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스콜라 철학의 방법을 현대의 철학과 신학에 적용하기 위해서 대표적인 중세 스콜라 사상가들의 사상으로 되돌아가려는 19세기 말 이후의 사상적 동향.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특히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되는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이므로, 신토마스주의(Neothomismus)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사상의 흐름 및 전개〕 학교(schola)에서의 강의와 토론을 중심으로 발전한 중세 스콜라학(Scholatica)은 안셀모(Anselmus Cantuariensis, 1033/1034~1109)와 아벨라르도 (P. Abaelardus, 1079~1142)에 의해 시작되어, 중세의 전성기인 13세기에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 후 스코투스(J. Duns Scotus, 1266~1308)와 오컴(W. Ockham, 1287?~1347)에 이르러서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제2의 스콜라학 시기 (secunda scholastica)라고 불리는 15~17세기에 가예타노(Cajetamus)라고도 하는 토마스 데 비오(Thomas deVio, 1469~1534) , 페라라 사람(Ferrarensis) 실베스트리(F.Silvestri, 1474~1528), , 바녜스(D. Báñez, 1528~1604), 폰세카(P. da Fonseca, 1528~1599) 바스케스(G. Vázquz, 1549~1604), 몰리나(L. de Molina, 1536~1600), 수아레스(F. Suá-rez, 1548~1617), 성 토마의 요한(Joannes aStoThoma, 1589~1644) 등이 스콜라학을 다시 꽃피웠다. 이 시기에 수도회들은 각기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취하였다. 도미니코회와 베네딕도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엄격하게 충실하였고, 예수회는 근대 철학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수아레스의 노선을 선호하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회는 전통에 따라 보나벤투라와 스코투스의 사상 노선을 취하였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철학적 풍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주로 확정된 원리들로부터 출발하여 연역적으로 우주 만물의 구조를 설명하려던 체계적 형이상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로부터 시작되는 근대 철학에서는 형이상학을 전개하기에 앞서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과 지성의 능력을 점검하여 그 가치와 한계를 확정 지으려는 인식론이 탐구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로써 대상 중심의 형이상학은 빛을 잃고 인식주체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반종교적인 인본주의가 완성되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와서는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삼는 스콜라학의 사고 방식이 일반 철학계와 신학계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가톨릭계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19세기 초에는 라므네(H.F.R. de Lamennais, 1782~1854), 보탱(L.-E.-M. Bautain, 1796~1867), 조베르티(V. Gioberti, 1801~1852), 로스미니-세르바티(A. Rosmini-Serbati, 1797~1855), 헤르메스(G. Hermes, 1775~1831), 컨터(A. Giinther, 1783~1863) 등 일군의 가톨릭 사상가들에 의해서 칸트(I. Kant, 1724~1804)의 비판주의와 헤겔(G.W.F. Hegel, 1770~1831)의 관념주의를 거슬러 논쟁을 벌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의 극단적인 본체론(ontologismus)과 신앙주의(fideismus)의 위험을 직시한 교회에서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들의 사상적 동향은 실패하고 말았다.
19세기 중엽부터는 진정한 '전통의 복귀' 운동이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작되어 차츰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부제티(V. Buzzetti, 1777~1824) , 타파렐리(L. Taparelli d'Aze-glio, 1793~1862), 소르디(S. Sordi, 1793~1895) 리베라토레(M. Liberatore, 1810~1892), 산세베리노(G. anseverino,1811~1865) , 칠리아라(T. Zigliara, 1833~1893), , 팔미에리(D. Palmieri, 1829~1909), 탈라모(S.Talamo, 1844~1932), 발메스(J.L. Balmes, 1810~1848), 세페리노 곤살레스 이 디아스 투논(Ceferino González y Dáiz Tuñón, 1831~1894), 보르주(D. de Vorges, ?~1910), 클로이트겐(J. Kleutgen, 1811~1883), 슈퇴클(A. Stöckl, 1825~1895) , 베르너(K. Werner,1821~1888) 등이 그 주역들이었다.
