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론》 神國論 〔라〕De Civitate Dei 〔영〕City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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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론》 제19권에 실린 삽화.

《신국론》 제19권에 실린 삽화.

히포의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가 신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 사상을 집약한, 모두 22권으로 구성된 초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역사 철학서이자 신학서. 아우구스티노는 이 작품에 대하여 '고심의 역작' 혹은 '대작' (opus ngens)이라고 표현하였다(22, 30).
〔저술 연대와 배경〕 410년 고트족 왕 알라리크 1세(Alaric I, 395~410)가 로마를 침략하였을 때, 이교도들은 그리스도교 때문에 생긴 재앙이라고 믿고 이교 경신례의 재건을 꾀하였다. 이에 아우구스티노는 친구인 마르첼리누스(Flavius Marcellinus, +413)의 요청을 받고 이교도들의 허구적인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저술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재논고》(再論考, Retractationes)에서 당시의 배경을 이렇게 서술하였다. "알라리크가 이끈 고트족은 로마를 함락하고 폐허화하였다. 이에 거짓 신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교 때문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더욱 분노하여 참 하느님을 모독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나는 주님 성전에 대한 불타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독과 하느님의 도성(都城)에 관한 그들의 편견과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나는 저술을 위해 몇 년을 바쳤다. 왜냐하면 그 동안 우선 해결해야 할 더욱 긴박한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스물두 권의 방대한 저작을 마감하게 되었다"(2, 43). 또 《재논고》 1장 35~36절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노는 413년에 《신국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426년에 완성하였는데, 414년에 제1~3권, 415년에 제4~5권, 417년에 제6~10권, 418~419년에 제 11~19권, 그리고 그 후 나머지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구성과 내용〕 저자의 집필 의도 : 아우구스티노는 《재논고》에서 《신국론》이 제1부와 제2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집필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제1부의 다섯 권(1~5권)은 이교도들의 경신례가 인간의 축복과 번영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이교도 경신례의 금지가 지금과 같은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반박이다. 그리고 또 다른 다섯 권(6~10권)은 이와 같은 불행이 시간 · 장소 · 사람에 따라, 때로는 심하게 때로는 약하게 옛사람이나 후대 사람들에게 꼭 다가오리라고 믿는 이들을 공박하고 있다. 즉 이교도 경신례의 가치와 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이들을 겨냥하였다. 따라서 제1부의 열 권은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이교도의 두 가지 견해를 공박한 작품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노는 타인의 견해만 반대할 뿐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못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제2부 열두 권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물론 제1부에서 이미 반론을 제기하였던 것처럼 제2부는 그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제2부의 첫 네 권(11~14권)에서는 두 도성, 곧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 각각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다음 네 권(15~18권)에서는 그 과정 즉 역사적인 진전을 논하였고, 마지막 네 권(19~22권)에서는 왕국의 종말을 언급하였다. 이와 같이 스물두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결국 두 도성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도성 중 더 좋은 도성 즉 하느님의 도성을 일컫는 '신국' 에서 이름을 따 제목을 《신국론》이라고 하였다.
세부적인 내용 : 제1부는 일종의 호교론으로, 교회에 대한 이교도들의 모함을 반박하고 특히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신학적 주제로 창조 때부터 세상 종말까지의 전 역사를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논하였다.
제1부에서는 이교 사상의 모순과 이교의 절대적 불합리성을 제시하는데, 그중 전편(1~5권)은 이 세상의 번영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제1권은 로마 제국에 대하여, 그리고 제2 · 3권에서는 이교도 신들의 무능과 무력을 제시하였고, 제4권에서는 로마인들의 위대함과 장점 그리고 그 이유들을 열거하였으며, 제5권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를 강조하면서 운명의 여신을 일축하였다. 후편(6~10권)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미래의 행복한 삶을 준비한다는 이교 신학의 허구적인 주장을 비판하였다. 우선 그는 바로(M.T. Varro, 기원전 116~127)의 저서 《고대인》(Aniqui-tates)에 나타난 대중적인 신화를 비판하고(6~7권) 그 철학과 신학을 비판한 다음(8권), 마지막으로 신플라톤적인 신학을 비판하였다(9~10권).
제2부에서는 두 도성의 이론과 논리를 제시하였는데, 즉 첫째는 그 기원 또는 출현(exortus, 11~14권), 둘째는 진전 과정(procursus, 15~18권), 셋째는 종말(fines debiti,19~22권) 등이다. 첫째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두 도성의 기원을 천사 창조와 선악(善惡) 문제로 설명하였으며(11~12a권), 이어 인간의 창조(12b권)와 타락 · 죄의원인 · 하느님의 구원 계획(13~14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두 도성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사랑의 주제로 결론을 맺고 있다. "두 가지 사랑, 즉 사욕을 끊은 하느님을 향한 철저한 사랑은 바로 하느님 도성의 근본 원리이며,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앞세운 이기적인 사랑은 바로 지상 왕국의 원리이다"(Fecerunt itaque civitates duae amores duo ; terrenam scilicet, amor sui usque ad contemptum Dei ;caelestem vero, amor Dei usque ad contemptum sui, 14, 18).
