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神秘主義 〔라〕mysticismus 〔영〕my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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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묘한 비밀이나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어떤 현상에 관한 사상. 신비(mysterium) 또는 신비 사상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견해 차이가 있으므로 이 체험에 관한 분명한 진술을 식별하기란 쉽지 않다.
〔의미와 변천〕 영성 신학에서는 '신비' 를 그리스어 '뮈스티콘' (μυστικόν)과 '뮈스테리온' (μυστήριον)으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종교에 입문하는 입교자들에게 '뮈스티콘' 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 의식을 거행하였다. '뮈스티콘' 은 본래 이교도들이 종교적인 용도로만 사용한 용어였는데, 여기에는 감추어져 있으며 비밀스러운 어떤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들어 고대 그리스 엘레우시스(Eleusis)의 아티카(Attica)시에서 열렸던 데메테르(Demeter) 여신 축제에서는 비밀스런 종교 의식이 거행되었었다.
반면에 비밀스런 어떤 것을 의미하는 '뮈스테리온' 은 종교적인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서와 제2 경전에서,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비밀을 의미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로마 11, 25 ; 1고린 15, 51 ; 골로 2. 2). 하느님의 구원적인 행위는 감추어져 있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전해지며, 그 능력은 감추어진 것일 수밖에 없다. 그 후 신자들은 '뮈스티콘' 이라는 말을 모든 사람들과 분별없이 나눌 수 없는 보다 깊고 완전한 신앙의 진리에 적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3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교회 안에 도입되어 주로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전례적으로는 경신례에 관하여, 성서 주석에 있어서는 자의적 해석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모든 사람들과 함부로 나눌 수 없는 보다 심오한 신앙의 진리를 말할 때 사용되었다.
〔정 의〕 신비주의는 감추어진 진리나 지혜를 영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느님이나 초월적인 영적 존재와의 완전한 합일을 추구한다. 이에 대해 13세기에 파리 대학교 총장이었던 제르송(Jean Le Charlier de Gerson, 1363~1429)은 "신비 신학은 체험에 의해 합일적 사랑의 포용을 통해 도달한 하느님께 대한 지식이다" (Theologiamystica est experimentalis cognitio habita de Deo per amorisunitivi complexum)라는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여기에서 세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 신비 신학이라는 용어는 신비적 상태와 연관을 맺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적 이성에 의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연 신학과 구별되며, 계시에 의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교의 신학과도 구별된다. 둘째, 인간은 신비 신학에 의해 하느님을 알게 된다. 셋째, 이 지식은 지적인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포용' 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다 직접적인 하느님 체험 즉 신비 체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비 체험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불교 · 도교 · 힌두교와 같은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플로티누스(Plotinus, 204/205~270)와 같은 철학자도 진 · 선 · 미 · 성(眞善美聖) 자체인 궁극적 실재인 일자' (一者) 즉 신(神)에 대한 신비 체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비 체험이 모든 이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비 체험이 모든 이에게 열려져 있는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인지 하는 문제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 부틀러(E.C. Butler,1858~1934)는 전통 그리스도교적 관점에 따른다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신비적인 길에 초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8~19세기에는 그것을 상실하였다면서 인간 마음의 주요한 행위로서 '관상' (contemplatio)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애덕의 행위 안에서 꽃피기 시작하며, 관상은 성령의 움직임에 따라 실제적으로 순수하게 피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관상 기도는 통상적인 기도와는 다르며, 겸손한 사람들은 감히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기적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장애물을 제거하고 필연적인 수단을 가능하게 하는 영혼에게 하느님이 베풀어 주는 초자연적인 기도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리구-라그랑주(R. Garrigou-Lagrange, 1877~1964)는 완덕의 길이 두 가지라는 관점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즉,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통상적인 방법과 기도 그리고 열성적인 영혼이라도 하느님께 모두 초대받지 못하는 신비적인 삶과 비정상적인 방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일치의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관대한 영혼이 완덕에 이르는 방법은 성령께 마음을 엶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지 결코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일 성령의 적절한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상황 또는 외부활동에 지나치게 전념한다면 일생 동안 신비 체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일례로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수도 생활을 할 때에는 관상 생활에 충실할 수 있었으나 교황이 된 다음에는 그런 생활이 어려웠다고 고백하였는데, 이는 지나친 활동 생활이 관상 생활에 방해가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성녀 모니카(332~387)와 아우구스티노(354-430)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신비 체험을 한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은총의 역할〕 신비주의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하느님 은총의 역할을 전제로 한다. 이는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이기 때문에 언제나 출발점으로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창조되는 순간부터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누리면서 살았으나 원죄의 결과로 그 관계가 끊어졌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 없이는 그분과 완전한 친교 관계를 맺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여기서 은총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과 은총이 조화를 이룰때 신비 체험이 일어나지만 후자의 역할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
한편 신비 체험은 심리적인 사실로서 영혼 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을 의식하는 것이며, 성령이 당신의 선물들을 인간 안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 안에는 성령의 인도로 신비 체험을 하거나 비정상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왔다. 사도 바오로는자신의 신비 체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나는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그 몸도 함께 그랬는지 몸을 벗어나서 그랬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만, 어쨌든 셋째 하늘에까지 붙들려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낙원에 붙들려 올라가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2고린 12, 2-4). 이 밖에 사도 바오로뿐만아니라 아우구스티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로욜라의 이냐시오 등 성인들의 생애 중 이루어졌던 신비 체험에 관해 전해 오는 기록들은 많다.
