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12-1소재. 1971년 9월 17일 아현동(阿峴洞) 본당 · 용산(龍山) 본당 · 양화진(楊花津, 현 서교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요한. 관할 구역은 신수동, 구수동, 현석동, 신정동 전 지역과 창전동, 노고산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2,500명, 1976년 2,151명,1981년 2,997명, 1986년 4,104명, 1992년 4,480명,1999년 2,541명. 〔역대 신부〕 초대 라이언(E. Ryan, 성)에우제니오(1971. 9~1972. 1), 2대 무레이(A. Murray, 함)에단(1972. 1~1973. 9), 3대 카롤란(C. Carolan, 차) 가롤로(1973. 9~1977.4), 4대 맥키(N. Mackey, 기) 노엘(1977.4~1981.4), 5대 백남용(白南容) 바오로(1981. 4~1986. 8), 6대 홍성만(洪性萬) 미카엘(1986. 8~1991. 8), 7대 유봉준(兪鳳俊) 토마스(1991. 8~1996. 9) 8대 최광연(崔光淵)모세(1996. 9~현재).
신수동 본당이 설립되기 전 이곳 신자들은 거주 지역과 가까운 아현동 본당 · 공덕동 본당 · 용산 본당 · 양화진 본당 등에서 미사 참례를 하였다. 이에 교구에서는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현 성당 부지 214평과 20평 규모의 판잣집을 매입한 뒤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에 위임하였다. 이어 1971년 9월 17일 신수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라이언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당시 성당으로 사용한 판잣집에는 제대조차 없었고 사제관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듬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무레이 신부는 그 해 2월 판잣집을 헐고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5월 성당(120평)과 사제관(3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신자수가 증가하자 4대 주임 맥키 신부는 1977년 10월 성당 맞은편 부지 79평을 매입한 뒤 이듬해 11월부터 수녀원과 교리실로 사용하기 위한 회관 공사를 시작하여 1979년 6월 회관을 완공하였다. 그렇지만 '인보 성체 수녀회' 의 분원은 회관 완공 직전인 5월에 마련되었다.
1981년 3월 본당 사목이 교구로 이관되면서 5대 주임으로 부임한 백남용 신부는 1982년에 상수동과 하수동 지역 신자들의 교적을 양화진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이듬해 2월 양화진 본당이 기념관과 분리되면서 이름이 바뀐 서교동(西橋洞) 본당으로 또다시 67세대 111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그럼에도 교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백남용 신부는 성당을 재건축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1984년 3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86년 4월 5일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성당(732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가졌다. 6대 주임 홍성만 신부는 신자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교적을 재정리하였고, 1990년 8월에는 사제관과 사무실을 겸한 3층 건물(118평)을 완공하였다. 이어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유봉준 신부는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본당 내 38개 반을 69개 반으로 세분화한 데 이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1994년 2월에는 신자수의 증가에 따라 염리동(鹽里洞) 본당을 분할하고 54세대 229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으며, 1999년 7월에는 대흥동(大興洞) 본당을 분할하고 360세대 912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 서울대교구 ;아현동 본당 ; 용산 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신수동 본당 25년사》, 천주교 신수동 교회, 1996. [편찬실]
신수동 본당
新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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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