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금천구 시흥3동 937-1소재. 1971년 9월 17일 대방동(大方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 구역은 시흥4동을 제외한 시흥동 전 지역과 시흥본동 일부지역. [교 세] 1971년 667명, 1976년 2,542명, 1981년 4,656명, 1986년 8,139명, 1991년 8,992명, 1996년 5,255명, 1999년 5,906명. [역대 신부] 초대 이기명(李起明) 프란치스코(1971. 9~1973. 6), 2대 임덕일(林德一) 아마투스(1973. 6~1976.5), 3대 이문주(李文柱) 프란치스코(1976. 5~1979.5), 4대 최서식(崔瑞植) 라우렌시오(1979. 5~1982. 8), 5대 전창문(田昌文) 가브리엘(1982. 8~1987. 8), 6대 김수길(金秀吉) 루도비코(1987. 8~ 1992. 9) ,7대 송진(宋眞) 발렌티노(1992. 9~1996. 9), 8대 김승훈(金勝勳 마티아(1996. 9~현재).
[공소 시대] 1901년에 14명의 신자로 구성된 가리봉 공소로부터 시작이 된 시흥동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약현(현 중림동) 본당 관할이었는데, 1936년에 도림동(道林洞) 본당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그리고 1940년에 말미 공소가 설립되면서 가리봉 공소에서 분리되자 시흥동 지역 신자들은 말미 공소에서 공소 예절을 드렸다. 그 후 말미 공소가 잠시 폐쇄되었다가 1952년 시흥 공소로 이어졌다. 한편 1958년에 살레시오회에서 도림동 본당을맡게 되면서 주임 수아레스(I.Suarez, 徐) 신부와 보좌 스파이스(R. Spies, 巴)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스파이스 신부는 앞으로 시흥동 지역이 도시 계획에 따라 크게 발전할 것을 예상하고 레지오 마리애를 조직하는 등 선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1967년 시흥동 지역이 대방동 본당 관할로 이관되고 도시 계획으로 건물이 철거됨에 따라 시흥 공소는 폐쇄되고 말았다. 그 뒤 1968년경부터 시흥동 일대에 수재민 판자촌이 들어서면서 주민이 늘어나자 역대 시흥 공소 회장들이 중심이 되어 공소를 마련하고, 주일마다 모여서 공소 예절과 어린이 교리 공부 및 예비 신자 교리 강습을 하였다. 이때 공소 신자수는 70명이었는데, 이들은 1969년 봄부터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이듬해 5월 시흥2동 184번지와 185번지의 부지를 매입한 뒤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2월 20일 48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971년 9월에 사제관이 완공되자 교구에서는 시흥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본당 설립 및 발전]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이기명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단계적으로 본당 사목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연령회와 성모회 등을 구성하여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2대 주임 임덕일 신부는 전임 신부 때부터 해오던 수녀원 건축 준비를 이어받아 그 해 7월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9월 말에 완공하고, 서울 성가 소비녀회를 초청하였다. 1975년 5월 18일에는 주보(週報)를 창간하였으며, 11월에는 처음으로 사목회를 구성하였다.
한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문주 신부는 부임 직후 초 · 중 · 고등 주일학교 운영을 활성화 하였고, 신자 재교육에도 힘써 외부 인사를 초빙하여 여러 차례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협소한 성당에서 더 이상 원활한 사목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문주 신부는 1977년을 '새 성전 건립을 위한 준비의 해' 로 선포하고 그 해 11월 현 성당부지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공사에 착수하여 5월 28일 지하실을 완공하고 6월 24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12월 20일 1층 공사까지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공사비 부족과 건축 허가상의 문제로 나머지 공사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한편 4년 반 동안 사목 활동을 도와온 서울 성가 소비녀회가 1977년에 철수함에 따라 천주섭리 수녀회 수녀들로 교체되었다. 성당 공사가 중단되어 어수선한 가운데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서식 신부는 부임 즉시 2차 공사 준비를 서둘러 1980년 11월 20일 2층 내부를 완공하고, 이듬해 1월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5대 주임 전창문 신부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하였고, 가브리엘 장학회를 설립하여 미신자를 포함한 불우 이웃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가브리엘 장학회는 6대 주임 김수길 신부 때까지 이어져 수혜자를 넓히는 등 활발히 전개되었다. 김수길 신부는 성체 신심을 통한 가정의 일치와 본당 공동체의 일치에 중점을 두고 사목을 전개하였다. 7대 주임 송진 신부는 본당 내의 여러 제도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를 재정비하였고,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노동 사목과 소외 이웃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인 대책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였다. 특히 장애 아동 조기 교육원인 '누리 교실' 을 개원하여 영세민 가정 장애아들의 재활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1994년 1월에 설립된 시흥4동(始興四洞) 공소가 이듬해 3월 3일 시흥4동 본당으로 승격되자 이 지역 신자들을 이곳으로 이관하였다. 8대 주임 김승훈 신부는 본당 설립 25주년인 1996년에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하는 한편, 이듬해에는 본당의 역사를 담은《시흥동 본당 25년》을 발간하였다. 1999년 3월 김승훈신부는 중국을 방문하여 만주 · 연변 · 도문 · 훈춘 · 목단강 등의 공소를 돌아보고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당 차원에서 연길 일대의 공소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본당의 신자수가 6,000명에 달하자 시흥2동에 공소를 설립하여 본당 분할을 준비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대방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시흥동 본당 25년》, 천주교 시흥동 교회, 1997/ <약현 본당의 공소와 교세 통계표》,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1/《약현 본당 백년사》,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2. 〔吳美娜〕
시흥동 본당
始興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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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