일도서》(Breviaium Romanum)가 등장하였으나, 이 역시 획일적인 규범을 정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리고 1911년에 교황비오 10세(1903~1914)가 새로 《성무 일도서》를 편찬하였는데, 이는 매주 150개의 시편들을 외우던 옛 관습을 복구시키고 시편 부분의 전체 배열을 변경시킨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시간 전례의 본성을 잊음으로써 생긴 폐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처를 취하였다. 교황 요한23세(1958~1963)는 1960년에 반포한 《전례 규정집》 (Codex Rubricamm)에서 각 시간 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바치도록 명하였으며(14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시간 전례의 목적은 하루하루의 성화에 있으므로 시간 기도의 전통적인 순서는 가능한 한 제시간에 맞도록 다시 배정할 것이다"(전례 88항)라고 규정하였다. 특히 사도적인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현대 생활 환경이 고려되기를(전례 88항) 당부하였는데, <전례 헌장> 83~101항의 《성무 일도서》 개정을 위한 세부 지침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 백성 전체의 기도 : 본래 시간 전례는 항구한 기도를 이상으로 한, 그리스도인 모두의 기도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중세에 들어와 성직자와 수도자의 기도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에 공의회에서는 세례받은 신자 모두가 그리스도의 배필인 신비체의 한 지체로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임무에 동참하는 가운데 시간 전례의 전체 또는 일부분을 바치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100항).
새로운 시편 배열 : 일주일에 시편 전체를 바치는 전통은 사실상 사목에 종사하는 이들이나 평신도들에게는 과중한 부담이었다. 그래서 시편을 4주간으로 나누어 각 시간 기도를 바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시간 전례를 바치는 이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였고, 같은 이유로 1시경도 없앴다. 그리고 시편을 긴 주간으로 배분할 때 성서의 찬가들과 그 외의 기도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을 도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 전례를 여유를 가지고 바칠 수 있도록 하였다.
새 독서집 : 성서의 내용을 풍부히 삽입한 성서 독서를 새로 구성하도록 하고, 교부들의 글도 더욱 신중하게 선택한 새 독서집의 발간을 요청하였다(92항). 이에 전례 주년과 일치된 성서 독서들을 고르고 이와 연관된 교부들과 교회 문헌들을 취합한 새 독서집이 나오게 되었다. 이 독서집에는 성인 축일의 경우 전설적인 내용은 삭제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주기의 이 독서집이 성서 전체와 교부들의 글을 충분히 다룰 수 없었기에 2년 주기의 독서집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현 시대와 문화에의 적응 :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적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 전례를 더 잘 바칠 수 있도록《성무 일도서》를 개정할 것을 요청한 <전례 헌장> 87항의 정신에 따라 만들어진 새 《성무 일도서》는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갖추어, 회중의 성격에 따라 시간 전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졌다. 또 공동으로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자서도 바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찬미가를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총지침> 178항)이 각국 주교 회의에 주어졌고, 시편 후렴 대신 시편 제목이나 시편 앞에 붙어 있는 해설을 할 수도 있으며(114항), 시편을 바치는 방법에 있어서도 재량권이 어느 정도 주어졌다(121~124항). 또 성서 독서의 선택 가능성(46항, 249항, 251항, 258항) · 응송 대신 다른찬가로 대치할 수 있는 가능성(49항) · 청원 기도를 바치는 방법의 선택(193항) 등에 있어서도 재량권이 주어졌다. <시간 전례 총지침>의 이러한 토착화 외에도 각국 주교 회의에서는 시편 배열을 비롯하여 시간 전례의 구성요소 전체를 바꾸는 등,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성무 일도서》를 만들어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하고도 풍부한 《성무 일도서》 : 공의회에서 요청한 것은 기계적인 기도가 아닌, 참으로 영적인 도움을 줄수 있는 시간 전례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새《성무 일도서》는 4주간 주기의 시편 배열을 채택함으로써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지루함, 한꺼번에 많은 양의 기도를 하는 데서 오는 부담감 등을 피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신약 찬가들의 도입 · 다양한 형태의 후렴과 응송과 청원 기도 · 시편을 기도하는 방식의 다양화 등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되었다.
