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의사 결정을 수행할 때 개인이나 공동체 등 국민 일반보다 우월한 주체로서 국민을 강제하고 명령한다는, 논리상으로 가정한 권력 또는 그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 자체를 가리킨다. 공권력의 개념은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계의 국가에서 공법 개념을 구성할 때 중요한 구실을 했다. 때문에 공권력 대신에 통치권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군주의 전제권 또는 포괄적 지배권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어 부적절하다. 언론에서 '공권력을 투입한다' ,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이때는 공권력을 공동체의 질서와 안정, 평화를 위해 구성원의 합의와 동의 속에 그 우월적인 명령 · 통제권을 행사하는 주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공권력을 공동선을 도모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 권력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일반적 용어보다 공권력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개인, 공동체(교회)가 현실적인 힘으로 실재하는 국가 권력과 맺게 되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관계는 신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연법이 요구하는 당연한 관계라고 본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공권력의 근원과 본질 · 임무 · 정통성, 공권력과 국민의 저항 등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본 질〕 권력의 본질을 파악할 때 '실체설' 과 '관계설' 이 대립해 왔다. 홉스, 헤겔 등 이른바 대륙계 학자들이 주장한 실체설은 권력을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생각하여 이러한 실체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자가 되어,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한다고 본다. '권력을 장악한다' , '권좌에 오른다' 라는 말은 이러한 실체설에 입각한 표현이다. 이에 반하여 로크로 대표되는 관계설은 권 력을 하나의 관계(relation)로 본다. 관계설에서는 권력을 결코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사이의 관계로 이해한다. 관계설은 권력자의 강제만으로 권력이 존속할 수 없으며 거기에는 다스림을 받는 편으로부터의 적극적인 또는 소극적인 지지, 즉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권력의 본질을 이해할 때 실체설은 다스림을 받는 자의 동의를, 관계설은 권력 관계에서 강제적 요소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점에서 각각 불충분하며 오히려 실체와 관계의 측면을 동시에 볼 때에만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은 실체적 요소를 포함한 관계로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사이에 강제나 동의로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형성된 관계이다. 이처럼 실체적 요소를 포함한 관계로서의 권력이, 그 권력에 강제되거나 동의하 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해, 도덕적 또는 실정법적으로 우월성을 주장하며 강제나 명령을 내릴 때 그 권력을 공권력이라고 부른다.
가톨릭 교회는 국가란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하나의 필연이라고 본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공동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지도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모든 문명 공동체는 통치 권위를 가져야 하며, 이 권위는 사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 근원을 본성에 두고 있으며 따라서 본성의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안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권력은 그 자체로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고 또한 인간의 천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으로 형성된 권력 관계, 제도화된 권력의 주체 또는 권력 그 자체를 국가라고 할 때 국가의 근원도 필연적이다.
〔임 무〕 공권력은 공동선을 증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공동선의 증진이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공권력의 일차적인 임무는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권력의 임무를 공동체의 기본적인 안정과 평화 유지에 있다고 보는 것은 공권력의 임무를 소극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공권력 투입' 또는 '공권력 행사' 라는 말들은 공권력이 이러한 기본적 임무를 위해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됨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경찰력인데 경찰은 공동체에서 승인받은 물리력 행사의 주체로서 구성원의 생명과 인권, 재산 등을 보장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와 달리, 구성원에게 공동선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과하는 것을 공권력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은 공권력의 임무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권력을 이해할 경우 이런 임무의 실행은 공권력 행사라고 불리기보다는 사회 복지, 사회 보장 등 다른 구체적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공동선의 성취 또는 증진은 사회, 정치, 경제적 목표 성취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한 공동체 내의 인간 관계의 질적 성장과도 관계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권력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동의를 얻어 강제하는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실체이다. 그러므로 공권력을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행사한다는 것은 공권력이 공동체가 공유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의 인간 관계를 궁극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권력의 임무를 공동체의 목표 실현과 그 실현을 위한 실용적인 방법 추구라고 보는 것은 공권력 행사를 좁게 이해한 측면이고, 반면에 공동체 내의 인간 관계 증진을 위해서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권력의 임무를 폭 넓게 이해한 경우이다.
