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영]Republic of Sierra Le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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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공식 명칭은 시에라리온 공화국. 서쪽은 340km에 걸쳐 대서양에 면하고 있으며, 북쪽과 동쪽은 기니, 남동쪽은 라이베리아와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71,740k㎡이고, 인구는 4,430,000명(1996)이며, 수도는 프리타운(Freton)이다.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크리오요 방언도 통용되며, 멘데족과 템네족 등 약 18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교는 없으나 이슬람교와 애니미즘을 믿는 이들이 대다수이고, 전체 인구의 3%만이 그리스도인이다.
불롬족이 최초로 이 지역 해안선을 따라 정착한 뒤 15세기경 북쪽으로부터 템네족이 이주해 왔으며, 15세기 말부터는 지금의 수도 프리타운 근처 해안에 정기적으로 유럽 상선이 정박하면서 공산품 · 노예 · 상아를 교역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787년에 영국에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 노예들이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도움을 받아 프리타운을 건설하기 시작한 이래, 해방 노예들의 정착이 계속되었다. 1807년 노예 무역을 불법으로 선언한 영국 의회에서는 이듬해 이곳에 노예 상인을 소탕하기 위한 해군 작전 본부를 설치하였다. 1890년 프랑스의 힘이 점차 강력해지자, 1896년 영국은 다른 지역도 점령한 뒤 시에라리온을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 1924년에 일부 의원들의 선거가 실시되었고, 1961년 4월에는 영연방에 속한 독립 정부가 되었다. 그러나 1967년에 군사 정권이 들어선 뒤 1년 만에 추방되면서 다시 민간 통치가 시작되었으나, 1997년 쿠데타가 일어나 사회 질서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1998년 내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국민들 은 여전히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음의 역사] 해안 지역에 들어왔던 포르투갈인들이 시에라리온의 복음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 후 1858년에 시에라리온 대목구가 기니 소속의 교구로부터 분리 · 설정되면서 '리용의 아프리카 선교회' (S.M.A.)가 이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선교회를 설립한 베실야크(M.Bésillac, 1813~1859) 주교가 4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가 곧 열병으로 사망하고 말아 선교는 '성령 수도회' (C.S.Sp)로 넘겨졌다. 이에 2명의 성령 수도회 소속 선교사가 1864년에 파견되었고, 곧 이어 '클뤼니의 성요셉 수녀회' (S.J.C.)가 진출하여 지속적인 선교 활동을 펼쳤다. 19세기 초에는 프로테스탄트가 진출하여 선교와 더불어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하여 노력했으며, 가톨릭
또한 영국의 도움을 받아 교육 사업에 주력하였다. 1950년에는 교계 제도가 설정되었다. 20세기 후반 국내의 정치적 혼란으로 선교사들이 반군에게 납치되기도 하였으나, 내전 이후 교회는 정부와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6년 현재 전체 인구의 3%인 138,000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있으며, 대교구 1, 교구 2, 본당 37개에 대주교 2, 주교 2, 신부 122(교구 소속 52, 수도회 소속 70), 수사 38, 수녀 62명이 있다.
※ 참고문헌  M. Lacko, (NCE》 13, p. 203/ 2000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371 (EB) 20, pp. 488-4921 Ammuario Pontificio 1998, Città del Vaticano,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