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채 申光采(?~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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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박해(乙亥迫害) 때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1815년 2월 22일 부활 대축일에 노래산(老萊山, 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에서 전지수라는 배교자의 밀고로 40명의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청송의 상부 관청인 경주 진영(鎭營)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는데, 이때 26명이 배교하고 석방되거나 옥사하였다. 온갖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신광채는 다시 대구 감영(監營)으로 이송되었다가 6~10월(음) 사이에 옥에서 병사(病死)하였다. (→ 노래산 ; 을해박해)

※ 참고문헌  《日省錄》 40, 영인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993,pp. 222~224, 391~392/《가톨릭 사전》/《달레 교회사》 中, pp. 51~59.〔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