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례원 본당

新禮院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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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예산군 예산읍 창소리 25-6소재. 1977년 10월 19일 예산(禮山)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신암면 전 지역과 예산읍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여사울, 계촌, 조곡리, 용궁리, 예림리, 수철리 등 6개소. 〔교 세〕 1977년 1,043명, 1982년 1,329명, 1988년 1,425명, 1994년 1,145명, 1999년 1,291명. 〔역대신부〕 초대 우희수(禹熙秀) 발타사르(1977. 10~1982. 9) ,2대 플라지에(A. Plassier, 박수범) 아우구스티노(1982. 9~1986. 8), 3대 유영소(劉永昭) 블라시오(1986. 8~1991.8 8),4대 김진화(金鎭和) 세례자 요한(1991. 8~1993. 8), 5대 유탁준(兪卓濬) 라파엘(1993. 8~1998. 4), 6대 맹세영(孟世永) 세례자 요한(1998. 4~현재)
신례원 본당 관할 구역 내에 복음이 처음 전래된 곳은 신암면의 여사울(현 新巖面 新宗里)이고, 신례원 일대에 널리 복음이 전파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1784년 무렵 여사울 출신의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이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으로부터 천주교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고향 인근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고, 이때 그의 선교가 내포 지역 신앙 공동체 형성에 기초가 되었다. 한편 신례원리에 신자가 살기 시작한 것은 1925년경부터였는데, 황금성(요한)을 비롯한 신자 몇 사람이 신례원 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야산에 거주하기 시작함으로써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 공동체는 불과 3년 뒤인 1928년에 예산 본당 관할의 '신례원 공소' 가 되었다. 1961년에 공소 신자 수가 270명에 이르자, 예산 본당 주임 보드뱅(E. Beaude-vin, 丁道平) 신부는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한 뒤 50평 규모의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975년에 당시 대전교구장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는 신례원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앞으로 신례원 지역에 충남 방적 공장이 세워질 계획이었고 그에 따른 인구 급증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77년 10월 신례원 공소가 신례원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우희수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우희수 신부는 부임 직후인 그 해 12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고 이듬해 10월 공사에 착수하여, 1년 만인 1979년 9월 17일 성당(99평)과 사제관(31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플라지에 신부는 관할 구역의 사적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1985년 11월 '이존창 생가 보존 공사' 를 시작하였는데, 이 공사에는 그 해 추석 합동 미사의 예물 전액이 투입되었고 공소 신자들은 농기구를 동원하여 봉사하였다. 그리고 3대 주임 유영소 신부가 공사를 계속 진행시켜 1987년 11월에 생가 보존 공사를 끝내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는 한편, 본당의 운영 체계를 개편하여 사목의 능률화를 도모하였다. 5대 주임 유탁준 신부 때인 1994년 4월에는 신자 재교육을 위하여 사제관 2층에 27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을 증축하였고, 같은 해 6월에는 성모상 주변 조경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996년 12월에는 수녀원과 교육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듬해 12월 부지 706평을 매입하였다. 6대 주임 맹세영 신부는 1999년 7월에 본당의 성모상을 계촌(鷄村) 공소로 옮기고 신자들의 성금으로 한국 성모자상을 봉헌하였다. 1996년부터 성당 신축을 꾸준히 준비해 온 신례원 본당 신자들은 2000년 5월 교구 건축위원회로부터 성당 건축을 심의 승인받았으며, 2001년 3월 초부터 새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 대전교구 ; 예산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편, 《대전교구 30년》, 천주교 대전교구,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