〔교회의 지지〕 19세기의 전통 복고 운동에 발맞추어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 1879. 8. 4)를 발표하였고, 이는 스콜라 철학부흥 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현대 세계를 복음화시켜야 할 사제들을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교황은,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들의 정신과 가르침으로 철학과 신학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전통 철학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어 일반 과학과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고 증진시킬 수 있기를 염원하였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본래 제목은 "가톨릭 학교들에서 '천사적 박사'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신에 따라 교육되어야 하는 그리스도교 철학에 관해서" (De philoso-phia christiana ad mentem sancti Thomae Aquinatis Doctoris Angelici in scholis catholicis instauranda)였다. 교황은 '서론'에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보여 준 근대 과학 일반과 철학에 대한 호의적이고 개방적인 관심을 강조한 다음, '제1부' 에서 그리스도교 신학 속에서 철학의 기능을 설명하였다. '제2부' 에서는 그리스도교 세계 내에서의 철학 전통을 묘사하면서 그중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탁월함을 부각시켰으며, '제3부' 에서는 가톨릭 학교들이 이 귀중한 유산과 가르침을 계승 ·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기에서 교황이 강조하고자 한 요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던 가톨릭 사상의 쇄신을 위해서 중세의 위대한 스콜라 철학,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하고 체계적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부흥시키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런 토마스주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 과학의 발전을 폭 넓게 수용하고 현대의 다양한 사조들과 대화함으로써 당대에 만연되어 있던 가치관의 혼란과 사상적 위기를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이후 교황의 권고에 따라 유럽 각처에서 중세 사상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로써 그때까지일반적으로 중세는 '암흑의 시대' 였다고 혹평되던 누명이 불식되었고, 중세가 얼마나 당당하고 풍요로운 시기였는가가 입증되었다.
〔연구 활동 기관〕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반포에 이어같은 해에 로마의 '성 토마스 연구소' (Accademia Romanadi S.Tommaso d'Aquino), 즉 안젤리쿰(Angelicum) 대학 창설을 명하였으며, 1880년에는 칙서를 통하여 탈라모에게 그 책임을 맡기면서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에 대한 비판적 전집 간행을 위촉하였다. 한편 루뱅 대학에서는 '고등 철학 연구소' (Institut Supérieur de Philosophie)를 설립하고 메르시에(D.J. Mercier, 1851~1926)를 초대 소장으로 임명하였다. 대표적인 연구 중심지들로는 이 고등 철학 연구소' 를 비롯하여 로마의 안젤리쿰 대학, 그레고리오 대학, 안토니아눔 대학, 밀라노의 가톨릭 대학,피렌체의 콰라키 연구소, 살라망카 대학, 스위스의 프리부르 대학, 파리의 가톨릭 대학, 리용의 가톨릭 대학, 뭔헨 예수회 대학, 쾰른의 성 토마스 연구소,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철학 대학 등을 들 수 있다. 비유럽 지역에는 미국의 워싱턴 가톨릭 대학, 캐나다 토론토의 중세 사상 연구소, 몬트리올 및 퀘벡의 가톨릭 대학, 남아메리카의 가톨릭 대학들, 마닐라의 성 토마스 대학, 일본 도쿄의 성 토마스 연구소 등이 있다.
이들 연구 기관들을 통해 데니플레(H.S. Denifle, 1846~1905), 에를레(F. Ehrle, 1845~1934) 추기경, 헤르틀링(G.von Hertling, 1843~1919), 보임커(C. Baumker, 1853~1924) ,망도네(P. Mandonnet, 1858~1936), 불프(M. de Wulf, 1867~1947), 그라프만(M. Grabmann, 1875~1949), 질송(É. Gilson,1884~1978), 마이어(H. Meyer, 1884~1966) 스텐베르겐(F.van Steenberghen, 1904~ ) 등 역량 있는 역사가들이 중세 사상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가르데일(A. Gardeil,1859~1931), 가이서(J. Geyser, 1869~1948), 그레트(J.A.Gredt, 1863~1940), 세르틸랑주(A. Sertillanges, 1863~1948), ,만서(G.M. Manser, 1866~1950), 데콕(P. Descoqs, 1877~1946), 가리구-라그랑주(R. Garigou-Lagrange, 1877~1964), Maritain, 1882~1973), 호르파스(A. Horvath, 1884~1956), 부스트(P. Wust, 1884~1940), 헤센(J. Hessen, 1889~1971), 파브로(C. Fabro, 1911~1994), 오잉-한호프(L. Oeing-Hanhoff, 1923~1986) 등을 비롯한 전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스콜라 철학의 기본 주제들을 발전적으로 심화시켰다.