내적이며 영적인 기도 : 《성무 일도서》를 개정하고자한 교회의 의도는 결국 시간 전례가 교회법적인 의무로 바치는 기도가 아닌, 참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고자 하였던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새 《성무 일도서》는 시편마다 교부들의 해설이나 주제를 넣었고, 후렴 역시 시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택하였으며, 예식 자체는 단순하게 만들었다. 즉 기도를 바치는 이가 이해하고 묵상하면서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는 《성무 일도서》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노선에 따라 교황바오로 6세(1963~1978)의 교황령 〈라우디스 칸티꿈>(Laudis Canticum)이 1970년 11월 1일에 반포되었고, 이어 이듬해 새 《성무 일도서》가 발간되었다.
[동방 교회의 시간 전례] 크게 8개의 독립 교회로 이루어진 동방 교회들은 서로 다른 전례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 전례도 각기 고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 교회의 공통적인 특징들만을 간단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동방 교회의 비잔틴 전례 예식서인 《호롤로기온》에는 밤 기도 · 아침 기도 · 저녁 기도 · 1시경 · 3시경 ·6시경 · 9시경 · 끝 기도가 실려 있다. 미사가 없는 사순 시기 동안에는 6시경 이후에 미사 대신 '티피카' (typica)라는 기도를 한다. 아르메니아 전례에서는 저녁 기도와 끝 기도 사이에 '평화의 시간 이 있고, 안티오키아 · 마론파 전례에서는 1시경을 제외한 7번의 기도를 하며, 칼데아 전례와 말라바르 전례는 저녁 기도 · 아침 기도 · 밤 기도 · 끝 기도만 드린다. 3시경과 6시경은 사순 시기 평일에만 바치며, 끝 기도는 생략하거나 저녁 기도와 혼합하기도 한다. 9시경은 없다. 서방 전례와 마찬가지로 동방 전례에서도 처음에는 시간 전례 때 시편을 바쳤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교회들은 시편 대신 찬미가들을 바치고 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 전례에서는 시편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일주일 동안에 시편 전체를 다 읊는 전통을 수도원에서 행하고 있던 비잔틴 전례는 수도원 이외에서는 시편의 수를 많이 줄이거나 독서자가 혼자 읽는 식으로 바뀌었다. 대신 '트로파리' (tropari)라불리는 많은 시(찬미가)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성무 일도] 최초의 한글본 성무 일도서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사용하던 것을 로트(L. Roth, 洪泰華,1890~1950) 신부가 번역하여 1939년 11월 15일에 덕원 인쇄소에서 출판한 《수사 통경 기구》(修士通經祈求)이다. 이 성무 일도서가 발간되기 이전까지의 시간전례는 대부분 라틴어로 된 것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수녀들은 차일라이스(V. Zeileis, 1888~1957) 신부가 번역한 《수녀 기구 예절서》(Gebet und Zermonienbichlein fuir korea-nische Schwestern)를 사용하였으며, 아펠만(B. Appelmann, 1902~1975) 신부의 《예수 성탄 성무 일도)(Weihnachtsof- fizium, 1934), 《성주간 성무 일도>(Kanvocherofifun, 1934) . 《주일 · 부활 · 성령 강림 · 사도 축일의 만과》(Vesperalefiir Sontage · Ostern · Pfingsten · Apostelfeste, 1934), 《성녀아가다와 체칠리아의 성무 일도)(Offizien Zu den Festen der hl. Agatha und der hl. Caecilia, 1935) 등을 사용하였다. 《수사통경 기구》에는 각 시간경이 모두 수록되어 있고, 서론에는 시간 전례를 바치는 의미와 방법 및 그 예절이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의 발간으로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라틴어로 낭송하거나 노래하던 시간 전례가 자국어로 바치게 됨으로써 수도 생활에도 많은 활력을 불어넣 어 주었다.
