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산 - 山 [히]73" ㄱㄱ 〔라〕mons Sion [영]mount 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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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산 전경.

시온 산 전경.


시대에 따라 의미하는 지역에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최후 만찬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곳이며, 제자들이 성모 마리아와 함께 머물렀던 장소를 통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성서에서의 의미] 시온은 "건조한 땅"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사욘' (門)께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에서 시온은 대부분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포괄적이고도 추상적인 명칭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시온의 딸" 또는 "시온의 아들" 등 상징적인 표현으로 자주 쓰였다. 하지만 다윗이 점령하기 전 시온은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 요새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다윗이 점령한 여부스 도시가 '메주닷트시온 (7)"3 ntimip) 즉 "시온의 요새"로 나타나며, 이후에 시온은 '이르 다비드' (ㄱ)ㄱ ㄱㄱ호タ) 즉 "다윗 성" 으로 불렸다(2사무 5, 7).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역대기에서도 예루살렘 · 여부스 · 시온 요새 · 다윗 성 등이 모두 한 장 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1역대 11, 4-5). 성전 공사를 마친 솔로몬이 다윗 성 즉 시온의 한 장소에 안치되었던 계약의 궤를 성전으로 "올려 놓았다" 고 한것으로 보아, 솔로몬 시대에도 여전히 시온은 다윗 성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1열왕 8, 1). 기원전 8세기말 히즈키야 시대에 이르러 시온은 더 이상 예루살렘의 남쪽에 위치한 다윗 성만이 아닌 예루살렘 전체를 일컫게 되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에서는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 이, 그리고 "예루살렘"과 "시온 산이 동격으로 나오고 있다(2열왕 19, 21. 31). 시온의 딸이라는 집합적인 개념으로 미루어 시온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남부 유다 왕국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수도 있다. 제2 성전 시대에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서도 성전이 있는 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원전 164년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 당시 예루살렘을 점령한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시온 산으로 올라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였다(1마카 4, 36-61).
서기 70년 로마군이 성전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이 혼란기에 접어들었을 때 다윗 성의 위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의 역사가 요세푸(F. Josephus, 37/38~100?)는 현재 예루살렘 옛 성의 서쪽에 위치한 시온 산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다윗 성으로 보았고, 이곳에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135년 바르 코크바(Bar Kokhba, ?~135)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는 예루살렘을 로마식 도시인 엘리아 카피톨리나(Eia capitolina)로 재건할 때, 원래의 다윗성 자리인 키드론 골짜기 근처에 있던 왕들의 무덤 지역을 채석장으로 활용하였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쫓아냈다. 이 때문에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EusebiusCaesariensis, 260?~339)는 베들레헴에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11세기경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들이 다윗 무덤의 위치를 정하고 로마 시대의 석관을 모방하여 무덤까지 만든 후 성지로 선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 전통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 19세기의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하여 다윗 성의 위치가 예루살렘 남동쪽에 위치한 오벨 산임이 확인되었다.
[유 적] 1세기 말경 시온 산에는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회당이 있었는데, 이 회당은 훗날 "사도들의 교회"로 불렸다. 382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가 이 회당 옆에 팔각형 모양의 기념 성당을 지었고, 415년에는 예루살렘의 주교 요한 2세가 "하기아 시온" 즉 "거룩한 시온" 성당을 대규모 바실리카 양식으로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이 지역이 시온 대성전이 있는 언덕 즉 시온 산으로 오늘날까지 알려진계기가 되었다. 이 대성전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된 후 1009년 무슬림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십자군 시대에 폐허가 된 이 대성전 터에 "시온 산의 성 마리아" (Sancta Maria in Monte Sion)라는 기념 성당을 지었다. 이 성당을 건축할 때 사도들의 교회를 건물 안에 포함시켰으나, 이 성당 역시 1219년 무슬림들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현재 볼 수 있는 아래층의 다윗 무덤과 위층의 다락방이 있는 건물은 십자군 시대의 아름다운 아치형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존하는 기념 성당은 1906년부터 건축하기 시작하여 1910년에 완공된 것으로 독일 베네덕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 성당이 있는 장소에서 마리아가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사도 1, 13-14)고 하여 "마리아 영면(永眠) 기념성당" (Dormitio Beatae Mariae Virginis)이라고 불린다.
시온 산 남동쪽 힌놈 골짜기의 비탈에는 베드로의 회개(마르 14, 66-72 : 마태 26, 69-75 ; 루가 22, 56-62 ; 요한18, 15-27)를 기념하는 "베드로 회개 기념 대성전"(St.Petrus in Galicantu)이 1925년에 건축되었다. 이곳은 대사제였던 가야파의 관저 터였다. 또 십자군 시대에는 최후만찬이 이루어졌던 장소(마르 14, 12-31)로 여겨지는 곳에 "최후 만찬 기념 대성전"(Cenaculum)이 건축되었다.
이 기념 대성전은 1517년부터 터키계 무슬림들에 의해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48년에 이스라엘 정부의 소유가 된 후, 1층은 유대인들의 회당과 탈무드 학교로 사용하고, 위층에 있는 성령 강림 기념 경당은 폐쇄시켰으며, 최후 만찬 기념 경당은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누구나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의 발굴을 통해서는 시온 산 지역에 구약 시대 성벽의 흔적과 신약 시대 에세네 성문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시온 산의 남서쪽 비탈에 미국의 성지 연구소에서부터 출발한 예루살렘 대학과 그리스 정교회의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외의 지역은 오늘날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묘지로 활용되고 있다.
※ 참고문헌  G.A. Barrois, Zion, 《IDB》4, pp. 959~960/D. Chen et al., Mount Zion : Discovery of Iron Age Fortifications Below the Gate of the Essenes, Ancient Jerusalem Revealed. Jerusalem, H. Geva ed.,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94, PP. 76~81/ W.H. Mare, Zion, (ABD) 6, pp. 1096~1097/ B. Pixner, Church of the Apostles Found on Mt. Z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3, 1990, pp. 16~35/ B. Pixner et al., Mount Zion :The Gate of Essenes Re-excavated, 105, 1989, pp. 85~95. 〔金 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