〔연구 동향〕 신스콜라 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보나벤투라, 스코투스, 오컴, 수아레스 등 대표적인 스콜라 학자들을 연구하였지만, 연구의 초점은 역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었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노 사상의 전통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결합시켜 그리스도교적 종합을 완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학과 교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은 중세 스콜라 학자들의 원전을 연구하였고, 그것을 근대 및 현대 철학에서 새로이 제기한 문제들에 적용시켜 대화를 시도하는 연구 작업도 함께 병행하였다. 데카르트와 칸트의 철학을 지속적으로 깊이 연구하였으며, 관념주의 · 실증주의 · 현대 과학 · 현대 논리학 · 현대 심리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현대 철학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과 후설(E. Husserl,
1859~1938)의 사상과 대화를 시도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존주의와도 대화를 모색하였다.
메르시에와 루뱅 대학 : 루뱅 대학을 거점으로 교황의 뜻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한 메르시에의 기본 사상의 구상은 근대의 경험주의 · 실증주의 · 칸트 비판주의 등 과의 비판적 대화를 전개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재주의적 형이상학' 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칸트의 비판 철학은 존중하고 있었다. 즉 인식 문제가 철학 탐구의 출발점이며, 따라서 철학은 의식 탐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인정함으로써 비판주의를 찬성하였다. 메르시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완성한 중세 스콜라학 이후에도 중대한 철학적 문제들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토마스주의가 근대 철학자들 특히 칸트가 제기하는 철학적 물음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 간 것은 중대한 과오라고 하였다. 또한 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자세를 가지고 열린 사상 체계를 구축하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문자세와는 전혀 다른 태도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칸트가 주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형이상학의 영역을 협소한 공간으로 한정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두 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토마스주의와 근대 철학 및 근대 과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근대 철학의 중심 문제인 확실성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근거 있게 제시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철학이 성취한 것들을 편견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스콜라 철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그것을 다시 현대 세계에 제시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또 '척도론' (criteriologie)이라는 구상을 제시함으로써, 성찰 즉 비판을 통해서 확실한 진리 인식을 오류로부터 분리해 낼 수 있는 척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메르시에와 공동 협력하여 연구에 정진한 루뱅 대학의 제1 세대들로는 니스(D. Nys, 1859~1927), 불프, 티에리(A. Thiéry, 1868~1955), 드푸르니 (M. Defourny, 1878~1953) 등을 들 수 있고, 그 뒤를 이어 드플루아주(S. Deploige,1868~1927), 노엘(L. Noël, 878~1955) , 미쇼트(A. Michottevan den Berck, 1881~1965) , 망시옹(A. Mansion, 1882~1966) , 롤랑 고슬랭(P. Roland-Gosselin, 1883~1934) 르클레르크(J.Leclercq, 1891~1971), , 래이매케르(L. de Raymaeker, 1895~1979), 돈데인(A. Dondeyne, 1901~1985), , 스텐베르겐, 리에(G. van Riet, 1916~ ) 등이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 루뱅 학파와의 긴밀한 연계하에 잠보니(G.Zamboni, 1875~1950), 마스노보(A. Masnovo, 1880~1955),로비기(S.V. Rovighi, 1908~1990), 파브로 등과 같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신스콜라 철학자들도 '탐구' 정신을 고수하며 현대 철학 및 과학과의 비판적 대화를 추구하였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주로 실증주의 및 관념주의와 대결을 벌였으나, 그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실증주의가 이미 극복되었기 때문에 주로 관념주의와 대결하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현상학 및 실존주의와의 대화가 연구의 중심을 이루었다.