둘째 부분에서는 두 도성의 진전 과정을 역사적인 틀안에서 네 시기로 구분하였다. 즉 창조부터 노아 홍수 때까지(15권), 성조 시대부터 다윗까지(16권), 하느님만이 거룩함의 주인으로 다윗 이후 예언자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 시대까지이다(17권). 그리고 내용이 가장 긴 18권에서는 구원사와 함께 펼쳐진 지상의 왕국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나 27장부터는 예언서의 메시아 사상을 언급하였으며, 46~54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박해 시대까지 나타난 두 도성의 역사적인 진전 과정을 논하였다. 마지막 4권으로 이루어진 셋째 부분에서는 두 도성의 종말에 대해 논하였다. 즉 제19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행복 원리가 거짓된 이교 철학의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역설하였고, 제20권에서는 세상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두 도성이 서로 갈라지게 됨을 언급하였다. 또 제21권에서는 지상의 왕국은 지옥에 던져질 것이고, 그리고 제22권에서는 하느님 도성의 결정적인 승리로 선택된 모든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노래하였다.
〔주요 사상 및 해석〕 《신국론》은 권력에 대한 신학 이론적 고찰과 종합이다. 또 초기 시대의 대표적인 호교론서이면서 동시에 역사서 더 나아가서는 역사 철학서로 간주되어야 한다. 결국 이 작품은 신학서라고 할 수 있다. 포르탈리에(E. Portalié)는 《고백록》(Confessiones)이"한 영혼의 삶, 개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찬양이라면, 《신국론》은 바로 역사 신학으로, 세상 한복판, 전 인류의 삶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노래하고 있다" 고 하였다. 따라서 《신국론》의 중심은 바로 역사를 이끌고 인류의 삶을 밝히는 섭리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다.
《신국론》에서는 사랑을 두 가지 곧 하느님 사랑과 자기 사랑의 전개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역사의 장(場)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창조,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죄, 그리스도 강생의 준비, 강생과 교회, 최후의 운명이다. 아우구스티노는 각 단계마다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으로 접근하여 기원 · 악 · 영원한 운명 등의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신국론》은 중세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까지도 그 연구는 방대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지속적인 가치와 의미를 입증해 주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작품을 통하여 하느님 도성의 권력적인 의미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영적 힘을 빌려 모든 나라와 민족이 참된 평화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종교적 이교주의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콘스탄틴 대제(306~337)에 의해 보장된 제국 교회의 이념을 넘어 하느님 나라를 지향해야 하는 내적이고 초월적인 교회를 그리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노는 제국 교회를 예찬한 교회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340)나 프루덴시오(Aurelius Prudentius Clemens, 348~410), 그리고 그의 제자인 오로시오(Paulus Orosius, 5세기 초) 등의 주장을 능가하고 극복하였다.
사실 제2부가 비록 기원 · 진전 · 결과라는 역사 서술적인 방법을 따라 기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신앙에 기초한 신학서이므로 의미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처럼 이 작품도 하느님 섭리에 대한 아우구스티노 자신의 시대적인 신앙 고백서이기 때문이다. 성서 해석에 대한 그의 방법은 역사 현실로 이해된 문자적 해석을 넘어 하느님 나라를 암시한 영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방법론을 따르고 있다. 그는 또 특유의 사변적인 논리로 시간과 영원, 죽음과 생명, 현실과 내세, 내재와 초월이라는 대칭 구조 속에서 역설의 종말론적인 주장을 펼쳤는데, 이것은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부활의 생명이라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앙은 역사 현실뿐만 아니라 구원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이전에 이미 히브리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이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니, 즉 예언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향해있는 모든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다(15~16권).
한편 선과 악,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그가 한때 물들었던 마니교(Manichaeis-mus)의 영향을 잠재 의식 속에서나마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노의 이러한 견해는 중세 이래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라는 현실과, 은총의 상호 보완적인 교회론의 분명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 지상의 도시가 늘 하느님 나라의 여정에 있는 한 그 참뜻이 확인되듯이, 가시적인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와 연관성을 지닐 때 그만큼 참 가치가 확인된다는 은총 우월론과 함께 현실적 · 제도적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길을 터놓기도 하였다. 그는 결코 로마가 그리스도교화하였다 하여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도교화된 로마의 기능적 의미를 확인하였을 뿐이다. 이 점은 오늘날 국가주의는 물론 중앙 집권 체제의 현 교계 제도에 대한 성서적 · 신학적 비판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신국론》은 아우구스티노 사상의 한 단면과 함께 그 시대의 한계적 상황에서 하느님 안에서 결정적인 답을 찾고자 하였던 한 구도자의 끊임없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 《고백록》 ; 아우구스티노,히포의)
※ 참고문헌  Augustinus, 윤성범 역, 《신국 · 고백》, 세계 사상 교양 전집, 을유문화사, 1977/ F. Cayré, Patrologie et Histoire de la Théolo-gie, Desclée & Cie, 1953, pp. 721~723/ Institutum Patristicum Augustinia-num, Patrologia Ⅲ , Marietti, 1978, pp. 343~348. 〔咸世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