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 본당

新堂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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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중구 신당2동 406-4 소재. 1949년 3월 초 종현(鐘峴, 현 명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관할 구역은 신당1 ~4 · 6동, 장충동, 광희동, 을지로 5 · 6가, 쌍림동, 묵정동 일대. 〔교 세〕 1973년 5,890명, 1979년 6,486명, 1985년 7,463명, 1989년 8,680명, 1994년 5,698명, 1999년 4,795명. 〔역대신부〕 초대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1949. 3~1951.2), 2대 신원식(申元植) 루가(1951. 7~1954. 5), 3대 김창문(金昌文) 요셉(1954. 5~1963. 6), 4대 임종구(林鍾求) 바오로(1963. 6~1967. 4), 5대 양기섭(梁基涉) 베드로(1967. 4~1973.5), 6대 김창석(金昌錫) 타데오(1973. 5~11), 7대 류수철(柳秀徹) 도미니코(1973. 11~1977. 8), 8대 이계중(李啓重) 요한(1977. 9~1982. 8), 9대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 1982. 8~1987. 8), 10대 김몽은(金蒙恩) 요한(1987.8~1991.8), 11대 남영희(南永喜) 이시도로(1991. 8~1996. 9), 12대 오태순(吳泰淳) 토마스(1996. 9~1998. 9), 13대 유재국(兪在國) 바실리오(1998. 9~현재).
신당동 일대에 신자들이 정착한 시기와 첫 영세자가 배출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일제 시대 때 신당동과 장충동 일대에 일본인들이 주로 많이 살았기 때문에 신자들이 거주했다고 해도 극소수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광복 직후 일본인들이 대거 귀국한 후 이곳 신자수가 급증하였는데,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종현 본당에 1948년 8월 장금구(莊金龜, 요한 그리소스토모) 신부가 보좌로 부임해 오면서 본당 설립이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8년 9월 신당동 377-51번지에 소재한 오규환(吳奎煥, 요한)의 집에 신당동 공소가 설립되었고, 10월 말경부터 공소 신자들은 장금구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본당 승격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이듬해 3월 초신당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주임으로 조인원 신부가 임명되었다. 당시 관할 지역은 왕십리 · 금호동 · 뚝섬 · 천호동 일대였으며, 신자수는 1,520명이었다. 조인원 신부는 부임 후 장충동 2가 201번지의 적산가옥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수한 후 이듬해 5월 27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군종 신부로 입대하게 되어 본당은 잠시 신부 공석이 되었다.
그 해 7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신원식 신부는 성당이 포탄을 맞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같은 해 10월 장충동 1가 89-1번지의 적산 가옥을 개조하여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이 성당도 오래 사용하지 못하고 1952년 1월 초에 장영교(張英嬌, 요안나)의 집으로 옮겼고, 1953년에는 다시 지금의 성당 소재지인 충현동 406-4번지의 대지 320평과 건평 68평의 적산 가옥을 매입한 뒤 성당을 이전하였다. 또 이해 5월 1일에는 근화(董花)유치원을 설립하였다. 이어 3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창문 신부는 신자수의 증가로 성당 신축이 불가피해지자 1955년 7월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2월 26일성당(20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1957년 12월 8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또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1958년 7월에 천호동(千戶洞) 본당, 1959년 11월에는 왕십리(往十里) 본당, 1962년 9월에는 금호동(金湖洞) 본당을 분할하고 이 지역 신자들을 이관하였다. 한편 1960년 4월에 문화관(현 교육관)을 신축하였으며, 1963년 5월 28일에는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능내리(陵內里)에 묘지를 조성하였다.
5대 주임 양기섭 신부는 성당 제대 양쪽 벽에 균열이 생기는 등 붕괴 위험이 있자, 1970년 5월 성당 신축에 착수하여 이듬해 9월 12일 성당(712평)을 완공하였다. 7대 주임으로 부임한 류수철 신부가 재임 중인 1977년 8월 29일 폐암으로 사망하고 말아 한 달 동안 신부 공석이었던 신당동 본당은, 9월 21일 8대 주임으로 이계중 신부를 맞이하였다. 이계중 신부는 재임 동안 특히 신학생 후원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9대 주임 김득권 신부는 남성 신자들의 본당 활동 참여율을 높이기 위하여 남성 세대주를 중심으로 우정의 모임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10대 주임 김몽은 신부는 본당 설립 40주년이던 1988년에 본당의 역사를 담은 《신당동 본당 40년사》를 발간하였으며, 신자 재교육의 하나로 매주 교리 문제지를 배포하고 다양한 신앙 강좌를 마련하였다. 또 11대 주임 남영희 신부는 각종 특별 기도회를 개최하여 기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1995년 12월 3일에는 성당 인근의 부지 283평을 매입하여 조경 공사를 하고 예수 성심상을 건립하였으며 주차 공간을 확보하였다. 12대 주임 오태순 신부는 본당 내에 도농 직거래장을 개설하여 이익금을 북널 동포 돕기에 사용하였다. 최근 신당3 · 4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유재국 신부는 지역 선교 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新堂洞 本堂 四十年史》, 천주교 신동 교회, 1988/ <경향잡지> 1009호(1949. 4).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