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녕 본당

新寧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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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성 2리 836-1 소재. 1965년 5월 7일 영천(永川)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구역은 신녕면, 화산면, 청통면 전 지역과 군위군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화산 1개소. 〔교 세〕 1968년 707명, 1972년 764명, 1977년 1,000명, 1982년 1,208명, 1987년 1,418명, 1992년 1,251명, 1997년 1,161명, 1999년 1,108명. 〔역대 신부〕 초대 김욱태(金旭泰) 레오(1965. 5~1970. 11), 2대 김현수(金鉉洙) 바오로(1970. 11~1975. 1), 3대 유승렬(劉承烈) 바르톨로메오(1975. 1~1977. 9), 4대 박성대(朴成大) 요한(1977. 9~1978. 3), 5대 김무한(金武漢) 프란치스코(1978. 3~1980.5), 6대 박창호(朴昌浩) 요셉(1980. 5~1983. 8), 7대 여창환(呂昌煥) 라우렌시오(1983. 8~1986. 1), 8대 박상호(朴相昊) 요한(1986. 1~1988. 6), 9대 손성호(孫成鎬) 요셉(1988. 6~1990. 6), 10대 정순재(鄭淳在) 베드로(1990. 6~1991. 6), 11대 박영일(朴榮溢) 바오로(1991. ~1993. 3),12대 이성배(李成培) 요한(1993. 3~10), 13대 서준홍(徐準鴻) 마티아(1993. 10~1997.9), 14대 박윤조(朴允朝) 안토니오(1997. 9~1999. 6), 15대 이경수(李敬洙) 라파엘(1999. 6~현재).
신녕 본당의 전신인 영천시 화산면의 신녕 공소는 용평(龍坪) 본당 주임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신부가 1922년에 설립한 것으로 당시의 신자수는 15명이었으며, 1933년에는 신녕면 매양동에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다. 그 후 1936년 영천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965년 5월 7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1948년에 용평 본당에서 공소로 된 용평 공소를 이관받았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욱태 신부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평신도 단체를 조직하여 본당의 기틀을 다졌고, 꾸준히 성당 건립을 준비하여 1970년 10월 현 성당 부지에서 신축 성당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곧 전임되고 말았다. 이어 2대 주임 김현수 신부는 이듬해 4월 20일 성당을 완공한 뒤 수녀원도 신축하여 1973년 5월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6대 주임 박창호 신부 때인 1980년부터는 전 신자·단체별 피정과 함께 매년 두 차례 성지 순례를 하였으며, 교구 공동체 의식의 고취를 위하여 1980년 5월 교구 연합 체육 대회에 참가하였다. 8대 주임 박상호 신부는 냉담자 회두를 위하여 매주 화요일 저녁 미사 후 '보속의 시간 을 마련하고 거주 미상자 찾기 등 다양한 운동을 벌여 많은 성과를 올렸고, 이어 9대 주임 손성호 신부는1989년 8월 화산(전 용평) 공소에 100여 평의 강당을 건축하였다. 13대 주임 서준홍 신부는 성당이 노후하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1996년 6월 성당 건립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고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신녕 지역이 전형적인 농촌이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노인과 여성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어 부임한 14대 주임 박윤조 신부는 성당 모금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면서 노후된 사제관과 성당 지붕을 보수하였으며, 신앙 학교를 개설하여 평신도 지도자 양성과 신자 재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경수 신부는 새 성당 건립을 강력히 추진하여 2000년 3월 성당 기공식을 가졌는데, 2001년 3월 말경에 완공할 예정이다. (→ 대구대교구 ; 영천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영천 본당 50년사》, 영천 천주교회,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