그러나 한국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이후까지도 라틴어로 된 성무 일도서로 시간전례를 바쳤다. 그 후 왜관 성 베네딕도회에서는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수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본 소성무 일도서인 《수도자의 기도》를 1969년 10월에 간행하였고, 이 책의 간행으로 대부분의 수도회에서는 이전의 성무 일도서 대신 이 책을 사용하였다. 또 1971년 4월 11일에 교황청에서 라틴어로 된 성무 일도서 표준판을 간행하자, 한국에서는 곧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마침내 1978년 4월 1일 《성무 일도서》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아침 기도 · 낮 기도 · 저녁 기도 · 끝 기도 · 독서의 기도 중 찬미가와 시편을 수록한 제1부 1권과 독서의 기도 중 독서 · 응송 · 본기도를 전례 시기에 따라 나눈 제2부 4권 등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성무 일도서》의 출판으로 수도자들은 물론 한국의 성직자들도 이제는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시간 전례를 바치게 되었다. 그런데 1971년에 간행된 성무 일도서가 14년 만에 개정되어 1985년 4월 7일 표준판이 교황청에서 간행되었다. 이에 한국어판 성무 일도서도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5년 만에 개정판 번역이 완성되었고, 1990년 6월 9일 전례 성사성의 인준을 받아 그 해 12월 31일 시기별로 구분된 4권의 《성무 일도서》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96년에 미사 통상문 개정과 더불어 이듬해 기도문 개정이 이루어져 수정된 성무 일도서가 새로이 출판되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 Ⅲ. 주요 구성 요소
[시 편) 유대인들은 시편을 이용하여 기도를 하였고 예수 역시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 사실에 덧붙여 그리스도론적인 관점에서 시편을 재해석하였는데 그리스도가 부르는 노래 또는 신랑인 그리스도에게 신부인 교회가 바치는 노래로 이해되면서 시편은 시간 전례안에서 언제나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시편이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작품이라는 믿음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시편들 안에 시편 저자의 개인적인 역사와 감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이 시편을 기도하는 이에게 더 가까이 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이 역시 자신의 삶 안에서 시편 저자의 체험과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시편 안에서 그대로 만날 수도 없고, 전례 기도로서 일정한 신학에 의해 배치되어 있는 시편과 자신의 일상 감정이 동화되기를 기대한다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시편으로 기도하는 이는 시편 안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또 하느님께 바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성서 찬가] 4~6세기에는 많은 성서 찬가들이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 교회는 구약 찬가들을 요일별로 분배 ·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이 《베네딕도 규칙서》에 받아들여짐으로써 서방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세 가지 복음 찬가인 마리아의 노래 · 즈가리야의 노래 · 시므온의 노래를 제외하고 신약을 찬가로 이용한 관행은 없었지만, 새 《성무 일도서》에는 구약성서에서 뽑은 26개의 찬가와 신약성서에서 새로 뽑은 9개의 찬가가 수록되었다. 세 가지 복음 찬가는 거의 모든 전례 전통 안에 나타나 있다.
[찬미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불렀던 찬미가들의 흔적을 사도 바오로의 편지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3세기까지 개인들이 지은 찬미가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몇 개만 전해질 뿐이고, 진정한 찬미가의 발달은 성 에프렘(306~373)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에프렘은 이단에 맞서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하여 찬미가들을 지어 보급하였는데, 그의 영향력은 동방과 서방 교회 전체에 미쳤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에서의 유배 동안 그곳의 찬미가들에 영향을 받아 라틴어로 찬미가를 만든 푸아티에(Poicer의 성 힐라리오(315~368)가 있지만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성 암브로시오(340~397)는 아리우스주의를 극복하고자 라틴어 찬미가들을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서방 교회 찬미가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찬미가들과 후대 사람들이 지은 찬미가들은 시간 전례 안에 들어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용하다 보니 원래의 운율이나 내용을 그대로 다 살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무 일도서》 안에 실린 찬미가가 모두 훌륭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각국 주교 회의는 기존의 찬미가를 고치는 동시에 새 찬미가를 도입하는 작업을 펼쳐야 한다(〈총지침> 178항).
