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신부. 세 례 명 은 바오로 .1910년 5월 25일 경남 밀양군 하남읍 명례리(明禮里) 1209번지에서 태어나 1935년에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5월 15일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6일자로 신설된 경남 통영군 광도면의 황리(黃里) 본당(현 고성 본당의 전신)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2년 간 사목하였다. 이어 대구 계산동 본당 보좌(1937. 7~1942. 5), 안동 목성동 본당 주임(1942. 6~1943.2), 부산 청학 본당 주임(1943. 2~1944. 12), 대구 대목구
경리 신부(1944. 12~1945. 12)를 차례로 역임한 뒤 1945년 12월에 대구 삼덕동(三德洞)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신순균 신부는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목 생활 내내 병고에 시달렸는데, 끝내 이를 회복하지 못한 채 1947년 5월 22일 휴양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이듬해 4월 10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고, 대구대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808호(1935. 6), pp. 379~381 999호(1948. 6), p. 93/ 天主敎 大邱大教區史 編纂委員會 편, 《大邱本堂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삼덕 성당 60》, 천주교 삼덕 교회, 1995. 〔金成喜〕
신순균 申順均(1910~1948)
글자 크기
8권

신순균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