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神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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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이 나면 신간을 잡은 대잡이의 손과 몸이 심하게 떨린다고 한다.

신명이 나면 신간을 잡은 대잡이의 손과 몸이 심하게 떨린다고 한다.

강력한 종교 체험을 하는 순간의 고조된 심리 상태, 또는 그에 따라 도취된 정신 상태.
〔개 념〕 흔히 '신들림' 이라고 표현되는 종교 체험의 모습은 대개 신들린 사람의 몸이나 신체 일부가 심하게 떨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마을에서 굿을 할때 신간(神竿)을 잡은 대잡이의 손과 몸이 심하게 떨리면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신이 들렸다고 여긴다. 강신무(降神巫)의 경우에는 몸이 떨리면서 동시에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하며, 드물게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숨이 멈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강림하는 신령의 종류에 따라 떨리거나 충혈되는 등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부위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 신들림은 흥분과 떨림을 그 대표적인 표징으로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떨림과 흥분은 신이 내려 도취된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렇게 신이 들려 떨리고 흥분된 상태가 본격적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신명' 또는 '신바람' 이라고 한다. 즉 신명은 신과 인간이 만나서 일으키는 바람이요, 떨림이고 흥분이다. 신들림에 따르는 신명은 초인간적인 힘이나 뜨거운 정열 그리고 상상을 넘어서는 추진력으로서 적극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꼼짝못하게 옮아매는 무서운 힘, 오싹한 기분을 일으키는 힘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무교(巫敎)의 예를 들자면, 신들린 사람이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굿판을 찾아가거나, 깊숙이 외딴 곳에 숨겨진 무구(巫具)들을 찾아서 파내고, 낯선 신령들의 뜻을 좇아 공수를 내리고 점을 치는 따위의 현상들이 있다. 신들림은 다른 말로 '신이 들렸다 , '신이올랐다' , '신령이 실렸다. '신에게 씌었다' 아니면 '신에게 지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한자로는 접신(接神) 또는 빙의(憑依)라고 표기한다. 신령이 인간에게 접촉하거나 사람 몸에 신령이 기대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신들림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로는 '포제션' (possession)이나 '옵세선' (obsession)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전자가 신령에 의하여 사람 몸이 점유당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후자는 신령에 의하여 몸이 점유당한 결과 꼼짝달싹 못하게 얽매어 있거나 제어당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신을 부릴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른 큰무당[大巫]은 접신을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신령에게 점유당하거나 빙의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을 부린다는 말로 표현되는 큰무당의 상태는 심리학적으로는 초의식(超意識)이라고 볼 수 있다.
〔현 상〕 신들린 무당이 굿을 하면, 신령이 굿판에 내리기를 촉구하면서 노래와 춤을 동원한다. 춤과 노래는 음식과 더불어서 신령의 출현을 불러일으키는 기제(機制, mechanism)이다. 이렇게 굿판에 나타난 신령은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하는 공수를 내린다. 신령의 의중(意中)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이러한 신령의 의사를 받아들인다. 인간은 신령의 뜻과 부름을 받아 굿판에 나아가면서 동시에 신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것이다. 무당의 접신 상태에는 이렇게 신의 부름과 신을 부림이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신령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수동성 속에서 인간의 목적과 의지를 관철하는 능동성을 발휘함으로써, 인간들은 신령을 받아들여서 신명이 나고 신바람을 내는 도취(orgy)와 몰아(ecstasy)를 경험한다. 이것이 신내림의 순간에 나타나는 신바람과 신명의 모습이다.
음식을 차려 나누고, 노래와 춤으로써 신내림을 받는 기쁨을 드러내 힘차게 역동하는 것이 신명이고 신바람이다. 신령의 뜻을 공수로 받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기쁨이고, 그 춤과 노래로써 신을 내리게 할 수 있기에 또한 기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고래로 누린 종교 체험의 내용이며, 그 표현이 신명이다. 신령의 등장〔神顯, theophany〕과 활동에 직접 가담하여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그 기쁨을 역동적으로 드러내는 모양이 바로 신명을 내고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옛 기록에 등장하는 제천 의례인 동맹(東盟) · 영고(迎鼓) · 무천(舞天) 등에 나타나는 대로, 몇 날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먹고 마시며 노래부르고 춤을 추었다는 "연일주야 음식가무"(連日晝夜飲食歌舞) 등의 표현은 바로 이러한 신령 체험의 기쁨과 역동성을 표현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해 석〕 오늘날 거행되고 있는 굿의 경우에도, 무당에게 일차로 실현된 신명이 기주(祈主)의 가족이나 마을사람 모두에게 퍼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당은 신령과 인간 사이에서 신명을 내고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개자요 매개자(mediator)가 된다. 무당과 신도 사이의 간격은 무당이 굿을 얼마나 잘 '노는가' 하는 솜씨에 따라 가까워지기도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흥분과 진정, 불안과 편안,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그리고 웃음과 울음 사이를 오가게 된다. 