찬미가는 시편 · 성서 찬가와 더불어 노래로 부를 수 있는 서정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성서 본문과는 달리 찬미가는 교회가 자신의 삶 가운데에서 창작해 내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이들의 문화적인 특성과 취향들을 어느 정도 포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시대에 따라 새 찬미가로 바꾸거나 그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다. 각 시간 기도와 그날 축일의 성격을 잘 표현할 수 있는(173항) 찬미가는 교회 예술이 꽃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후렴과 응송] 후렴에는 시편의 내용을 함축하고 재해석하면서 그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시편 후렴, 마리아의 노래와 즈가리야 노래의 주일 후렴으로 사용되는 성서 후렴, 성인 축일에 사용되는 성인과 관계된 후렴 등이 있다. 응송은 성서나 교부의 글을 읽고 나서 일종의 반복구로 사용되었는데, 독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그 내용을 반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169항).
[독 서] 《성무 일도서》 안에 들어 있는 독서에는 성서 독서와 교부들의 글에서 뽑은 교부 독서가 있다. 독서는 항상 두 가지로 취하는데, 그 하나는 홀수 해나 짝수 해에 따라 성서로부터 취하고, 다른 하나는 교회 전승으로 부터 취한다. 그리고 사계 동안에 하던 시간 전례에서 교회 전승으로부터 취한 독서는 주로 성서 구절에 대한 해설 내지는 계절이나 그날의 적합한 묵상 재료로 되어 있다. 학자들은 대부분의 동방 교회 시간 전례 안에 성서독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시간 전례 때 성서 독서를 하는 것은 서방 교회의 수도원들 특히 《베네딕도 규칙서》 안에 잘 드러나 있다. 1년 내에 성서 전체를 읽는 이러한 관행은 중세 때 확산된 것이기는 하지만, 새《성무 일도서》에는 2년 안에 전체 성서를 읽는다는 목표로 2년 주기의 《독서집》을 준비하고 있다.
서방 교회 안에서 교부 독서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밤 기도 때 성서 독서의 주해를 읽도록 지시한 성 베네딕도였다((베네딕도 규칙서》 9, 9). 8세기에는 교부《독서집》들도 출간되었다. 성서 독서와.마찬가지로 교부 독서도 중세 때에 축소되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개정 작업으로 새로운 교부 《독서집》이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는 매일 교부 독서를 하게 함으로써 그 목록도 많이 늘어났고, 교부 이외에 다른 형태의 독서도 규정에 따라 수록되었다. 즉 성인 축일에는 둘째 독서로 성인전을 선택하였고 성인 축일을 허용하지 않는 절기에는 그날의 두 독서 다음에 성인전을 읽을 수 있다. 교회의 공식 문헌들과 성인전도 실리게 되었으나, 성인의 경우 전설적인 내용은 삭제되었다.
[청원 기도와 본기도] 청원 기도와 주님의 기도는 교회의 시간 전례에서 항구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동방 교회들의 시간 전례를 전해 주는 4세기 문헌들은 청원 기도로 기도를 마쳤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베네딕도 규칙서》에 따르면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마치기 전에 청원 기도를 하였고, 밤 기도 역시 청원 기도로 끝 맺었다. 하지만 미사에서 신자들의 기도가 점차 사라졌듯이 청원 기도 역시 사라졌다가 새 《성무 일도서》 안에서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끝에 다시 복구되었다. 《디다케》의 언급처럼 주님의 기도는 언제나 시간 전례 안에 자리를 잡았지만 각 전례에 따라 주님의 기도를 하는 시기와 방식은 달랐다. 새 《성무 일도서》에서는 청원 기도를 마친 후에 바로 주님의 기도를 하게 함으로써 주님의 기도의 품위를 지키게 하였다.
시간 전례를 끝맺는 주례자의 기도인 본기도는 4세기의 예루살렘 전례 안에 나타나지만 《베네딕도 규칙서》에는 주님의 기도로 기도를 마치도록 하였다. 하지만 5세기 이후의 성무 집전서들이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위한 기도문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제만 바치도록 유보된 본기도들이 로마 교회 안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기도로 시간 전례를 마치는 관행은 중세 서방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새 《성무 일도서》는 축일과 주일 · 전례 시기(대림 · 성탄 · 사순 · 부활)에 그날 미사의 본기도를 사용하도록 하는 반면에, 연중평일에는 미사와는 상관없이 각 평일의 영성을 드러내는 본기도들을 만들어 배치하였다.
