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정읍시 시기2동 239-3 소재. 1903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시기1 ~3동, 수성동, 장명동, 과교동, 구룡동, 상동, 금붕동, 대흥리, 신정리, 봉양, 칠보, 내장, 부전 일대이며, 관할 공소는 죽림, 신성, 등천 등 3 개소. [교 세] 1972년 1,889명, 1978년 2,594명, 1984년 1,811명, 1989년 2,543명, 1993년 2,753명, 1999년 2,398명. [역대 신부] 초대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1903. 6~1907.5), 2대 미알롱(A. Mialon, 孟錫浩) 알로이시오(1907~1924. 9), 3대 페셀(P. Peschel, 白鶴老) 필립보(1924. 9~1931. 1), 4대 고군삼(高君三) 베네딕도(1931. 1~1936. 5) 5대 서정수(徐廷壽) 알렉스(1936 5~1940. 4), 6대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1940 4~1944. 12), 7대 박성운(朴聖云) 베네딕도(1944. 12~1947.4), 8대 김후성(金厚星) 프란치스코(1947. 4~1950. 4), 9대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1950. 4~1951.3), 10대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1954. 5~1960. 3), 11대 황인규(黃寅奎) 마태오(1960. 3~1961. 7), 12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61.7~12), 13대 이상호(李尙浩) 아우구스티노(1961. 12~1966. 12) , 14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1966.12~1969. 12), 15대 서용복(徐龍福) 토마스(1969. 12~1971. 4), 16대 이병호(李炳浩) 빈천시오(1971. 4~1975. 1), 17대 정승현(丁勝鉉) 요셉(1975. 1~1976. 12), 18대 박중신(朴伸信) 시몬(1976. 12~1979. 1), 19대 강인찬(姜仁贊) 도미니코(1979. 1~1982. 9), 20대 박종근(朴鍾瑾) 안드레아(1982. 9~1984. 5), 21대 안용기(安龍起) 가브리엘(1984. 5~1989. 1), 22대 김진석(金鎭碩) 마태오(1989.1~1993. 2), 23대 김윤섭(金潤燮) 안셀모(1993. 2~1997.
2), 24대 한정현(韓正鉉) 아우구스티노(1997. 2~1999. 2) ,25대 양석현(楊錫顯) 세례자 요한(1999. 2~현재).
현재의 시기동 본당 관할 지역인 정읍 · 장성 일대가 기록으로 처음 확인되는 것은 1882년의 군령교 공소 ·불바라기 공소 · 갈재 공소로, 아마도 이 시기 이전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00년 이전 정읍 지역에는 14개의 공소가 있었는데, 시기동 본당의 모체가 된 신성리(新成里) 공소는 1893년경 설립되었으며 당시 신자수는 24명이었다. 1897년 목포로 진출하기 위하여 잠시 순창 아천리(阿川里)에 머무르던 데예(A.Deshayes, 曺有道) 신부가 정읍을 비롯하여 영광 · 장성 · 창평 · 흥덕 · 고창 · 함평 등지를 전담하다가, 1901년부터는 전남 무안군 우적동(牛跡洞)의 김승연 신부가 이곳을 담당하였다.
이 지역의 신자수가 빠르게 늘어나자 김승연 신부는 자신이 담당하던 공소들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신성리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1903년 6월 네 칸짜리 초가와 부지 1,200평을 매입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은 프로테스탄트가 번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승연 신부는 사목 활동 초기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신자들은 한국인 신부보다 프랑스 선교사가 파견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런 가운데 1907년 3월 미신자 김춘화가 배사진(바오로) 회장을 납치하여 성당에서 행패를 부린 사건이 계기가 되어 김승연 신부는 그 해 5월 경북 영천의 용평(龍坪) 본당으로 전임되고, 후임에 미알롱 신부가 부임하였다.
미알롱 신부는 김승연 신부가 마련해 놓은 부지에 성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1909년 5월 말 공사에 착수하여 1914년에 성당과 사제관 및 회합실을 완공하였으며, 3대 주임 페셀 신부는 1929년 초 8개의 관할 공소에 야학을 개설하여 문맹 퇴치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어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고군삼 신부는 읍내 중심지인 명덕동(明德洞)의 부지 350평을 매입한 뒤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할 함석집 2채를 신축하여 이곳으로 이전하고, 본당 이름을 '정읍(邑) 본당' 으로 바꾸었다. 5대 주임 서정수 신부는 신성리에 있던 성당 건물을 매각하여 명덕동에 부지 418평을 추가 매입하였고, 임시 성당으로 사용해 오던 함석집을 헐고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7대 주임 박성운 신부는 1946년에 다시 명덕동 성당 터를 매각하고 미 군종 신부의 도움을 얻어 청수동(清水洞)에 있는 2층 적산 가옥을 매입한 뒤 본당을 이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당시 주임이던 김이환 신부가 군종 신부로 입대하고 후임 신부가 부임하지 못함으로써, 정읍 본당은 한동안 신태인(新泰仁)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3년여 만인 1954년 5월 김영일 신부가 10대 주임으로 부임함에 따라 정읍 공소는 다시 본당으로 부활하였으며, 김영일 신부는 1957년 6월 청수동에 있던 성당을 헐고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한 후 12월 16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4대 주임 김환철 신부 때에는 성체회(현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을 마련한 데 이어 성심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66년 2월에 '자비의 모후' 꾸리아가 창단된 이래 10여 년 만인 1977년 4월에는 '사도의 모후' 꾸리아가 창단되었고, 성심회 · 돈 보스코회 · 매괴회 ·요셉회 등도 발족되었다.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본당에서는 1982년부터 분할 계획을 세우고, 1984년 6월 16일부터 새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1월 23일 성당(290평)을 완공한 뒤 1월 26일자로 연지동(蓮)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한편 본당 이름을 지역명에 따라 정한다는 교구 원칙에 따라 1985년 1월 '시기동 본당' 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9년 11월에는 각 사도직 단체가 회합 장소의 불편으로 어려움을 겪자 교육관 신축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듬해 2월 21일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9월 30일 완공하였다. 23대 주임 김윤섭 신부는 지역 사회의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고, 1997년 2월에 부임한 24대 주임 한정현 신부 역시 소록도 · 산청 나환우촌을 비롯하여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양로원을 연례적으로 방문하였다. 이렇듯 시기동 본당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본당상을 정립해 가고 있다. (⇨ 정읍 본당 ; → 전주교구 ; 연지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천주교 전주교구, 1998. [金成喜]
시기동 본당
市基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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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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