〔성령의 선물〕 신비 체험은 성령의 선물이 작용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는 영혼 안에 하느님 자신이나 그분의 활동에 대한 수동적(受動的)인 체험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수동적' 체험이 중시되는 이유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주시면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거절할 수도 있으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덕 상태(修德狀態, ascetical state)와 신비 상태(神秘狀態, mystical state)의 차이점은 이런 경우에 분명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수덕 생활에 힘쓰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따라 애덕의 삶을 살아가므로 이런 사람의 신적 의식은 성찰(省察, reflection)과 추리(推理, discursus)에 국한되어 있는 반면, 신비가(神秘家)들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 체험을 한다. 신비 체험은 다음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성령의 은사 :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상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1고린 12, 1-13, 1). 그것은 지혜와 인식의 말씀 · 믿음 기적 · 치유 · 예언 · 식별 · 이상한 언어와 해석의 은사들이다. 하느님이 교회 안에 세운 이들의 서열은 첫째로 사도들, 둘째는 예언자들, 셋째는 교사들, 그 다음은 기적 · 치유 · 도와 줌 · 지도 · 이상한 언어의 은사를 받은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이런 은사들보다 더 큰 은사는 가장 훌륭한 길인 사랑의 실천이다. 모든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나오고, 그 목적은 공동 유익(πρòς τò συμφέρου, 1고린 12, 7)과 타인의 성장을 돕는 데 있으며, 성화(聖化) 은총과 덕행 및 성령의 은혜와는 다른 초자연적인 원인에서 나온다. 이러한 현상을 거저 주어진 은총(gratia gratis data)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특은(特恩)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은사에만 국한되어 사용된다. 이 은총은 성화 은총이나 성우(聖佑, gratia gratumfaciens)와는 다르며, 그 직접적인 목적은 그것을 받는 이의 성화가 아니라 타인의 영적 유익에 있다. 이를 거저 주어진 은총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능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공로 영역 밖에 있으며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를 사적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느 누가 영으로 말한다면서 내게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을 주시오' 하거든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말 것입니다"(《디다케》 11, 12).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 시리아 교회에만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은사 사용의 대가를 요구하므로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또 성령의 은사는 윤리성과 무관하게 일어날 때도 있다. "나더러 '주님, 주님, 우리가 당신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당신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당신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범법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선언할 것입니다"(마태 7, 21-23)라는 성서 구절과도 같은 일이실제로 일 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은사는 성화 은총이나 개인의 성덕과는 무관한 다른 초자연적인 원인에 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깊은 기도를 통한 신비 체험 : 수덕 단계에서 어느 정 도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의 기도 체험이다. 성녀는 주입 관상(注入觀想, contemplatio infusa)의 단계에서 변형 일치(變形一致, transformata unitas)의 기도 단계까지를 신비적 단계로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주입 관상에서부터 신비 체험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단계에서 시작하여 순응 일치(順應一致, conformitatis unitas)의 기도와 변형 일치의 기도 단계로 상승하는 것은 사랑 자체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최고 행위 내지는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 세상에서도 천상 영광 즉 지복 직관(至福直觀, visio beatifica)을 미리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신비 현상 : 이 현상은 믿을 만한 신비가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정신과 육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비 상태의 정상적인 현상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성화 은총과 덕행들 그리고 성령의 선물들과는 다른 초자연적인 원인에서 기인된다. 그러므로 이런 신비 현상을 부현상(副現象, epi-phenomenon) 또는 정상(正常)에 버금가는 현상(paranor-malis manifestatio)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일어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여기에는 현시(現示, visio) · 탈혼(脫魂, ecstasis) · 말씀(locutio) · 계시(啓示, revelatio) ·성혼(聖痕, stigma) · 동시 이처(同時異處, bilocatio) · 공중 부유(空中浮遊, levitatio) · 향기(香氣) . 독심(讀心) .사랑의 불꽃 · 육체의 신장(伸長) · 염동(念動, telekinesis)작용 · 독서(讀書) · 치유 · 시체가 부패되지 않음 · 빵의기적 · 후광(後光) · 심장의 교환 · 피눈물과 피땀 · 장기불면(不眠) · 신속성(迅速性) · 영안(靈眼) 혹은 신안(神眼) 등이 있다.
이런 현상들이 하급 원인(inerior cause)으로 설명될 수 있으면 굳이 상급 원인(superior cause)으로 돌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설이다.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자연 법칙이나 신비롭지 않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하느님이 베푸는 은사로서, 하느님의 영광이 이를 받은 성인들과 신비가들을 통하여 더욱더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 수덕 신학 ; 신비 ; 신비 신학)
※ 참고문헌  J. de Guibert, ascétique et mystique, 《DSp》 1, pp. 1011~1014/ 전달수, 《신비 체험과 현상》, 가톨릭출판사, 1997. 〔田達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