: Ⅳ. 구조와 영성
[초대송] 그날의 첫 시간 기도는 원칙적으로 초대송으로 시작된다. 초대송은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도록 신자들을 초대하는 기능을 한다 (<총지침> 34항). 이 초대송은 전례 시기와 요일에 따라 특수화된 후렴과 시편 94편 · 99편 · 6편 · 23편 가운데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때, 특히 공동체 안에서 노래로 부르지 않는 경우에는 초대송을 생략하고 "하느님, 날 구하소서"로 시작되는 도입구로 대체할 수 있다.
[독서 기도] 이 시간 기도는 독서 기도 외에 밤 기도' 또는 '말씀 기도' 라고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야과경이라고 하는 시간 기도는 비록 가대(歌臺, 지정된 장소에서 시간 전례를 공동으로 바침)에서는 밤중 찬미의 성격을 보존할 것'전례 89항)이라는 원칙을 지키기를 바라지만 <시간 전례 총지침>에서는 이 원칙을 더 전개시키고 있다. "독서 기도에 밤 기도의 성격을 보존하는 모든 이들은 칭송을 받을 만하다"(72항). 이러한 성격은 독서기도가 밤에 하는 전통적인 찬미가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새 《성무 일도서》 안에서 사목적 ·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하루 중 아무때나 바칠 수 있게 변한 독서 기도는, 밤과 연계된 상징들을 간직하고 있다. 밤은 침묵과 죽음, 기다림, 고요함의 시간이므로 성서와 교부들의 글을 경청하고 묵상하는 이 기도의 본뜻이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낮에 바치는 경우라도 독서 기도의 특성을 간직하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 전례 자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므로 독서 기도 역시시편과 찬미가로써 그 성격을 유지한다.
독서가 이 기도의 부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시편들과 찬미가, 본기도와 다른 기도 형식을 외운다는 점에서 볼 때 기도가 된다. 이 "기도는 성서의 독서를 하기 때문에, 거기서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간다" (55항). 이때 봉독된 독서는 성서를 지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미사에 배분된 주기에 따라 성서와 영적 저술가들의 가장 아름다운 구절을 묵상하는 것 이다. 따라서 이 기도 역시 다른 시간 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날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라는 말과 영광송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기도는 '시작 기도(초대송 또는 도입구) · 찬미가 · 시편 · 후렴 · 독서 .응송 · 본기도' 로 구성되어 있다. 시편은 일반적으로 다른 시간 기도에서 이용되기에 거북한 긴 시편을 세 부분 으로 나누어 사용하며, 주일 · 금요일 · 토요일에는 그날의 특성을 드러내는 시편을 읽는다. 제1 독서는 성서 독서이고 제2 독서는 교부나 교회 저술가들의 글을 읽는다. 성서 독서는 미사의 독서를 보충하는 성격을 지니면서 각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지닌 성서본문을 선택하되, 복음은 선택하지 않는다(143~155항). .
각 독서 후에는 독서의 내용을 반향하는 응송을 한다. 이 시간 기도에서 외우는 찬미가는 대축일이나 계절에 일치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이 시간 기도가 거행되는 날의 시간에 따라 밤이나 낮의 찬미가가 선택되며, 여기에서 사용되는 시편으로는 3개의 시편이나 그 주간이나 그날에 읽었던 시편에서 뽑은 시편의 일부로 되어 있다.
장엄 대축일은 고유한 시편과 응송을 지니고 있다. 시편들과 독서 사이에는 시편으로부터 독서의 경청으로 기도를 진행시키기 위하여 계와 응으로 된 응송이 사용되고 있다. 각 독서 후에는 계와 응이 따랐다. 사순 시기외에 주일과 부활, 성탄의 8부 내와 장엄 대축일에는 둘째 독서와 응송 후에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 찬미가>(TeDeum)를 바친다. 독서 기도는 그날의 본기도로 끝나며 공동 거행시에는 적어도 "주를 찬미합시다. 천주께 감사합니다" 란 말로 끝난다.
