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섬기고 경배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신비 · 위격 · 속성과 구원 사업에 관계된 어떤 창조적 실재(realitascreata)에 대해 구체적인 표현을 하는 인간의 자세이자 종교적인 행위. 신심은 하느님과 신앙인의 관계에서 볼 때 위대한 자 안에서 미소한 존재를, 무한한 자 안에서 유한한 존재를, 창조주 안에서 피조물을 발견함으로써 하느님과 더 깊이 일치하는 신앙인의 영성적 도구이다.
〔정 의〕 유대인들에게 신심의 뜻은 서약(votm)이었으며, 전례적이고 윤리적인 실천을 나타냈다(민수 6, 2-4) .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신심을 서약이나 약속에 따라 충실성과 순명이 강조된 봉헌으로 묘사하였다. 사실 신심은 신앙의 다양한 표현이다. 따라서 신심은 언제나 신앙의 내용인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와 일치해야 한다. 이러한 신심을 이해하기 위하여 유명적 정의(有名的 定義, definitio nominalis)와 실제적 정의(實際的 定義, definitiorealis)로 나누어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명적 정의 : 라틴어에서 신심을 뜻하는 단어로는 '데보시오' (devotio)와 '피에타스' (pietas)가 있다. '데보시오' 에는 "봉헌 · 헌신 · 충성 · 신심 · 경건 · 독실 · 신앙" 등의 의미가 담겨 있는 반면에, '피에타스' 에는 "(부모나 조상에 대한) 효심 · 효성 · 효행 · 효경, (어버이, 손윗사람, 고국에 대한) 공경 · 충절, 애국심 · 충성 · 경건심 · 신심" 등의 의미가 있다. 이 두 단어 중에서 일반적으로 신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데보시오' 이다. 그래서 '데보시오' 를 갖고 있는 사람을 '충복' (devo-tus) 혹은 '신심가' (pius)라고 부른다.
실제적 정의 : '데보시오' 는 "(무엇을 위하여 혹은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다. 바칠 것을 맹세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데보베레' (devovere)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신심 즉 '데보시오' 란 말에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신심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 신심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의지이다. 둘째, 신심은 종교적 행위이다. 셋째, 신심의 일차적 원인은 하느님이시다. 넷째, 신심의 효과는 하느님의 신성에 의해 주어지는 기쁨과 희망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신심은 인간이 완덕(完德)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예속시키는 경신덕(敬神德)이라고 하였다. 신심은 경신덕의 일차 행위이고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 의지 자체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도록 한다. 경신례를 통해 인간의 육신이 봉헌되듯이 신심에 의해 인간의 의지가 봉헌된다. 그러므로 모든 경신 행위에는 이덕이 나타나야 한다.
또한 신심의 일차적 원인이 하느님이라고 한 것은 경신덕이 주부덕(注賦德)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도 다른 원인이 발견된다. 인류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선성(善性)과 자애(慈愛)를 묵상하고, 죄에 물든 자신의 연약함과 단점들을 제거하여 완덕의 근원인 그분께 의지하며 완덕에 도달하려는 의지 실현에서 신심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신심은 그리스도교적 완덕 실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적 완덕은 애덕(愛德)이므로, 이 덕에 도달하려면 하느님과의 일치에 방해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이탈(離脫, detachment)되어 불변하고 견고하게 하느님께 밀착(密着, attachment)되어어야 한다. 이 이탈과 밀착은 경신덕과 신심 행위에 의하여 완성된다.
〔원 천〕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신심의 일차적인 원인은 신심 생활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모든 신심의 궁극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신심의 원천인데, 이 말은 하느님이 신앙인의 모든 행위의 초자연적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신심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신심이 하느님의 은총인 이유는 영혼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일치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심을 하느님의 신비와 은총과 사랑에 대한 신앙인의 응답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도 없는 신심은 당연히 배격되어야 한다. 신심은 기도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기도 없는 신심 생활은 숨결 없는 생명으로 죽은 삶이다. 또 기도는 자신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신심 생활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에 전적으로 내어 맡기며 필요한 은총과 축복을 청하여야 한다.