근대주의와 초월적 토마스주의 : 19세기 말에 이르러 일부 가톨릭 학자들은 전통적 신앙의 진리와 근대 철학의 원리들을 화해시켜 보려고 시도하였다. 칸트는 엄밀한 학문적 인식이 현상 세계에 국한되고, 흔히 현상을 넘어 실존한다고 간주되는 물자체(物自體)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불가지론(不可知論,agnosticismus)과 내재주의(內在主義, immanentismus)를 마치 과학에 의해 검증된 진리처럼 받아들인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자들은, 합리주의적인 사고나 인과율을 통해서는 신(神) 인식에 이를 수 없다고 단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비판적인 방법을 신앙의 진리에 적용하여, 비판적 검증을 거친 것들만을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다. 이에 호응한 뒤센(L. Duchesne,1843~1922) , 루아지(A. Loisy, 1857~1940), 라베르톤니에르(L. Laberthonnière, 1860~1932) , 무리(R. Murri, 1870~1944) , 르 로이(É. Le Roy, 1870~1954), 부오나이우티(E.Buonaiuti, 1881~1946) , 티렐(G. Tyrell, 1861~1909) 등 가톨릭의 '근대주의자들' 은 칸트의 비판 철학과 관념주의는 물론, 다원(C. Darwin, 1809~1882)과 스펜서(H. Spencer,1820~1903)의 진화론을 수용하였으며 옛 스콜라 철학에서 신 실존 증명의 토대로 삼았던 변화 · 인과율 · 우연유 · 목적 등의 개념을 전면 부인하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신앙의 진리들을 정초시킬 수 있는 새로운 원리가 의식 즉 내재의 원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 현상의 출발점은 어떤'필요' (necessitas)일 수밖에 없는데, 필요는 생명 현상들 속에서 심장의 운동 즉 감정으로부터 솟아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초월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는 어떤 심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근대주의가 취한 성격과 입장이 오랜 전통 속에서 유지 · 발전시켜온 가톨릭 신앙의 유산들을 위협하자, 교황 비오 10세(1903~1914)는 교령 <라멘타빌리>(Lamentabili, 1907. 7. 3)를 통하여 근대주의의 65개 오류 명제 목록을 작성해서 단죄하였다. 그 후 회칙 <파쉔디>(Pascendi, 1907. 9. 8)를 반포함으로써 가톨릭 신앙인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근대주의자들의 오류에 대해 파문을 내렸다. 한편 예수회의 마레샬(J. Maréchal, 1878~1944) 신부는중세 스콜라 사상가들의 근본적인 통찰들이 다른 철학 조류들과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철학이 제기하는 주요 문제에 해결의 열쇠를 던져 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에 그는 독일 관념주의 특히 칸트의 비판 철학의 빛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전 5권으로 구성된 그의 주저 《형이상학의 출발점》(Le point de depart de la métaphy-sique) 가운데 제5권 《비판 철학에 직면한 토마스주의》(Le Thomisme devant la Philosophie critique, 1926)에서 이러한 그의 이론적 논점이 종합적으로 개진되었다. 이에 따르면, 마레샬에게 있어서 존재 질서는 인식 질서로 환원되어 버린다. 즉 진리는 확실성으로, 판단의 타당성은 소여(所與)와 판단 조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식' 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존재의 인식 문제가 존재 긍정 판단의 조건 문제로 변형되는 것이다. '인식 역동주의' 라고 불리는 이러한 마레샬의 입장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에서는 르메트르(C. Lemaitre, 1883~1957), 드페베(J.Defever, 1899~1964), 말르베(L. Malevez, 1904~1973), 이사예(G. Isaye, 1903~1984), 자보(J. Javaux, 1904~1987),아영(A. Hayen, 1906~1988), 디르벵(E. Dirven, 1925~ ) 등이 마레살의 시도를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마레샬의 노선을 따라 칸트의 비판주의와 헤겔의 관념주의와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의 실존주의를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 형이상학과 심층에서부터 종합하고자 하였다. 특히 로츠(J.B. Lotz, 1903~ ), 지베르트(G.Siewerth, 1903~1963) , 라너(K. Rahner, 1904~1984), 물러(M.Miiller, 1906~1994) , 브루거(W. Brugger, 1904~ ), 벨테(B.Welte, 1906~1983), 코레트(E. Coreth, 1919~ ) 등은 초월적 방법론을 가톨릭 철학과 신학에 도입하고자 하는 이른바 '초월적 토마스주의' (transcendental Thomism)를 전개했으며, 캐나다의 예수회 신부인 로너간(B.J.F. Lonergan, 1904~1984)도 이 노선에 동조하였다.
전통으로의 복귀 : 루뱅 학파와 독일의 정통 스콜라 철학자들인 만서, 얀센(B. Jansen, 1877~1942), 마이어, 프리스(J. de Vries, 1898~ ), 피퍼(J. Pieper, 1904~1997) , 그리고 한때 개방적 대화를 지지하던 프르치와라(E. Przywara,1889~1972), 지베르트, 발타사르(H.U. von Balthasar, 1905~1988) 등은 마레샬과 초월적 토마스주의자들의 개방적인 학문 입장에서 가톨릭 정통 교리의 기초를 무너뜨릴 위험을 직시하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마레샬과 그 추종자들이 칸트의 선험주의에 집착해서 현상의 객관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하고 존재의 추상적 무한성을 신의 적극적 무한성과 혼동하고 있으며, 무한과 무규정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불가지론과 존재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가리구-라그랑주, 마리탱, 질송, 파브로 등 대표적 신토마스 주의자들도 마레샬과 그 추종자들의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전통의 복귀' 를 역설하였다. 이들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들을 충실하게 탐구하여 그의 존재 형이상학 · 인간학 · 윤리학을 심화시켰으며, 인식론적 통찰들을 근대 인식론과의 비판적인 대화 속에서 옹호하며 사회학 · 정치학 · 미학적 통찰들도 발전시켰다.
