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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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순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촌. 예루살렘의 주교. 축일은 2월 18일.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 (마르 6, 3 ; 마태 13, 55) 명단에서 등장한 시몬이 이 성인인 듯하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260~340)는 그가 "주의 삼촌인 글레오파(Cleopha)의 아들"이었으며, 주의 형제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가 노년에 순교했다고 하였다(《교회사) 4, 22, 4 ; 3, 11 : 3, 32, 1-3). 그리고 《로마 순교록>(Matyrylolgim Romanum)에서는 "주교이자 순교자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성 시몬은 글레오파의 아들이며, 구세주와 육적으로 가까운 사이로 전해진다. 그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다음에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트라야누스의박해 때 많은 고문을 받고 120세의 나이로 용감하고 당당하게 십자가 형벌을 견디어내는 것을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과 재판관 자신까지 놀라워하는 가운데 순교하였다" 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기초한다면, 예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이모, 글레오파의 (아내)마리아" (요한 19, 25)는 시몬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몬은 예수의 외사촌 형제였을 것이다.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된 것은 야고보가 순교한 62년으로 여겨진다. 또 트라야누스 황제(98~117) 때 순교하였다면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가 순교한 107년일 것이다. 하지만 이냐시오가 원형 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한 반면에 시몬은 십자가형으로 순교하였다.
시몬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권을 이어받았으나,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이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중요 위치와 역할을 상실하였다. 야고보가 순교한 이후 예루살렘에는 반(反)로마 메시아니즘(Anti-Roman Messianismus)이 등장하였다. 이 유대 민족주의를 거부한 대부분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민족의 박해를 피하여 요르단 강 서안 지역으로 옮겨 가야 하였고,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결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활동하였던 기간은 많은 박해와 어려움들로 얼룩진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 참고문헌  김성태, <세계 교회사》 I, 신학 선서 11, 바오로딸, 1986/ C. Johnson, O.S.B. . A. Ward, S.M. cur., Martrologium Romamum, C.L.V. edizioni liturgiche, 1998/ J. Gnilka, Das Evangelium nach Markus, Bd. 1, EKK Bd. 2, Neukirchener Verlag, 1978/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Dix Mille Saints. Dictiomaire Hagiographique, Brepols, 199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