공권력의 임무에서 권력의 남용을 막는 문제도 중요하다. 권력의 남용은 위선, 기만, 음모, 폭력, 잔악, 공포, 부패, 특권, 고집 등으로 나타나며 또한 먼저 권력 관계를 왜곡시키고 권력 행사의 효력을 상실시킨다. 여기서 권력 관계란 국가가 공권력의 주체로서 행하는 행정상 법률 관계를 말하는데 권력을 남용하면 국가와 국민 사이에 승인, 합의된 법률적 규율이 가지는 정당성이 손상된다. 정당성이 손상된 공권력 행사(행정 행위, 사법 행위)는 국민으로부터 동의와 승인을 얻지 못하게 되며 공정성, 실질적 집행력 등을 잃게 된다. 또한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국가 권력을 불신함으로써 결국 국민들 사이의 인간 관계도 악화시킨다. 이처럼 권력의 남용은 효율적인 법 집행을 통한 사회 공통의 목표 실현이라는 공권력의 기본적 목적은 물론 전체적인 사회 공동체의 인간 관계를 해침으로써 결국 공동선의 증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가톨릭 교회는 일찍이 공동선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일면적인 요소로서 파악하지 않고 그것들의 총체로서 이해해 왔다. 따라서 공권력은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오직 인간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일부와만 관계를 맺는 사람이나 집단을 위해 행사되는 것이 아니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의 말처럼 국가 권력은 사회 생활을 질서 있게 하고 인간의 인격이 한층 쉽게 육체적, 지적, 도덕적 완성을 달성하도록 돕는 데 있다. 국가 권력의 특권과 사명은 국민 생활을 조화 있게 하는 것이다.
독재 정권과 같이 국민 대다수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하고 오로지 강제로만 유지되는 권력이 있다고 할 때 그 권력을 공권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가 문제된다. 그 공권력이 성립 과정에서 도덕적인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강제로 유지될 뿐만 아니라 그 실효성에서도 경제성장 등의 효과조차 확보하지 못할 때 공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폭발적일 수 있다. 이른바 개발은 명분으로 삼고 독재를 정당화하면서도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후진국들의 경우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공동선을 위해 존재해야할 공권력이 오히려 공권력을 심각하게 해칠 때, 그러한 공권력에 대해서 공동체의 성원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를 문제삼아 왔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앞서 보았던 교황 레오 13세와 비오 11세 이후 계속되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는 공권력의 월권행위로 국민이 억압을 당하는 경우 국민은 객관적으로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공권력 남용에 항거하여 자연법과 복음이 보여 주는 한계 내에서 자신과 동포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다(사목 74항)고 하여 정당한 저항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야기되는 혼란이 최소화되고 새권력이 공동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또한 저항이 정당하더라도 그 수단의 윤리성을 면밀히 판단하고 최대한 합법적 수단을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 불복종과 같은 비폭력적 방법을 그 다음의 대안으로 한다. 가톨릭 교회는 아주 특수한 상황은 별개로 하고, 부당하고 독재적인 국가 권위에 맞서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은 비폭력적 저항뿐이라고 전통적으로 주장해 왔다(페쉬케). 하지만 교회의 교도권은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모든 저항 수단을 다 써 보아도 성공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폭력에 의한 저항이 성공하며 그로 인해 더 악화되지 않고 개선되리라는 확실한 희망이 있을 때 개인의 기본권과 공동선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명백하고도 장기화된 폭정을 종식시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무력 투쟁을 용인한다(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
〔공권력에 대한 교회의 입장〕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권력을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보고 권력의 존재목적도 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 구성원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데 두었다. 이런 견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인간 사회와 정치 권력(국가)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인간 본성에 바탕한 자연적 제도로 본데서 기인한다. 그는 인간 사회와 국가가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자연적 제도이기 때문에 신성한 정당성과 권위를 갖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하느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공동체든 권력이나 권위는 필요하되 하느님 뜻에 맞게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국가를 그 자신의 권한과 목표, 차원을 가지는 제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국가를 그 자체로 완전한 사회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완성된 사회, 하느님 나라는 자연법이나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신성한 법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스콜라 철학에서는 공권력(국가 또는 국가 권력)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근대까지 이어지는데 레오 13세도 모든 공권력은 틀림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결론지었다. 당시는 권력이 국민의 위임에서 나온다는 근대 민주주의적 견해가 등장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의한 정치적 안정이 위협받을 때였다. 따라서 당시의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형태의 권력에 대한 저항도 죄가 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공권력을 옹