[아침 기도] 어둠이 걷히고 새날이 밝아 오는 아침에 드리는 이 기도는, 아침 · 새벽 · 떠오르는 태양 · 하루의시작 등을 언급하면서 아침과 연결된 상징들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아침 기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떠오르는 태양인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교회의 아침 인사와 찬미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창조로써 시작된 우주의 시작,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세상을 인간에게 위임하심을 기린다. 한편 하루 일과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날 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아침 제사이기도 하다. 도입구에 이어 찬미가를 부르고 시편 2개와 구약 찬가 1개를 후렴과 더불어 노래한다. 이어 성경 소구와 응송 · 즈가리야의 노래와 후렴 · 청원 기도 · 주님의 기도 · 본기도를 한다. 찬미가는 각 시간 기도와 그날 축일의 특색을 반영하는데, 아침 기도의 찬미가는 특히 아침과 연계된 것들이다. 첫째 시편은 아침과 관련된 시편이고, 마지막 시편은 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모든 시간 기도의 성경소구는 "성서의 어떤 구절들을 더 강조하고 제시하여, 연속적인 성서 독서에서 별주의를 끌지 못하는 어떤 짧은 부분들의 교훈을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45항). 공동으로 바칠 경우 시간 전례 독서집이나 미사 독서집에서 선택한, 더 긴 독서를 할 수 있다(46항). 응송은 방금 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으로서, 독서 기도 · 소시간경 · 끝 기도의 계응과 더불어 생략하거나 적합한 성가로 대체할 수 있
다(49항). 즈가리야의 노래는 저녁 기도의 마리아의 노래와 더불어 우리 구원에 대한 찬미와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데(50항), 여기에서 사용되는 후렴은 전례 시기와 연중 주일의 경우 그날 미사의 복음과 연계되어 해당 시기의 특색을 잘 드러내 주며, 축일이나 기념의 경우에도 주제를 부각시켜 준다. 청원 기도는 그날 하루를 하느님께 맡기고 봉헌하는 기원 기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바칠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성무 일도서》 안에 제시된 기도 외에 자유 지향 기도를 바칠 수도 있다. 주님의 기도는 시간 전례의 정점이며, 이어 즉시 본기도를 한다. 공동으로 기도할 때 사제나 부제가 있을 경우에는 강복이 따른다.
[소시간경 또는 낮 기도] 3시경 · 6시경 · 9시경으로서 도입구 · 찬미가 · 3개의 시편 · 성경 소구 · 응송 · 본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도들은 해당 시간에 일어난,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주의 수난과 초기 복음 전파 때의 사건들을 기념한다. 그리고 낮 시간을 파스카 신비의 묵상과 찬미로 채우며 그리스도인들을 항구한 기도의 이상으로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 주일과 대축일 · 제3주 금요일과 제1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시편 118편의 22단락 중 하나로 시작하며, 제1주 월요일은 시편 18편으로 시작한다. 이 시편들은 하느님 법의 아름다움을 노래함으로써 낮에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을 잊지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주일에는 메시아적인 시편들(117편, 22편, 75편)을, 금요일에는 수난 시편 21편을 사용하며, 이외에 다른 날에는 시편 번호에 따라 일률적으로 배치하였다. 오늘날에는 세 가지 소시간경 전부를 바칠 수 없을 경우 기도하는 시간에 가장 근접한 시간의 소시간경 하나만 바칠 수 있도록 하였다.
(저녁 기도] 아침 기도와 더불어 "하루 기도의 두 기등(전례 89항 : <총지침> 37항) 중 하나인 저녁 기도는 밤이 시작하는 때인 저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그에 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저녁 기도는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하느님께 감사하는 제사이며, 낮 동안의 활동으로 인해 묻었을 오염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한다. 저녁에 이루어졌던 최후 만찬을 기념하면서 어둠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죽음과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를 드러낸다. 이 기도로써 교회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오실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일꾼으로 상징되며, 주님과 함께 만찬을 했던 엠마오의 두 제자와 동일시한다.
