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동쪽과 서남 아시아의 유프라테스 강 서쪽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다마스커스의 고대 도시 국가 지역을 통칭하는 이름. 현재는 이스라엘 · 요르단 · 레바논이이 지역을 나누어 점령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시리아는 지역 및 민족 이름으로는 "아람" (ㅁ下), 도시 이름으로는 "다마스커스"(2on)로 나 타나며, 칠십인역 성서에서 아람은 대부분 그리스어 "시리아" 로 표기되었다. 특히 시리아는 그리스인들이 부르는 통칭으로서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사이를 일컫는 지리적 용어였으며, 후에는 지중해변의 페니키아(Phoeni-cia)와 내륙의 코엘레 시리아(Coele Syria)로 이 지역을 구분하기도 하였다.
[지리적 배경] 시리아는 페르시아어로 아투라(Athura) 라고 불렸던 '아시리아' 로부터 유래한 듯하다. 시리아의 서쪽은 지중해이고 북쪽은 아마누스 산맥이지만 동쪽과 남쪽은 시리아-아라비아 광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지리적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기후는 서쪽의 지중해성 기후와 동쪽의 광야성 기후의 혼합으로 나타나며, 연중 강수량은 해안 지역이 500mm, 다마스커스 지역은 250 mm 정도이다. 또 이곳은 지리적 특성상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역사적으로 많은 세력들이 대결한 장소였고, 여러 민족이 이주하여 형성한 혼합 문명을 이룬 곳이기도 하였다. 시리아 지역의 문명권은 지중해 연안, 오론테스 (Orontes) 강 유역,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자지라(Jazirah) 지역, 남동쪽의 시리아 광야, 그리고 남부의 요르단과 경계 지역인 하우란(Hawran) 등으로 나누어진다. 아나톨리아의 고산 지대에서 발원한 유프라테스 강이 시리아의 북동 지역으로 흐르면서 북쪽의 자지라와 남쪽의 시리아 광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는 일찍부터 우가리트(Ugant) · 라타키아(Lattaquia) · 타르투스(Tartus) · 아르와드(Arwad) 등의 항구 도시들이 발달하였다. 오론테스 강 유역에는 안티오키아(Anthiochia) · 아파메아(Apamea) · 하마(Hamah) · 카트나(Kama) · 카르카르(Karkar) · 카데시(Kadesh) 등의 도시들이 형성되었으며, 매우 기름진 평야를 끼고 있어서 지중해 연안과 함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자지라 지역은 발리크 강과 하부르 강이 유프라테스로 들어가는 지역으로서 적절한 강수량과 기름진 토양 때문에 이미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야생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임으로써 전형적인 농업 정착 문명을 형성하였다. 기원전3000년경부터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수메르 문명의 영향으로 시리아 최초의 도시들이 하부르 강과 발리크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텔 브라크(Tell Brak) · 하부바 카비라 등이 자리잡고 있는 하부르 강 유역은 겨울철의 강우와 여름철에 불어나는 하천의 물을 이용해서 오늘날에도 시리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양의 곡식을 생산하는 곡창 지대이다. 특히 이 지역의 발달은 기원전 2000년경 고 아시리아 세력이 아나톨리아의 카데시 지방에서 구리 광산을 개발하고 무역로를 개척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는 카르케미시(Carche-mish) · 마리(Mari) 등의 무역 거점 도시들이 발달하였고, 강 남쪽에 위치한 시리아 광야는 예로부터 유목민들의 고향으로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2200년경의 아모리족, 기원전 1200년경의 아람족 등이 형성된 곳이다. 시리아 가장 남쪽에 있는 하우란 지역은 검은 화산암으로 뒤덮인 광야로, 이스라엘의 갈릴래아 호수 동쪽의 골란 고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기 · 중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 문명] 시리아 최초의 도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 문명의 영향을 받았는데, 기원전 4000년경의 토기 · 통 도장 · 숫자가적힌 토판 문서 등을 통하여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300~2000)에 셈족어를 말하는 부족들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과 오론테스 강 유역에 도시를 형성하였고, 후르리어를 말하는 부족들은 하부르 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텔브라크, 하부바 카비라, 에블라(EЫa), 마리, 우가리트, 하마, 쿠에라(Khuerah) ,레일란(Leilan), 텔 모잔(TellMozan) 등지에 이 당시 도시 문명의 흔적들이 잘 나타나 있다.
