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神道 〔라〕Schintoismus 〔영〕Schinto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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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는 대표적인 일본 고유의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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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는 대표적인 일본 고유의 종교이다.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대표적인 신앙 체계.
〔개 념〕 신도는 흔히 일본의 '고유한 종교 혹은 '민족적인 종교 로 거론되고 있는데, '고유' 라고 하는 것은 일본 열도 외부에서 유입된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그 순수성 혹은 고대성에 중점을 둘 때에는 고신도(古神道)라고도 부른다. 신도는 교조나 교리는 없지만 심신을 청정하게 한다는 기본에 입각한 여러 의례들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일본 민족의 형성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독자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카미' (神) 즉 신에 대한 신앙과 숭배를 유지해 나왔다는 측면에서 민족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외래 사상의 수용과 반발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종교로서 이론화한 것은 후세에 이르러서였으며, 불교나 유교는 물론 도교나 음양교(陰陽敎) 등의 영향을 받아 사전(社殿)이나 신상(神像)을 만들거나 교리 체계를 정비하였다. 한편 신도에 내재되어 있던 자연 숭배 관념이나 의례는 민간의 연중 행사 속에 유입되어 민속적인 신도를 만들어 냈는데, 예를 들어 정월 초하루에 신사를 참배하는 '하츠우데' (初詣)나 신전(神前) 결혼식 등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천황 가문의 제사에 채택되어 '타이나메사이' (大嘗祭)와 같은 이른바 궁정 신도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주류는 전국 각지에 약 8만 개 이상 산재되어 있는 신사(神社)를 중심으로 발달한 '신사 신도' 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 사회의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 형태로서의 신사 신도는 신사의 관리와 의례를 담당하는 사제인 신직(神職)을 포함하는 신사 즉 다른 말로 우지가미(氏神)와 그것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인 우지코(氏子)에 의해 구성된다. 이것은 신사와 그 신사에 속한 지역 사회 성원과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규정 짓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신사 신도는 '우지가미' , '우부스나가미'(産土神) 혹은 '진슈노가미' (鎭守神)라 불리는 그 지역을 지켜 주는 지역 수호신(=신사)과 그것을 모시는 우지코들이 의제(擬制) 동족 관계를 가지면서 지연적 정체감을 확인하는 각종 의례 행위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앙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의례 행위는 제사이며 동시에 축제인 '마츠리' (祭)로 구현되는데, 각 신사는 그 지역의 역사와 상황에 맞는 마츠리를 각 시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행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를 완성시키고 있다.
〔발 전〕 신도의 초기 형태는 죠오몽(繩文, 기원전 8~2세기) · 야요이(彌生, 기원전 3세기 ~서기 3세기) 시대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로 알려진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여러 종류의 신화가 수록되어 있고,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이 신화 시대는 야요이 시대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일본 열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하늘과 땅은 물론 산천초목과 조수충어(鳥獸蟲魚)에도 신 즉 일본인들의 용어로 카미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신들에 대해 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들을 모시기 위한 조그만 사당인 '호코라' (祠)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이것들은 미야 (宮) 혹은 '야시로' (社)라는 이름으로 발전하였다.
일본 열도 각지에서 세력을 지닌 호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씨신 즉 우지가미로 받들기 시작하였으며, 위인을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모시고그 영력에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신도는 권력 및 정치와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 신도는 6세기 중엽에 일어난 불교의 전래로 크게 변화하였다. 외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로 소가씨(蘇我氏)와 모노베씨(物部氏)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소가씨의 승리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그렇지만 불교에 대한 반발은 적지 않았으며, 특히 서민들은 불교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 대립을 타개하고 외래 종교인 불교와 일본의 신도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본지 수적설(本地垂迹說) , 즉 신불 습합(神佛習合)의 논리였다. 본지는 불(佛)이고 수적은 신(神)이다. 즉 본지 수적설이란 바로 '불' 이 세상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그 모습을 바꾸어 일본에 잠정적으로 나타난 것이 '신' 이라고 하는 신불 동체(神佛同體)의 설명이다. 