아침 기도와 구조가 같으나 저녁 기도의 특징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시편 부분은 2개의 시편과 하나의 신약 찬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사용되는 시편은 저녁과 연계되거나 하느님께 대한 희망 · 감사 · 죄의 용서를 청함 · 구원 신비의 사색 · 종말론적인 특성을 지닌 것 들이다. 신약 찬가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성부의 업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청원 기도는 아침 기도의 청원 기도와는 달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청하되 마지막 지향은 언제나 죽은 이들을 위해 바친다.
〔끝 기도] 이 기도는 잠자기 전,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로서 하루 일과에 대한 반성과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잠으로 상징되는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상기시키며, 영원한 구원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를 피력한다. 도입구 · 참회 예절 · 찬미가 · 시편 · 성경 소구 · 시므온의 노래 · 본기도 · 강복 · 성모 찬송가 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시간 기도들이 4주 주기로 되어 있는 데 반해 끝 기도는 1주 주기로 되어 있다. 끝 기도에 사용되는 찬미가는 모두 5~6세기의 것인데, 특히 "우리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여"로 시작되는 찬미가는 《성 체사리오의 규칙서》에 나오는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것이다.
끝 기도 시편은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시편 4편 · 90편 · 133편을 토요일과 주일에 배치하고, 밤에 관한 시편과 하느님께 의탁한다는 내용의 시편 6개를 새로 뽑아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배치하였다. 성경 소구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 ·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상기시키는 것들이며, 시편 30편 6절에서 따온 응송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한 말씀으로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마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끝 기도의 정점을 이루는 시므온의 노래(루가 2, 29-32)는 다시 한번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본 기도는 밤의 휴식과 다음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강복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잠을 죽음에 비유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을 보여 준다. 성모 찬송가는 12~13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 V .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
[시간 전례의 주체] 시간 전례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는 하나의 의무이다. 여기에서 의무란 법적인 의무라기보다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다. 즉 성직자는 백성을 대표하는 이들로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도를 주재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끊임없이 불러야 한다. 수도자들이나 공동 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시간 전례를 바치지만, 그들 역시 그리스도교의 신비체를 표상하는 이들로서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거한다. 규칙서나 회헌에 의무적으로 바치도록 되어 있는 시간 기도 외에 이러한 단체에 속해 있는 성직자들은 위에서 말한 보편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시간 전례의 본성상 모든 신자들은 시간 전례의 주체이다. 비록 평신도가 시간 전례를 바치는 것은 하나의 권고 사항으로 되어 있지만(전례 100항 ; <총지침> 27항, 32항),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동참하였기에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도로써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하는 특권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
[기도하는 공동체]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기도는 어떤 특은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성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또한 그 말씀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본질적인 요소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과거에 일어났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오늘의 사건으로 되살려 주면서 그리스도인 자신의 사건이 되도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 중에서 미사와 더불어 기도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시간 전례이다. 또 하루 일과의 중요 순간들에 기도를 바침으로써 "깨어 있으시오" (마르 13, 37)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가장 잘 수행하게 된다. 특히 기도하는 공동체로서의 모습은 주교 또는 사제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시간 전례를 바칠 때 외적으로도 뚜렷이 드러난다. 개인이 바치는 시간 전례 역시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왜냐하면 시간 전례를 바치는 각 개인은 이를 통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의 기도에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현존] 그리스도는 지상에 계실 때에 하느님을 찬미하였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성부께 기도하였으며, 이를 위해 스스로 죽임을 당한 우리의 참된 사제이다. 승천 후에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청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십니다"(히브 7, 25)라는 말씀처럼 천상에서 사제 직무를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지상에 있을 때나 승천 후에도 우리의 사제이기를 그치지 않는 그리스도는,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마태 18, 20)라고 말씀한 바로 그분이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모든 기도 모임에 예수는 우리의 사제로서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례 기도인 시간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더 뚜렷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전례 기도는 파스카 신비와 직접 맞닿아 있으면서 기도하는 이와 그리스도를 더욱 밀접히 연결시켜 주는데, 가장 뛰어난 전례 기도 중 하나가 시간 전례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활동] 사람이 기도한다는 것, 특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지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이유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예수의 파스카 신비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예수 주위에 모이는 것은 사회적 · 정치적 · 경제적인 목적으로 모인 모임과는 달리 신앙을 전제로 한다. 이 신앙은 성령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성령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시간 전례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많은 것들(시편 · 찬미가 · 기도등)은 사실상 성령의 감도로 이루어진 것들이므로, 올바른 시간 전례는 성령의 활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신비체의 일치] 비그리스도교의 기도를 포함한 모든 기도는, 겉으로 인식하든 못하든 하느님의 활동과 그분의 위대함에 대한 찬미와 감사이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 · 인종 ·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기도하는 모든 이를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이다. 이 점에서 기도 가운데 가장 조직적인 시간 전례는 인류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종파 안에서 시간 전례 내지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기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 전례는 그리스도교의 재일치 운동을 위한 소중한 도구가 된다. 따라서 시간 전례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일치의 도구라고할 수 있다. 더욱이 시간 전례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은 바로 이러한 일치를 촉진시키는 힘 자체이다.