넓이가 40만 km²에 이르는 텔 브라크에서 '눈(Eye) 신전' 과 나람(Naram) 신의 궁전이 발견되었고,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하부바 카비라는 남부의 메소포타미아와 북부의 아나톨리아 지방을 연결하는 무역 중계 도시로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성벽으로 둘러싸인 18만 km² 넓이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지중해변의 항구 도시를 거느린 우가리트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도시로 설립되었는데, 기원전 2000년 이후 이 도시를 중심으로 근처의 도시들을 흡수하여 막강한 왕국을 형성했다. 기원전 14~13세기에 기록된 1,000여 점의 토판 문서를 통하여 쇄기 문자로 만든 독특한 우가리트 알파벳의 존재가 알려졌으며, 가나안 종교의 모습도 확인되었다.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알레포(Aleppo)는 비록 다른 유적들처럼 고대 도시의 흔적을 제대로 발굴할 수 없었지만, 단편적인 유물들을 통하여 기원전 3000년경부터 도시로 발전하였음이 밝혀졌다. 기원전 1900년경 얌카드 왕국의 수도였던 알레포는 기원전 1600년경 히타이트의 무르실리스(Mursilis)에 의해 파괴되었고, 우가리트는 기원전 1200년경 바다 민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마리는 주변 자연 환경이 도시 설립 조건에 적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프라테스 강의 수운(水運)과 무역로를 통제할 목적으로 기원전 2800년경부터 발전되기 시작한 도시였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15,000여 : 점의 토판 문서를 통하여 거주민이 아모리족이었고 고도로 발달된 도시 문명을 형성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마리는 기원전 1750년경 바빌론의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에 의해 파괴되었다. 또 텔 마르디크(TelMardikh)에 위치한 에블라는 기원전 2400년경부터 성벽을 지닌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이 시대의 궁전 'G' 에서 17,000여 점에 달하는 토판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기록된 언어는 아모리어나 아람어의 기원이 되는 서부 셈어 계통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2400년경부터 고유한 서부 셈어족이 이곳에 정착하였고, 기원전 1600년경 무르실리스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텔 모잔에 위치한 우르케시(Urksh)는 후르리족의 최고신인 쿠마르비(Kumar)를 수호신으로 모신 전설적인 도시였는데, 기원전 2400년경부터 건설된 궁전과 신전의 발굴을 통하여 당시 이곳이 후르리족의 수도 였음이 밝혀졌다.
〔미탄니 왕국] 시리아 북부 지역은 주변에 강대 세력인 히타이트와 아시리아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특성상 하나의 통일된 세력권을 형성하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기원전 1500년경 와수카니(Wasurkkami)를 수도로 하는 후르리족의 새로운 정치 세력인 미탄니왕국(기원전 1500~1200)이 형성되었다. 미탄니 세력의 출발은 이집트 제18 왕조의 투트모세 1세(Thutmose I, 기원전 1524~1518)의 미탄니 침공 기록을 통하여 그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미탄니 왕국은 주종 관계의 계약을 통하여 시리아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자신의 세력권에 포함시켰고, 정략 결혼으로 이집트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1300년경부터 북쪽 히타이트 세력의 확장과 미탄니 왕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으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285년경 미탄니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벌어진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의 동맹군으로 활약하였고, 부상하는 아시리아 세력에 대한 완충 국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지정학적인 특성 때문에 히타이트 · 이집트 · 아시리아의 문화적 교류의 장(場)이 되었다.