호한 것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공동선의 요구를 최우선시하던 전통적 입장을 지키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의 역할을 강조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은 하느님이 정치 권력의 근원이므로 특정 국가에서 어떤 특별한 형태의 정부가 출현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이기에 하느님은 이를 지지하실 것이라는 판단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상이한 정부 형태들도 그 자체로 가능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기존의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스콜라 철학이 국가 권력의 오류와 한계의 가능성을 지적하며 그에 대한 비판의 문을 열어두었던 것과는 달리 국가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였던 것이 이때의 특징이다. 그 후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레오 13세의 입장을 옹호하면서도 권력에 대한 저항에 정당한 근거가 있을 경우 그 저항이 정당화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정당한 저항의 가능성을 인정했던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의 전통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공산주의 정부 밑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충성의 딜레마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당한 저항의 가능성을 시사한 그의 의도는 당시 좌익 정권이 들어선 가톨릭 국가 국민들을 향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공권력의 근원과 본질을 이해할 때 공권력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전통적 견해가 사라진 적은 없으나 그와는 별개로 공권력 자체 또는 그 정당성에 대한 판단에 따라 교회와 사회가 공권력 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항상 있어 왔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국가를 인간의 공동 생활을 위한 보조적 제도로 본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존재 의미는 하느님의 뜻을 이 지상에서 실현하는 데 있다.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은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에게 특별하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국가 권력이 사회의 약자를 특별히 배려할 것을 요구한다. 비오 11세는 권력자는 사회와 그 구성원을 보호해야 하며 특히 약한 자, 가난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 부자는 그가 가지는 부로써 자기를 방어하기 때문에 국가의 보호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한 국가 내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국가 권력들이 서로 협력하여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불균형을 해소할 것을 권고한다.
교회는 <사목 헌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국가 권력이 제공하는 특권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한 기득권의 행사로 교회 증언의 성실성이 의심을 받게 한다든지 혹은 새로운 생활 조건이 다른 규범을 요청할 경우에는 정당한 기득권의 행사도 포기할 것이라고 하여 증언과 판단과 활동의 자유를 간직하기 위하여 교회에 주어지는 특권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교회는 더 나아가서 공권력에 대해서 자신의 예언자적 역할을 채택할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분명 교회 지도자들이 국가로부터 후원과 특권을 추구하는 한, 그들은 세속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종속되어야만 하며 증언과 판단과 활동의 자유, 예언자적 역할을 할 자유를 상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들이 교회를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공권력의 정통성〕 공권력은 유일의 정당한 권력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권력으로 행사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공권력 개념에는 개인이나 집단에 우선하는 우월적 존재로서 국가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 국민은 그 효율성과 정당성을 문제삼게 되며 그에 대한 판단의 정도에 따라 합의와 저항의 태도도 달라지게 된다. 즉 공권력 행사에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승인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 권력의 정통성 문제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그 스스로의 존립을 줄곧 유지하기 위해서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공권력에 대한 국민 일반의 동의와 합의가 약화되면 권력 관계가 약화되고 결국 기존 권력은 쇄신될 것을 강요받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권력으로의 교체를 요구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공권력의 실용적 측면만을 보는가 윤리, 도덕적 측면도 중요하게 보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공권력의 등장 배경이나 그 성립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고 공권력의 실제 행사 과정과 그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전자에 해당한다. 공권력의 등장과 성립 과정에서 국민 일반의 의사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 그것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완비되어 있는지, 그리고 국민 일반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숙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정통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반응은 달라지게 된다. 전근대적인 사회일수록 공권력의 등장이나 성립 과정의 민주성, 윤리성, 도덕성 등이 무시 또는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근대화가 진행 중인 국가들에서 국민들은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경제적 사안 등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민감하므로 공권력의 윤리, 도덕성은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후진국과 개발 도상국에서 개발 독재가 행해지는 것이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그에 기반한 공권력 행사의 전통이 잘 확립된 나라들일수록 공권력의 등장, 성립 배경과 그 행사에 있어서 공권력이 윤리, 도덕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른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뇌물 수수나 직권 남용, 특혜 시비, 사생활의 문란 등 문제로 말미암아 하루 아침에 실권하는 사례들이 이러한 점을 잘 보여 준다.
