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新年 〔영〕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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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일 즉 설날 혹은 원단(元旦)과 각종 신년제를 수반하는 신년 절기.
현재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태양력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가 1582년에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세계의 각 문화는 고유한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역(曆) 곧 해(year)의 개념은 고대 문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어떤 시점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느냐 하는 것은 주로 식물의 성장 변화 주기(파종이나 수확기)와 기후의 변화 주기(가령 밤이 계속되는 절기에서 낮이 계속되는 절기로 바뀌는 때, 혹은 건기에서 우기로 바뀌는 때)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 신년에는 다양한 형태의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신년을 크게 신년일과 각종 신년제를 수반하는 신년 절기의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신년일〕 새해의 시작은 나라와 시대마다 달랐으며, 일 년의 길이도 민족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였다. 가령 바빌로니아나 중국은 봄에, 크레타는 여름에, 가나안 ·그리스 · 인도 등은 가을에, 이집트는 겨울에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느 민족, 어느 시대든 일정 기간의 끝남과 새로운 시작이 설정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각 문화는 제각기 시작과 끝의 기간을 측정하고 재단하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달이 지구를 도는 주기 혹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른 태음력은 계절 변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특히 농경 문화권에서는 사용하기가 불편하였다. 그래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일부 무슬림들만이 쓰고 있을 뿐이다(히지리력). 오늘날 구력(舊曆) 혹은 음력이라고 칭하는 태음 태양력(太陰太陽曆, luni-solaryear)은 중국이나 그리스에서 고대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태음력의 약점을 계절 변화에 맞추어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농경에 적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새로이 24절기를 만들었는데, 입춘 · 우수 · 경칩 · 춘분등이 그것이다. 우리 나라가 6세기경부터 근대 이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용했던 역법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태양 태음력이었다. 《삼국지》(三國志)에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는 독자적인 명절로 보이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이라는 절기가 있었음을 보아 중국에서 유래된 역법 이전에 한국인들이 사용했던 고유한 역법이 있었으리라는 추정도 하지만, 그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민속학에서는 한국의 설이 본래는 잡곡 재배의 풍요 의례를 주축으로 하는 상원(上元) 즉 정월 대보름이었다고 말한다. 음력 설이 신년일로 된 것은 벼농사가 정착되면서 유입된 중국식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의 설은 한민족 고유의 역법과 중국 전래의 역법이 동화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음력 1월 1일에서 정월 대보름날까지를 새해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이 설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 고유의 명절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고려사》(高麗史)에도 설이 9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어 있고, 조선 시대의 《동국 세시기》(東國歲時記)에 4대 명절의 하나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정착되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오늘날의 양력 설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것은 1895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였는데, 일본은 1872년부터 양력 설을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중국은 이보다 약간 늦은 1912년부터 양력을 사용하면서도, 현재까지도 설만은 춘절(春節)이라고 하여 음력 설을 더 중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1985년 '민속의 날' 제정을 거쳐 1987년에 음력 설이 공식적으로 부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중 과세(二重過歲)라는 과도기적인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신년제〕 우리 나라에서는 통상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올리며 혹은 성묘를 간다. 이런 것들도 일종의 신년 의례라고 할 수 있지만, 집단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신년제로는 '인날' 이나 '동제' (洞祭)를 들수 있다. 《동국 세시기》에 의하면 인날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주로 조선 왕조의 궁중에서 행해진 신년제인데, 민간에서는 인날을 사람의 생(生)을 축하하며 잡귀신을 막아 한 해의 질병을 예방하고 해충을 구제하는 날로 여겼다고 한다. 한편 정월 3~4일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냈다. 사회 통합의 기능을 지녔던 이 동제의 의례 대상은 닥나무 · 당집 · 바위 등의 이른바 금기 및 정화와 관련된 신체(神體)였다. 이 동제를 통해 액운을 물리치고, 농사의 풍요 · 마을의 평안 · 가정의 안택 등을 기복하고 축원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년제는 원시 고대 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신년제는 통상 설날 전후의 며칠 사이에 행해지며, 공통적으로 악마나 질병 혹은 죄악 등을 퇴치하는 의례가 수반된다. 가령 이때 금식, 재계, 정화, 불을 껐다가 다시 켜는 의식, 소음, 절규, 악마 추방, 대소동, 속죄양으로서의 동물이나 인간을 마을 바깥으로 추방하기, 두 집단 간의 의례적인 모의 전투, 집단적 오르지(난혼), 가면 행렬, 성년식 등이 거행된다. 