〔아람 민족)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해서 에게 해 지역에서 출발한 일련의 민족 이동은 소아시아를 거쳐 육로 또는 해로를 통해 시리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람족(기원전 1200~732)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지역 중심이기보다는 부족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기 때문에 민족 이름이 대부분 부족을 의미하는 '비트' (Bit)로 시작되었다. 기원전 1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도시 문명을 형성한 아람족의 세력권은 북부 지방의 경우 비트-박히아니 · 비트-아디니 · 비트-아구시 · 사말 등이었으며, 남부 지방에는 아람-소바 · 아람-다마스커스 · 마아카 · 게슈르 · 비트-록호브 · 토브 등의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아시리아는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Tiglath-pileser I , 기원전 1117~1078) 시대부터 약 200년 동안 아람족을 점령하기 위하여 수많은 원정을 감행하였고, 다윗 왕은 아람-소바의 임금 하다데젤이 세력을 되찾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으로 진출하자 그를 쳤으며, 다마스커스의 아람인들이 하다데젤을 도우려 하자 이들을 정복하고 주둔군을 배치하였다(2사무 8, 3-6). 또 아람과 암몬의 동맹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2사무 10, 6-19). 기원전 856년경 아람 임금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이듬해 다시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의 임금아합(기원전 869~850)은 크게 승리를 거두어 자신의 아버지 바아사 시기에 빼앗긴 성읍들을 되찾고 다마스커스에 거주 지역과 시장을 세울 수 있었다(1열왕 20, 1-34).
기원전 860년경부터 다마스커스는 아람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였고, 기원전 853년에는 오론테스 강 유역의 카르카르에서 근처의 동맹군과 함께 아시리아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기원전 732년에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기원전 744~727)가 다마스커스를 점령함으로써 시리아 지역의 마지막 독립 세력은 붕괴되고, 아시리아의 식민지 시대가 지속되었다.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대한 발굴은 미미하지만, 역사기록을 통해 기원전 1500년경부터 도시로 발전된 것으 로 보인다.
(신 히타이트 문명권) 기원전 1000년경 시리아 북서지방의 아람 도시들을 신 히타이트 문명권(기원전 1000~600)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아시리아 기록에서 이 지역이 히타이트로 나타나며 이 도시들에서 발견된 기록에 루위어(Lum)가 아나톨리아의 상형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아나톨리아 지방의 가스가(Gasga)족과 무스키(Muskd)족의 세력 확장에 밀려서 시리아 북부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대표적인 신 히타이트 도시들은 카르케미시를 비롯하여 터키 남부의 카라테페, 아인 다라, 틸 바르십, 하마, 텔타이낫이다. 오늘날 시리아와 터키 국경 지대의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카르케미시는 에블라 문서와 마리 문서를 통해서 기원전 2400년경부터 매우 중요한 거점 도시임이 밝혀졌으며, 기원전 1000년경부터 건설된 요새가 발견되었다.
[후 시대] 시리아는 기원전 732년 다마스커스가 함락됨으로써 차례대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특히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1~486) 때에는 '강 건너' (Abar Nahar) 주(州)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지중해변의 항구 도시들은 여전히 독자적으로 무역을 발전시켰으며,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Seleukos I Nikator, 기원전 358/354~281)는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이 사망한 뒤인 기원전 312년부터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왕조를 형성하였다. 이때부터 시리아는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던 프톨레메우스 왕조와 끊임없는 영토 분쟁을 일으켰다. 오론테스 강 : 변에 위치한 안티오키아는 시리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였는데, 로마 시대에는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제국의 3대 도시로까지 발전하였다. 시리아 지역에 본격적인 로마 시대가 시작된 것은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다마스커스를 점령당한 기원전 63년부터였다. 시리아 광야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팔미라(Palmyra)는 구약 시대에는 타드모르(Tadmor)로 불렸고 기원전 3000년경부터 주거한 흔적이 있지만, 로마 시대에 들어서 대규모의 낙타 대상(隊商)의 집결지가 됨으로써 웅장한 로마식 도시로 발전하였다. 106년 트리야누스 황제(98~117)는 시리아와 나바테야 왕국을 포함하는 아라비아 주(Provincia Arabia)를 설립하고 보스라(Bosra)를 수도로 삼았다. 1- 다마스커스 ; 두라-에우로포스 ; 마리 ; 메소포타미아 ; 아람 민족 ; 아람어 ; 안티오키아 ; 에블라 ; 우가리트 ; 히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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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그]∑upior. [라 · 영〕Syria
글자 크기
8권

시리아 광야 한가운데에 위치한 팔미라 유적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