즉 현재는 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래는 보살불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시조신으로 여겨지는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본지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는 이 본지 수적설은, 헤이안(平安) 시대 초기에 만들어졌고 한다. 본래 《법화경》의 본문(本門) · 적문(迹門)에서 유래한 것으로 9세기경부터 신불 습합설이 행하여져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카마쿠라(鎌倉) 시대까지는 모든 신사의 본지불이 정해질 정도로 성행하였으며, 메이지(明治) 시대의 신불 분리(神佛分離)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상이 보급됨에 따라 신도보다도 불교가 우위에 서게 되었으며, 불교적 색채를 띤 신(神)들도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원 안에 수호신을 모신다거나, 신사 안에 불상이나 인왕(仁王)을 모시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에 신도는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에도(江戶) 시대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와 신앙에 대한 금지 정책 때문에 불교는 점점 우위에 서게 되었고, 신도의 권위는 계속 저하해갔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신불 습합을 부정하는 이른바'복고 신도' (復古神道)가 나타났는데,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나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등과 같은 국학자들이 그 대표적인 주창자들이었다. 이들은 중세이후 불교 · 유교 · 도교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신도를, 이들 외래 사상을 배제하고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에 보이는 고신도적 성격을 부흥시켜서 신도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 복고 신도의 사상은 에도시대 말기에 왕정을 복고하고 막부(幕府)를 타도하자는 존왕 도막(尊王倒幕) 운동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어 메이지 정부의 지도 원리가 됨과 동시에, 현재 신사 본청(神 社本廳)을 중심으로 하는 신사 신도에도 사실상 정신적인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복고 신도의 영향이 강력하게 작용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메이지 정부는 왕정 복고의 이념하에 신도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하는 국가 신도화 작업을 급속히 진행시켰다. 정부가 주창한 국가 신도는 국가와 황실을 중심에 두는 신도로,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메이지 헌법은 황실의 조묘(祖廟)로서의 이세 신궁(伊勢神宮)과국가를 연결시켜 신사 신도도 그 휘하에 두고, 신사 제사를 국민의 도덕상의 의무로 규정 지었다. 메이지 시대 원년에 해당하는 1868년에는 제정 일치 제도를 회복시키고 신기관(神祇官) 체제를 만들어 신불 분리를 강력히 실시하였다. 신사 가운데 불교적 색채가 있는 것은 모두 없어지고, 지역에 흩어진 신사들을 하나의 신사를 중심으로 합제시키면서 정리해 나갔다. 이때 대부분의 신사이름도 바뀌어 신도는 국가 비호 아래 그 세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해 나갔고, 신사 신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본의 국민 정신을 진작하는 중요한 기반 역할을 하였다. 즉 신사와 신도는 전쟁 당시의 '카미카제' (神風)란 말에서 보듯이 전승 기원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패전한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은 '신도지령' 을 내어 군국주의 · 초국가주의와 일체였던 국가신도를 해체하였다. 이로써 국가나 지방 행정 기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던 국가 신도는 전쟁이 끝난 후에는 종교 법인이 되어 대부분이 이세(伊勢)의 신궁(神宮)을 본종(本宗)으로 하는 신사 본청에 포함되었다.
한편 에도 시대 말기에 생겨나기 시작한 교파 신도(敎派神道)는 신사와는 별개로, 교리나 교조를 가진 종교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에도 시대 말쯤부터 생겨난 천리교(天理敎) · 흑주교(黑住敎) · 금광교(金光敎)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고, 이들은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 활발한 포교를 전개하였다. 또 중세 이후 사상적 입장을 강조하는 학파 신도(學派神道)가 설파되었는데, 에도 말기 이후에는 교조나 교의를 가진 신종교 운동으로서의 교파신도가 본격적으로 발생하였다. 전쟁 전에 신사 신도와 구별되어 인가된 이른바 신도계의 교파로는 신도 대교(神道大敎), 신도 수성파(神道修成派), 출운 대사교(出雲大社敎), 흑주교, 부상교(扶桑敎) , 실행교(實行敎), 신도 대성교(神道大成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계교(禊敎), 금광교, 천리교, 신습교(神習敎) 등 13개였다. 이들 대부분은 신사 신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교리를 갖추고 있었으며, 신도계이지만 불교나 유교 또는 도교 등과의 습합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많다. 이외에도 나중에 생긴 대본교(大本敎) , 생장의 집(生長の家), 피엘(P.L.) 교단(Perfact Liberty 敎團) 등이 있다.
〔신 사〕 일반 서민들은 풍작이나 풍어 혹은 무병 장수, 가내 안전, 상업 번창 등과 같이 현세 구복적인 것을 기원하면서 신사에 참배한다. 일본인들은 신사를 이러한 것들을 들어주는 신들의 거주지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신사의 입구와 주변 그리고 경내 곳곳에는 금줄(注連繩)이 쳐져 있는데, 왼쪽으로 꼬아 만든 이 새끼줄은 부정을 막고 정화된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또 입구에 세워져 있는 '도리이' (鳥居)는 신사나 사전의 입구를 표방하는 문의 역할을 하지만, 실제로 문은 달려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도리이는 'ㅂ' 자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주로 나무로 만들었으나, 후에는 통나무나 돌등으로 발전했고 근래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것도 많다.