이와 같은 요소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봄 혹은 가을에 12일 간 계속되었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년제인 아키투 축제를 들 수 있다. 기간 중 처음 며칠 동안은 몸을 씻는 정화 의례 및 기도 의식이 행해졌으며, 제4일에는 바빌로니아의 수호신인 마르둑(Marduk)의 신상 앞에서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가 낭송되었다. 제5일에는 양이 제물로 바쳐지고 처음으로 등장한 왕이 마르둑 제사장들에게 뺨을 맞았는데, 이는 왕위에 대한 모욕 혹은 왕위의 박탈을 상징하였다. 같은 날 저녁에 하얀 소가 제물로 바쳐진 것은 마르둑이 바다를 상징하는 바다의 괴물인 티야마트와 싸워 승리했음을 나타냈다. 제7일 이후에는 마르둑 신상을 앞세운 왕이 행렬을 이끌고 마르둑의 죽음과 부활을 재연하였으며, 제8일에는 새해의 운명을 점쳐 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신혼(神婚) 곧 왕과 여제사장의 공개적인 성교 의식이 행해졌다. 다른 문화권의 신년제들, 예컨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년제, 가나안의 수콧 신년제, 크레타의 디오니소스 신년제,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신년제, 인도의 디왈리 신년제 등에서도 어느 정도 아키투 신년제에 내포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성서에서의 신년〕 히브리인들의 경우 성조 시대에는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는 관습을 따랐던 듯하나 왕정 시대에 와서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추분을 새해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 가나안인들과 북서 셈족은 추분 새해가 가나안의 농경 문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추분을 새해로 지켰다. 가나안 농민들은 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우내 키워서 초여름에 추수하였기 때문에, 가을 축제인 초막절이 끝나면 한 경신례 주년이 끝나고 새로운 주년이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출애23, 16 ; 34, 22). 안식년과 희년도 추분 새해 관습을 따랐다(출애 23, 10-11 : 레위 25, 1-22). 그러나 추분 새해 관습이 도입된 후에도 춘분 새해를 지키는 관습은 특정한 지역에서 계속되었는데, 예를 들어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임금의 통치 연대를 표기할 때에는 이 관습을 따랐다. 추분 새해 관습은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바빌로니아 달력의 영향으로 다시 춘분 새해 관습으로 바뀌었다. 이때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의 달〔月〕이름까지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그래서 과월절이 들어있는 달, 즉 니산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성대하게 선포하는 것(출애 12, 2. 18)은 유배 이후에 편집된 것으로 추측된다.
〔종교적 의미〕 신년의 개념 및 신년제의 관행은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며 그 흔적은 형태를 바꾸어 현대 사회에도 남아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신년이 갖는 종교적 의미이다. 첫째, 신년의 관념 및 관행은 주기적인 정화를 필요로 하는 인간 조건을 보여 준다. 이러한 필요성은 과거에는 집단적으로 충족되었지만, 현대에 와서 그것은 대체로 개인적인 수준에서 각자의 종교적 신앙을 통해 채워지고 있다. 둘째, 이와 같은 주기적인 정화를 통하여 인간은 주기적으로 생명력을 갱신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낡은 것 · 다 소모된것 · 약해진 것 · 열등한 것 ·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 신선한 것 강한 것 · 좋은 것 · 건강한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셋째, 이러한 재생은 우주적 차원에서 세계 창조의 반복을 함축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새해가 되면 지난해, 과거의 시간은 다 소거되고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져야 된다고 관념화한다. 엘리아데(M. Eliade)에 의하면, 그것은 신화적 시간 · 원초적 시간 · 순수한 시간 · 천지 창조가 이루어진 맨 처음 시간으로의 복귀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신년의 네 번째 종교적 의미가 말해질 수 있다. 그것은 카오스(Chaos)의 또 다른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카오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신년에 관련된 카오스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되어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가령 아키투 신년제에서 암송되는 <에누마 엘리쉬>는 티야마트의 지배, 마르둑의 지하로의 하강, 신성한 결혼이라는 세 가지 주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티야마트는 원초적 물 혹은 창조 이
전의 카오스를 표상하는 용으로 등장하여, 질서를 표상하는 마르둑과 카오스를 표상하는 티야마트의 싸움이 재현되었다. 다음에 지하 곧 죽음의 세계로 내려간 마르둑 또한 카오스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 고대 문화권에서 이부분은 종종 집단적 오르지, 광란과 소동, 사회 질서의 전도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카오스의 단계를 거쳐 비로소 신혼 곧 거룩한 결혼으로 상징되는 코스모스(Cosmos)의 창출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신년의 관념안에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종종 물로 상징되는 원초적 시간, 곧 창조 이전의 혼돈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 그것은 재생을 위해서는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오래된 종교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 달력)

※ 참고문헌  현정준 외, 이종수 편역, 《세계의 曆》, 삼성 문화 문고 69, 삼성 문화 재단, 1976/ 김택규, 《한국 농경 세시의 연구 : 농경 의례의 문화 인류학적 고찰》,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5/ M. Eliade, 정진홍 역, 《우주와 역사 : 영원 회귀의 신화》, 현대 사상 총서 7,현대사상사, 1989/ M. Westrheim, Calendars ofthe World, Oneworld, Oxford. [朴奎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