〔종합과 전망〕 19세기 말에 시작되어 20세기 초에 폭발적으로 부흥된 신스콜라 철학은 현대 철학의 가장 강력한 학파로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가톨릭 교회 사상가들이 전세계의 수많은 대학들과 연구소들을 통해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스콜라 철학자들이 현대 철학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이 운동의 시발점을 이루는 메르시에와 루뱅 대학에서 보는 것과 같이 스콜라 철학의 값진 유산을 오늘날에 되살리고자 현대 철학과의 창조적인 대화를 전개함으로써, 그 동안 무시되어 온 스콜라 철학의 지위를 복권시키며 근대 및 현대 철학의 사상적인 일탈을 교정하고 진정한 철학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온건 개방주의적 입장이다. 둘째는 마레샬 신부와 그의 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일군의 초월적 토마스주의자들에게서 보이듯이, 한걸음 더 나아가 근대 철학의 방법과 원리들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따름으로써 스콜라 철학의 낙후성과 지엽성을 극복하자는 진보주의적 입장이다. 그리고 셋째 는 마리탱 · 질송 · 파브로 등과 같은 입장으로서, 근대 사상과의 위험한 절충을 시도하다가 가톨릭 신앙과 스콜 라 철학의 빛나는 유산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사상을 배태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고자, 중세 고전 사상가들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탐구하자는 전통주의적 입장이다. 가톨릭 교회의 사상적 흐름을 전체적으로살펴볼 때, 20세기 전반부는 스콜라 철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시기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해서는 진보주의적인 입장이 우세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보수주의적인 입장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 그리스도교 철학 ; 근대주의 ; 메르시에, 데지레 조제프 ; 스콜라학 ; <영원하신 아버지> ; 토마스주의)
※ 참고문헌 레오 13세, 이재룡 역, <회칙 : 영원한 아버지>, 《신학과 사상》 11호(1994. 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248~270/ 이나가끼 료스케, 박영도 역, 《신앙과 이성》, 서광사, 1980/ㅡ, 정종휴·정 종표 공역, 《현대 가톨리시즘》, 박영사, 1980/ J. Maritain, 박양운역, 《스콜라 철학 개론》, 경향잡지사, 1957/ I.M. 보헨스키, 한전숙역, 《현대 철학》, 정음사, 1974/ 이재룡, <토미즘의 형성 및 발전과 근대 철학>, 《가톨릭 신학과 사상》 11호(1994. 6), pp. 158~187/ ㅡ,<현대 신토미즘 부흥 운동>, 《가톨릭 신학과 사상》 12호(1994. 12),pp. 176~220/ J. Hirscberger, 강성위 역, 《서양 철학사》 下, 이문출판사, 1987/ J. Huby, 강성위 역, 《가톨릭 사상사》, 성바오로출판사,1966/ M. de Wulf, Introduction a la philosophie néo-scholastique, Lou-vain · Paris, 1904/ F. Ehrle · F. Pelster, Die Scholastik und ihre Aufgaben inunserer Zeit, Freiburg, i. Br., 1933/ A.C. Pegis, Essays in Modem Scholas-ticism, Westminster, 1944/ J.L. Perrier, Revival of Scholastic Philosophy,New York, 1948/ 0. Muck, Die transzendentale Methode in der scholas-tische Philosophie de Gegemwart, Innsbruck, Kevelaer, 1964/ J. Wazlawik,Leo XIII and the New Scholasticism, Cebu City, Philippines, 1966/ T.Hartley, Thomistic Revival and the Modem Era, Toronto, 1971/J. Ratzingered., Aktualtaet der Scholastik?, Regensburg, 1975/ A. Piolanti, Il tomismo come filosofia cristiana nel pensiero di Leone XIII, Roma Vaticano, 1983/E.Coreth · W. Neidl · G. Pfligersdorffer eds., Christliche Philosophie imkatholischen Denken des 19. und 20. Jahrhunderts, Bds. 3, Graz-Wien-Köln, Verlag Styria, 1987. 〔李在龍〕
신스콜라 철학 新 - 哲學 〔라〕Neoscholastica 〔영〕Neoschola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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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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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영원하신 아버지>를 발표하여 스콜라 철학의 부흥 운동을 일으킨 교황 레오 13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