건축 양식 측면에서 신사는 중세부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래된 건축 양식을 전하는 것 중에는 이세신궁이나 이즈모 대사(出雲大社) 등이 있다. 이세 신궁은 내궁 · 외궁 모두 노송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20년마다 다시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호사스런 건축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즈모 대사는 60년마다 새로 건축된다. 이세 신궁의 양식을 '신명(神明) 만들기' 라고하고 이즈모 대사의 양식을 '대사(大社) 만들기 라고 하며, 이외에도 다양한 양식이 있다. 배전(拜殿)은 참배를 하기 위한 시설인데, 국가에서 파견된 관폐사(官幣使)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서 일반인들은 출입시키지 않는 신사도 있다. 도리이를 지나면 샘이 있는데, 이곳은 물로 하는 정화 의식인 목욕 재계를 의미하는 '하라이' (祓)와'미소기' (禊)를 하는 장소로 물이 흐르도록 만들고 있다. 신사 입구에 있는 것이 보통이며, 흐르는 개천이나 샘이 없는 곳에서는 손 씻는 곳을 만든다. 신사에 혼덴(本殿) · 하이덴(拜殿) · 가구라덴(神樂殿) · 샤무쇼(社務所) 등 형식을 갖추어 정비된 것은 후대의 일이며, 하이덴만 있고 혼덴이 없는 곳도 많다. 제사의 형식은 각 가정에서 하는 정월 행사나 수확 행사, 마을들 행사인 춘제와 추제 등과 공통되는 것이 많다. 이러한 의례가 신사에서는 대규모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때 만들어졌던 임시시설이 상설로 되어 버린 것이 적지 않다. 여소(旅所)는 마츠리 때 신사를 떠난 신을 태운 가마인 '미코시' (神輿)가 머무르게 되는 일종의 행궁(行宮)이다. 교토(京都)의 기온(祇園) 마츠리 때 만들어지는 '오타비쇼' 는유명한 여소 가운데 하나로, 이것 역시 설치되는 장소는 정해져 있으나 상설 시설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신체(神體)는 산이나 거석(巨石) 혹은 폭포와 같이 자연적인 것을 비롯하여 거울이나 칼과 같은 것들도 있다. 가장 많은 것은 거울인데, 이는 거울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 각지의 신사에 모셔진 제신들은 처음에는 대개 그 지역의 고유한 신들이었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의 영향으로 그 역사나 연기(緣起)는 기기(記紀) 속에 기재된 고전 신화를 근거로 하는 것이 많다. 신사 혹은 제사와 관련된 것들을 살펴보면 우선 폐(幣)라는 것이 있다. 신에게 바치는 헌상물의 일종으로, 본래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흰 천을 사용하였다. '누사'라고도 하는데, 명주나 종이로도 만든다. 색이 칠해진 오색의 폐는 오행설에 따른 것으로 적폐(赤幣)는 액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물푸레나무(榊) 가지에 종이로 만든 폐로 장식한 '타마구시' (玉串) 역시 신사에서 의례를 행할 때 신에게 바치는 품목 중 하나이다.
사카키(榊)는 일본에서 만든 문자로, 신과 관련된 의례 행위에 사용되는 나무라는 의미이다. '오후다' (神札)는 신사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부적이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신불 습합 시대에는 기도하는 패찰도 만들어졌다. 미코시는 신이 신사로부터 이동하게 될때 타기 위한 가마로, 예전에는 말을 신이 타는 것으로 공양했었는데 나중에 가마로 바뀌었다. 폐를 붙인 신마(神馬)와 미코시 두 가지를 함께 제례에 사용하는 곳도 있다. 에마(繪馬)는 나무 판 위에 신마를 그린 것이 그 원형이라고 하며, 신사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자신의 기원하는 사항을 적어서 경내에 걸어 놓고 그 성취를 바라는 것으로 사용한다. 하츠호(初穗)는 가을에 거두어들인 수확을 처음으로 신에게 바치며 그 결실에 감사하는 것이다. 초혜 즉 첫 나락을 신사의 담에 걸기도 하며, 어촌의 경우에는 어업을 관장하는 신에게 첫 출어 때 잡힌 생선이나 해초를 공양 하기도 한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초혜나 초어(初魚)에 한정되지 않고 제물이 일상화되었는데, 쌀을 바치는 것이 그 주류를 이루다가 화폐 경제로 인해 지금은 현금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평 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사회의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신도를 비롯한 여러종교는 국가 혹은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종교 법인으로 새 출발하면서 민간에 의한 종교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신도의 경우 국가 신도 신사 신도·교파 신도 등 세 부문으로 구분되지만 사실상 앞의 두 신사 간에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신도에 대한 국가적 보호의 문제가 미묘한 움직임을 나타낼 때도 있어 이러한 신도의 복잡한 성격을 해명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도는 다른 여러 종교에 대비할 수 있는 교리와 경전을 명확하게 가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일본인의 생활 속에 밀착되어 종교적 의식 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지역적 축제로서의 현대적인 '마츠리' 가 생성 · 발전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신도를 종교학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민속학적 · 사회학적 ·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근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사와 신도를 둘러싼 의례나 민속을 통하여 일본 고유의 민족적 신앙으로 자리잡아 온 신도를 규명하는 작업은 중요한 과제가될 것이다. (→ 신사 참배 ; 일본)
※ 참고문헌  柳田國男, 〈神道と民俗學〉, 《定本柳田國男全集》10, 筑摩書房, 1962/ 一, (日本の祭〉, 《定本柳田國男全集》 10, 筑摩 書房, 1962/ 一, 〈氏神と氏子〉, 《定本柳田國男全集》 11, 筑摩書房,1963.〔金良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