[인간의 자아 실현]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하느님과 분리될 때에 고독과 불완전을 체험하게 된다. 구원이 하느님과의 화해이자 일치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시간 전례는 인간의 완성을 도모하는 도구이다. 왜냐하면 시간 전례는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찬미를 통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 새 인간으로 태어나는 여정을 밟도록 도와 주기 때문인데, 이 여정에서 그리스도는 결정적인 길잡이가 된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아 실현을 의미한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하루의 흐름에 따라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를 하도록 한 시간 전례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하면서 우리의 삶과 시간을 하느님의 것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모든 활동을 하느님의 빛에 비추어 판단하면서 그의 뜻에 부합한 삶을 사는지 수시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극하는 것이 바로 시간 전례이기 때문이다. 또 시간 전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하느님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를 되묻게 함으로써, 지상의 삶이 하느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파스카 신비를 생활 안에서 실천하게 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빨리 도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다. 이 우주의 결정적인 성화는 하느님이 이루시겠지만, 이러한 성화는 하느님 뜻의 실천에 우리 자신을 투신할 때에 더 빨리 올수 있는 것이다. (→ 경본 ; 독서의 기도 ; 삼시경 ; 성경 소구 ; 성무 일도 ; 성무 일도서 ; → 끝 기도 ; 낮 기도 ; 《성모 소성무 일도》 ; 아침 기도)
※ 참고문헌  AA.VV., Liturgia delle Ore. Documenti ufficiali e studi, Torino, 19721 H. Ashworth, The New Patristic Lectionary, 《EphemLinuurg》 85, 1971, Pp. 306~3221 A. Bugnini, La Rifoma Limugica(148~1975), Roma, 1983/ E. Cassien · B. Botte, La priere des heures, Paris, 1963/ C.W. Dugmore, The Influence of the Symaggue upon the Divine Office, Oxford, 1964. 21 La Maison-Dieu 105, 1971 ; 135, 1978 ; 143, 1980/ D. De. Reynal, Théologie de la Liturgie des Heures, Paris, 1978/ E.J. Lengeling, Liturgia Horarum. Zur Neurodnung des kirchlichen Stundengebets, (LI) 20, 1970, PP. 141~160, 231~2491 V. Raffa, La nuova Liturgia delle Ore. Presen- tazione storica, teologica e pastorale, Milano, 1971/ P. Salmon, L'Office divin au moyen-age. Histoire de laformation du bréviaire du Ⅸ au 言 XV sièle, Cerf, Paris, 1967/ Th. Schnitzler, Was das Stumdengebet bedeutet. Hilfe zum geistlichen Neubegim, Freiburg, 1980/ W.G. Storey, The Liturgy of the Hours : Principles and Practice, Worship 46, 1972, pp. 194~203/ A.G.Martimort, 송현섭 역, <성무 일도에 있어서 각 시간경의 구조와 영성>, 《신학 전망》 88호(1990. 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pp. 35~36. [金寅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