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 본당

新葛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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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구갈리 택지 개발 2지구 4021-2 소재. 1988년 2월 12일 지동(池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효임 골롬바. 관할 구역은 기흥읍 전 지역과 구성면 일부지역. 〔교 세〕 1988년 1,366명, 1992년 ,305명,1995년 2,613명, 1997년 2,410명, 1999년 2,695명〔역대 신부〕 초대 이상각(李相珏)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988. 2~1989. 1), 2대 이상영(李相榮) 베드로(1989. 1~10), 3대 서종민(徐鍾敏) 바오로(1989. 10~1990. 5), 4대 정성진(鄭聖鎭) 세례자 요한(1990. 5~1995. 2), 5대 민경국(閔庚國) 안드레아(1995. 2~1998. 1), 6대 안성노(安性老) 바오로(1998. 1~현재).
기흥면 지역은 행정상으로는 용인시에 속해 있지만 주민 대부분의 생활권이 수원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곳 신자들은 수원에 있는 지동 본당에 교적을 두고 신앙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여, 지동 본당 초대 주임 피셔(Konrad Fischer) 신부는 20여 평의 강당을 임대한 뒤 1970년 6월부터 부정기적이 나마 주일 미사를 봉헌해 주었다. 그러다가 1985년 10월 기흥면이 읍으로 승격되자 인구의 증가에 따른 잠재신자 및 전입 신자에 대한 사목이 절실해졌다. 이에 지동 본당에서는 4대 주임 이종철 신부 때인 1987년 10월 4일 신갈 본당 신설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신갈리 43-4번지에 부지를 마련한 뒤, 그 해 12월 24일 조립식 가건물 성당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88년 2월 12일 지동본당에서 253세대 669명, 북수동(北水洞) 본당에서 92세대 314명, 용인(龍仁) 본당에서 47세대 127명을 이관받아 신갈 본당을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상각 신부는 사목 협의회를 구성하고, 성당설계도 공모와 신축금 약정 등 새 성당 건립을 추진하는 한편,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 이상영 신부와 3대 주임 서종민 신부는 재임기간이 각각 8~9개월여로 짧았으나, 현장 교육 사목과 '함께합시다' 운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하여 신자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4대 주임 정성진 신부는 본당의 날을 정하고, 회보 <겨자씨>를 창간하여 본당의 일치를 도모하는 한편, 1990년 9월 16일에는 '새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 를 발족하여 이듬해 부지를 매입하는 등 성당 건립을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으나, 성당 부지가 택지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성당 건립은 중단되고 말았다. 또 1993년 12월에는 전교 소임을 수행하던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에서 분원을 철수하였다.
5대 주임 민경국 신부는 '효주 글방' 을 개원한 데 이어 형제회를 발족하여 본당을 안정시키고, 교무금 배가 운동을 통하여 유보된 성당 건립의 터전을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1995년 3월에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어 현재까지 전교와 봉사의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 중단되었던 성당 건립은 1997년 9월 22일 한국 토지 개발 공사로부터 기흥읍 구갈리 택지 개발 2지 구 4021-2 부지를 대토로 받으면서 다시 시작되었는데, 6대 주임 안성노 신부 때인 1999년 6월 5일에 기공식이 거행되어 현재 신축 공사 중에 있다. 성당 건립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죽전(竹田) 본당 분할 준비에 노력하여 1998년 8월 4일 죽전 본당을 분리하였고, 현재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10여 개의 단체가 조직되어 활발히활동하고 있다. (→ 수원교구 ; 지동 본당 ; 북수동 본당 ;용인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