정통성(지배)의 유형 : 베버는 다음의 3가지 지배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① 전통적 지배(traditionale Herr-schaft)로 이것은 옛날부터 통용되어 오는 전통의 신성성에 대한 신념과, 그 전통에 의해서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신분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에 기초하는 지배이다. 즉 그 지배가 오랜 시일에 걸쳐 전통과 관습을 그 배후에 가지고 그와 같은 긴 역사적 전통에 대한 신뢰가 다스리는 자의 지배에 정당성의 근거를 부여하는 지배 유형이다. ② 합법적 지배(legale Herrschaft)는 법규화된 질서가 합법성을 가지고, 그것으로 지배권 행사의 권리를 부여받은 자가 규칙에 적합하게 행하는 지배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승인되는 지배 유형이다. 이러한 지배에서 전형적인 것은 이른바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원리 하에서 근대 국가의 관료가 행하는 지배이다. ③ 카리스마적 지배(charismatische Herrschaft)는 어떤 특정한 인격자의 신성성, 영웅적 위력, 이상적 규범성 및 그로 의해서 창조된 질서의 신성성 등에 대한 열렬한 신뢰에 기인하는 지배 형식이다. 그리고 이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는 순수히 개인적 능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통이나 제도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과 구분된다.
인류 사회가 진보할수록 전통성이나 카리스마적 지배보다는 합법적 지배 유형이 주된 것이 되고 있다. 합법적 지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한 공권력 행사의 합법성과 윤리, 도덕적 정당성이다.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잘 확립되어 공권력의 성립 과정과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선진 국가들일수록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합법성)이 문제시되는 경우는 적다. 다시 말하면 공권력 성립 과정이 합법적이라고 간주되면 그 행사 과정의 합법성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공권력 행사의 합법성을 국민들이 잘 감시할 수 있도록 여론과 헌정 질서의 기반이 제도적 측면에서나 국민 의식적 측면에서 잘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 국가들에서 공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는 앞서 지적했다시피 공권력 주체 즉 최고 통치자나 관료층의 부패, 타락 또는 사생활 문제 등 도덕, 윤리적 측면 때문에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전통적 지배나 카리스마적 지배 유형에서는 공권력의 성립과 행사에서의 합법성은 별로 문제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과의 합치, 계승 여부, 카리스마의 존재 여부에 따라 정통성이 문제된다. 전통적 지배나 카리스마적 지배에서 합법적 지배의 유형으로 진행하는 많은 후진국들과 개발 도상국들의 경우 이전에 카리스마와 전통이 부여하던 권위의 유지가 어렵게 되자 폭력이나 사기, 협잡에 의한 기만적인 정치 술수로 통치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독재 정권과 공권력의 합법성을 요구하는 국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의 상황이 야기되기도 한다.
※ 참고문헌 Karl H. Pescheke, Christian Ethics, C. Goodli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86(유봉준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분도출판 사, 1992)/ Donal Dorr, Option for the Poor, Gill and Macmillan, Dublin 1983(오경환 역,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분도출판사, 1987)/ 교황 청 신앙 교리성성, Instruction on christianfreedom and liberation, 198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역,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 령》, 1986)/ 교황 요한 23세, Pacem in Terris, 1963(정규만 역, 《지상의 평화》, 성바오로출판사, 1963)/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 사전》, 브 리태니커 · 동아일보 공동 출판, 1993/ Frederick Copleston S.J, A History of Philosophy, Image, 1960. 〔裵佑徽〕
공권력
公權力
〔라〕auctoritas publica · 〔영〕the politica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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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의 임무는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 유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