이러는 동안에 무당과 신도, 인간과 신령은 한 판에서 어우러지게 되며, '우리는 하나 라는 감정적 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굿판에서 무당은 감정의 융합을 촉진하는 (굿)놀이 진행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무당은 그 자신의 신명으로 스스로 신바람 나게 놀면서 남들의 신명도 부추겨 놀리는, 더불어 놀게 하는 것이다. 무당은 자기가 노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면서 그들이 놀이에 끼여들도록 부추기고, 사람들은 무당이 노는 것을 보면서 굿판에 따라 들어와 노는 것이다. 이러면서 신명은 바야흐로 모두에게 두루 퍼져 나간다. 신명이 공동체를 가득 채우면서 세속 사회가 물러가고 굿판은 신성 공동체가 된다. 이제 신성한 제장(祭場)인 굿판에서 사람들은 신이 들려 성화(聖化) 되는데, 평소 속되고 야비한 인간이 거룩하고 존엄한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인간은 신과 깊이 있게 만난다. 사람들은 이제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면서 신에게 도취하는데, 이때 피어 오르는 신명은 인간들에게 원초적인 영성을 회복하게 한다. 숨어 있던 원초적 감수성의 회복이 신명을 통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명은 원초적인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무당은 신이 내린 상태를, 즉 무당의 몸을 통한 신의 등장을 상상을 초월하는 기예를 통하여 증명한다. 즉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타고 놋으로 된 떡 시루를 입으로 물어 올린다든지, 굿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위압적인 자세로 호령하기도 하고, 온갖 외설한 몸짓이나 언사도 사양하지 않는다. 이때 신들린 무당은 자유 분방함 속에서 자신의 종교적 권위,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흔히 신명풀이라던가, 신바람을 피운다, 신바람이 난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풀이' 란 막힘과 맺힘의 대비 개념으로서, 무엇인가가 해결되고 뚫려서 제자리를 찾아 바로잡힘을 뜻한다. 지금도 마을 굿에서 이러한 신명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굿판에서 피어 오르는 신명은 평소에 눌려 있던 개인간 · 집단간의 갈등을 들추어내고 풀어 버리는 기능을 한다. 서로간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신명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다. 잠재되어 있던 맺힘을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시켜 공동체 안에서 효율적으로 풀어 가는 현장이 바로 굿판이다. 집단적 신명, 공동체적 신바람의 경우에는 공동체 구성원 서로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회적 차원으로 일체감을 조성한다. 공동체 안에서 너와 나로 따로 따로 떨어지기보다는 우리로서의 동질감이 강조된다. 이렇게 신명이 공동체 전체에서 뜨겁게 피어 오르는 현장이 바로 난장(亂場), 난장판이다. 난장은 한편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동질성을 고양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언뜻 동질성을 무너뜨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일시적으로 계층간의 위계 질서가 무너지고, 윤리의식이 사라지며, 사회적 규범이 무너지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이고 외형상의 문제일 뿐이다. 계층간에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질서의 붕괴는 오히려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평소에 민중의 마음속에 응어리 진 한(恨), 살(煞) 그리고 탈(脫)이 언제까지나 억압된 상태로 막히고 맺혀 있어서는 민중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배 계층에도 심각한 위험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한 · 살 · 탈로 표현되는 부조리한 현실이나 비구원의 상황은 그래서 풀어져야 한다. 이러한 풀이를 위한 장치나 제도가 전통적으로 마을 굿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잠복된 병리를 일시적이나마 인위적으로 자극해서 떠올린 상태가 바로 난장(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종교적인 의미의 신명과 신바람은 오늘날에 와서 본래의 종교적인 의미가 퇴색하고 세속화되어서, 일상 생활 어디에서나 감정의 강력한 발산이라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흥겹게 멋을 내면서 저절로 기쁨과 감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유쾌하고도 뜻이 이루어진 상태가 신명나는 일이요, 신바람이라는 것이다. 또 일에 정열을 쏟아 완전히 몰두하는 결과로 시간과 장소를 잊게 하는 행복한 경지라고도 한다. 그래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감동하는 순간 모두가 제 흥에 취하면 그것이 신명이요 신바람이다. 예술적으로는 관객이 연극 진행에 참여하여 가슴속에 간직했던 바를 풀어 내어 흥겨움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신명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무질서나 무원칙이 원시 유목적인 성향의 무당류 신바람과 신명을 내세우는 데에 기인하므로, 근대적인 민주 사회가 이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신바람의 원리와 신명부터 버려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즉 민중 종교 현장에서 주로 쓰이던 종교적 용어가 한국인의 일상 생활에서 분출되는 강도 높은 감정을 드러내는 말로도 확대되어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 몰아 ; 무교 ; 무당)

※ 참고문헌  진수, 김원중 역, 《삼국지》, 신원문화사, 1994/ 일연, 이병도 역, 《삼국유사》, 광조출판사, 1982/ 장주근, 《향토 신앙》, 을유문화사, 1975/ 이부영, 《분석 심리학》, 일조각, 1978/ 김열규, <신명>,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13,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2/ W. James, 김성민 · 정지련 역, 《종교 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기독교서회, 1997/ 조동일, 《카타르시스 · 라사 · 신명》, 지식산업사, 1997. 〔朴日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