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엘리자베스 Seton, Elizheh(177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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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시튼 성녀.

엘리자베스 시튼 성녀.

최초의 미국 출신 성녀. 사랑의 씨튼 수녀회(Sisters ofCharityofetonHil) 설립자. 축일은 1월 4일.
뉴욕에서 성공회 신자이자 의사인 아버지 리처드 베일리(Richard Bayley)와 어머니 캐서린(Cathene)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으나,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말아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교육과 조심스러운 성품을 지닐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1794년 1월 25일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월리엄 매기 시튼(William MageeSeton)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낳았다.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이로 인해 하느님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늘 성서를 읽고 틈틈이 봉사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800년 무렵부터 유능한 사업가였던 시아버지의 죽음과 사업의 파탄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1803년에는 남편 월리엄의 폐결핵이 악화되어 기후가 따뜻한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났지만 피사(Pisa)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남편마저 사망하고 말았다.이탈리아에는 시튼 가문과 오랜 연고가 있는 필리치(Fillichi) 가문의 필립보와 안토니오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젊은 미망인 엘리자베스와 큰딸 안나 마리를 위로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 영향으로 엘리자베스는 가톨릭 교회를 알게 되었는데, 특히 성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안에있는 <십자가에서 내리심>이라는 성화 앞에서 성모 마리아의 통고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주님 봉헌 축일에 성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 가톨릭에 깊은 매력을 느껴 개종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종에는 장애도 많았다. 당시 뉴욕은 먼저 이민 와서 자리를 잡은 성공회 등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상류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고,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무지하여 서민층을 이루고 있었다.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은 신분하락과 함께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유산 상속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갈망 하나만으로 개종하여 1805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처음으로 영성체를 하였다. 그때의 심정을 그녀는 "마침내 하느님은 저의 것이 되었어요. 저는 그분을 모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였다.
볼티모어 교구 캐롤(John Carroll) 대주교의 초청을 받아 자녀들과 함께 뉴욕을 떠나 볼티모어로 간 엘리자베스는, 탁월한 지성과 하느님의 은사로 1809년에 미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종교차별과 빈곤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아동들에게 지식 전달과 함께 하느님을 가르치고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5일 볼티모어 시의 성 메리 신학교(St. Mary's Seminary) 강당에서 엘리자베스는 청빈 · 정결 · 순명 서원을 하면서 미국 최초의 현지인 수도회인 사랑의 씨튼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곧 이어 미국 각지 신부들의 추천으로 모인 다섯 명의 처녀들이 그 해 5월 31일 착복식을 하였고, 6월에는 에미츠버그(Emmis-burg)에 신축한 수녀원과 학교로 이전하여 사도적 활동 수녀회로서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엘리자베스는 새 수녀회의 규칙을 만들기 위하여 프랑스 쉴피스회 신부들이 준 빈천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규칙을 읽고 "이 회헌에서 우리 정신과 맞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하느님 섭리의 오묘하심에 탄성을 올렸다고 한다. 그것은 에미츠버그의 새 수도회가 이미 교육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병자들을 간호하면서, 소외된 이들 특히 흑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그녀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규칙을 19세기 미국이라는 상황 안에서 시대의 요청에 맞게 수정하였다. 시랑의 씨튼 수녀회는 1817년에 뉴욕에 분원을 설립한 이후 미국 여러 곳에서 고아원 운영과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수녀들과 수녀회의 활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엘리자베스 시튼은 "교회의 자녀들이 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821년 1월 4일 사망하였다. 그리고 1959년 12월 18일 가경자로 선포되었으며, 1963년 3월 17일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5년 9월 14일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평 가] 유럽에는 탁월한 지성과 은사 때문에 어머니로서 수도회를 설립한 이들이 이미 있었지만,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가 수도자가 된 것은 그녀의 지성과 은사뿐만 아니라 오랜 소망과 실천적 덕행의 열매로 인한 것이었다. 성녀는 사랑 · 친절 · 인내 · 고통에서의 강인함 등 그리스도교적인 덕성에다 지성 · 유머 · 교양 등 자연적인 덕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성공회 신자였던 시절 가정 주부로서 과부와 가난한 이들과 병자와 임종하는 이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했던 탓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프로테스탄트 사랑의 수녀' 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성녀는 수도회의 창립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자로서, 또 다섯 자녀의 어머니로서 어느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한 손길을 보냈는데, 한 예로 부유한 학생들과 학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을 동시에 받아들여 학교를 운영함으로써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 과부와 개종자로서, 교육자와 수도회 설립자로서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철저한 사랑을 가졌던 엘리자베스 시튼의 성덕은 사실 평범함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섭리가 이끄시는 대로 삶이 가져오는 슬픔과 고통을 받아들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주고 또 받을줄 알았다. 그 삶의 핵심은 영원에 대한 갈망 안에서 매일 성체를 모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내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때 가난 속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라는 말에 성녀의 영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사랑의 씨튼 수녀회)
※ 참고문헌  Joseph I. Dirvin, C.M., Mrs. Seton : Foumdress of theAmerican Sisters of Charity, Farrar, Straus & Cudahy, New York, 1962(김승혜 편역, 《성녀 엘리자베스씨튼》, 분도출판사, 1975). 李文 [范珍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