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본당

新仙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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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영도구 신선동 3가 84 소재. 1955년 1월 5일 청학(靑鶴)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남항동, 신선2 · 3동, 영선2 · 3동 전 지역과 대교동, 영선1동, 대평동 일부 지역. 〔교 세〕 1957년 1,318명, 1963년 2,401명, 1969년 2,841명, 1974년 2,542명, 1979년 2,411명, 1984년 3,428명, 1989년 3,616명, 1992년 3,916명, 1997년 4,163명, 1999년 4,290명. 〔역대신부〕 초대 김기봉(金基奉) 필립보(1955. 1~1960. 7), 2대 이병만(李炳萬) 요셉(1960. 7~1968. 1), 3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68. 1~1971. 10), 4대 정인식(鄭仁植) 알베르토(1971. 10~1972. 11), 5대 김남수(金南洙) 루가(1972.11~1975. 8), 6대 배봉룡(裵鳳龍) 바오로(1975. 8~1976.
11), 7대 김창대(金昌大) 임마누엘(1976. 11~1980. 2), 8대 배상섭(裵尙燮) 요한(1980. 2~1985. 10), 9대 김윤근(金潤根) 베드로(1985. 10~1988. 1), 10대 송기인(宋基寅) 베드로(1988. 1~1992. 2), 11대 김평겸(金平謙) 타데오(1992. 2~1993. 2), 12대 윤명기(尹明基) 요한 칸시오(1993. 2~1996. 2), 13대 박상운(朴相云) 바오로(1996. 2~1998. 2), 14대 강호성(姜豪星) 바오로(1998. 2~현재).
〔공소 시대〕 1906년경 초량(현 부산시 동구)에서 세례를 받은 서순익(안토니오)이 이곳 영도로 이주해 온 뒤 1910년을 전후해서 신자 몇몇이 모여 살면서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1930년에는 신자수가 30명 정도되었다. 그러나 이후 김우태(마태오) · 서명찬(토마스) · 서세찬(마티아) · 김인업(야고보) · 김인오(비오) ·곽용택(안토니오) 등의 노력으로 신자수가 늘어나 마침내 1935년에 청학 본당 관할의 신선 공소가 설립될 수 있었다. 1948년 8월 1일 중앙(中央) 본당이 설립되면서 신선 공소는 이곳으로 이관되었고, 이듬해 중앙 본당 주임 이명우(李明雨, 야고보) 신부가 현 성당 부지에 임시 강당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중앙 본당 보좌 신상도(辛尙道, 프란치스코) 신부는 자주 이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야학 운영도 도와 주었다. 한편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제주도로 피난 갔던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이 1954년 4월 5일 이곳으로 옮겨와 가교사(假校舍)를 설치하고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때 신학대학 학장 정규만(丁奎萬, 마르코) 신부가 신선공소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어 주기도 하였다.
〔본당 설정 및 발전〕 성신대학이 서울로 복귀한 후 신선 공소는 다시 청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 1월 5일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청학 본당 주임이었던 김기봉 신부가 부임하였고, 중앙 본당 신자 221세대 700명을 이관받았다. 또 남항초등학교에 주둔하며 이곳으로 미사 참례를 오던 미 통신 부대 병사들의 도움으로 미군으로부터 성당 건립에 필요한 구호 물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같은 해 4월 성당(현 유치원 건물)과 사제관 공사를 시작하여 12월 13일 완공하고, 서정길(徐正吉, 요한) 주교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김기봉 신부는 전쟁 고아들을 위해 '성모 건설원' (聖母建說園)을 세웠으며,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N.C.W.C)의 구호 사업과 병행하여 전교 활동을 펼침으로써 교세를 크게 신장시켰고, 1957년 1월에는 그리스도의 도움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그러나 그 해 8월 26일 대구교구 유지 재단에서 대양중 · 고등학교(현 대양전자정보고등학교)의 재정을 인수하면서 4대 교장을 겸임하게 된 김기봉 신부는, 그 후 성모건설원이 광안리(현 부산시 남구)로 이전함에 따라 이때부터 성모 건설원 운영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2대 주임 이병만 신부 때인 1961년에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수녀가 파견되어 고아원 건물을 수리한 뒤 수녀원으로 사용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성모 신용 협동 조합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964년 3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6일 캐롤(G. Carroll, 安) 몬시놀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는데, 지하 강당과 1층 165평의 성당과 2층 성가대석으로 된 이 성당은 왜관의 알버트(B. Albert) 수사가 설계한 것이었다.
이어 3대 주임 박문선 신부는 1969년 3월 20일 봉래(蓬萊) 본당을 분리하였고, 1970년에는 신선 본당을 비롯한 영도 지역의 4개 본당이 연합하여 야외 미사를 겸한 체육 대회를 개최하였다. 5대 주임 김남수 신부는 1973년 4월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였고, 6대 주임 배봉룡 신부는 1976년 10월 수녀원을 헐고 그 자리에 사제관을 건립하면서 옛 사제관을 개축하여 수녀원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8대 주임 배상섭 신부는 성당 내부 시설을 보수하였고, 1982년 성모의 밤 행사에서는 성물로 바치는 화환이나 꽃다발을 성금으로 대신 받아 관내의 불우 이웃들에게 '성모의 선물' 을 전달하기도 하였으며, 1984년 12월 15일에는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9대 주임 김윤근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실시하여 보다 활기 찬 본당을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13대 주임 박상운 신부 때에는 사제관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14대 주임 강호성 신부는 수녀원을 신축하는 한편, 성당 안팎을 정비하고 성서 공부를 강화하는 등 신앙의 내실을 기하고 있다. (→ 부산교구 ; 김기봉 ; 청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중앙 성당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 성당 오십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 성당, 1999. 〔吳美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