〔종 류〕 신심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공적 신심' 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신비와 신앙에 대한 전통적인 신심들이다. 예를 들어 예수 성심 · 성체 ·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 · 마리아와 많은 성인들에 대한 신심등이다. 두 번째는 '특별 신심' 으로, 신앙의 본질적인 신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신심들이지만 교회 장상으로부터 인준을 받은 것이다. 예수의 오상 · 성인 유해 ·성상 공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사적 신심' 으로, 각 개인의 신앙적인 취향과 요구에 따라 갖는 신심들이다. 메달을 착용하거나 상본을 지니는 것 등을 말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영성 생활의 성장을 위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신심들을 장려해 왔다. 시대의 변화와 신심의 발전에 따라 현대 교회에서도 신심들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발전되고 있지만, 어떤 신심이든지 그 대상은 하느님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의미에서 예배는 하느님께만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증진시키고 촉진하기 위하여 특별한 신심들을 권장하고 있다. 또 시대 · 문화 · 계층 혹은 관심의 차이에 따라 특별한 신심들이 일어나기도 하며, 어떤 신심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신비들이나 교회의 모든 생활과 일치하여 그 호소력이 미치는 범위가 다른 신심들보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경우들도 있다. 교회는 이러한 신심들을 권장해 왔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장려해 왔다. 예수 성심 신심과 성체 신심이 그 예이다. 하지만 어떤 신심들은 신심의 대상 혹은 신앙의 신비들이 주변 환경에 제약되어 미치는 범위가 협소한 특별한 신심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신심들은 개인의 요구와 심적 태도에 의존되어 있어서 개인의 심적 태도에 따라 관심이 크거나 덜한 가치를 가진다. 신심은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신심을 길러 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성령은 각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단체와 개인들의 영신 생활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독자적이거나 밀교적인 신심들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봉헌을 길러 주기보다는 흔히 개인주의를 야기시킨다. 교도권에서 말하는 근원적이며 일반적 신심들로는 삼위 일체 신심 · 성 십자가 신심 · 성체 성혈 신심 · 예수성명 신심 · 예수 보혈 신심 · 예수 성심 신심 · 성령 신심 · 성모 신심 · 천사 신심 · 성 요셉 신심 · 모든 사도 신심 · 성 베드로 사도 신심 · 성 바오로 사도 신심 · 모든성인 신심 등이 있다.
〔발전 과정〕 신심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 단계의 발전 과정을 통해 영성 생활의 진보를 가져온다. 첫째 단계의 신심은 영혼이 하느님을 더 오롯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과 지상적이고 사라져 가는 세상 물질과 허무에서 이탈함으로써 하느님을 발견하려는 신심이다. 이러한 신심 생활의 모습은 대부분 초기 단계의 모습인데,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모습일 수 있다. 둘째 단계는 눈에 보이는 부모 형제를 사랑하고 하느님이 허락하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선용하고, 이웃과 삶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신심 생활은 자기 삶에 충실하고 현세적인 일들과 노동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신심은 현실적인 삶 안에서 신앙을 생활화한다. 셋째 단계는 보다 성숙되고 완성된 신심으로 피조물의 가치를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고, 이웃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봉사하는 것이다. 신심생활의 첫 단계에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자기 혼자였다면, 성숙된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부모 형제나 이웃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 체험 : 신앙은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데 있다. 그런데 현존 체험은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한다. 신심생활에서 하느님 체험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성사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종교적 체험'이다. 영성 생활의 첫걸음은 성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성사 생활을 통한 신심의 뿌리가 없는 신심 생활은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추상적 · 감각적 신심 행위가 된다. 둘째 '영성적 체험' 은 애덕 · 희생 · 봉사, 그리고 사도직의 모든 실천적인 신심들이다. 즉 육화하고 살고 죽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영성적 체험은 종교적 체험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한다. 셋째 '신비적 체험'은 하느님의 신비적 작용을 은밀히 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는 신비란 말 그대로 인간이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전통에서 볼 때 이 신비적 체험 에 대해서 교회는 언제나 신중하였다.
신심 생활에서 갖는 하느님 체험은 단순히 추상적 · 감각적이거나 순수한 객관성이나 내재적인 것만이 아니다. 또 신앙인의 어떤 노력의 결실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총은 한 영혼의 수련과 관계가 없이도 그 영혼안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심에서 하느님 체험의 주도권은 하느님이 갖고 있으므로, 하느님 체험은 어린이 · 노약자 · 병자 등 누구나 할 수 있다. 신심을 통한 하느님 체험은 신앙인들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정직하면서도 성실하게 진리를 실천하도록 변화시켜 준다.
덕행 : 신심은 종교적 덕행으로써 신앙인이 매 순간 하느님의 창조적인 구원의 삶에 참여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신심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인의 종속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덕행이라고 한다. 덕행은 신앙인이 하느님께 드리는 종교적 예배를 말하고, 예배는 완덕에 이르기 위한 봉헌으로서 영성적 삶의 행위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심이란 신앙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성실함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신심은 종교의 기본적인 신앙 행위로서 덕이다. 즉 신심은 자신의 의지를 봉헌하고 하느님을 흠숭하고 섬기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덕으로 성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심이 없는 참다운 종교적 덕이란 없다. 이 말은 참된 신심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덕은 종교적 덕행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심을 종교적 덕행으로서 기도, 예배, 희생, 서원 등의 완덕으로 강조하였다. 또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서 갖는 존경과 흠숭을 실천하는 덕을 신심이라고 하였고, 성 베네딕도(480?~547?)는 신심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에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줄 것을 청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애덕과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신심이란 신앙인의 마음을 뜨겁게 하여 영혼을 기도로 이끌어 주며 덕을 지닌 삶을 살도록 한다. 그리스도교적 완덕은 신앙인이 은총을 힘입어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삶에 참여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완덕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신심과 신심 행위들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종교적 덕행을 요구한다. 신심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는 삶이므로, 그 열매는 기도 · 봉사 · 희생 · 사랑들의 헌신적인 덕행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신심과 전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심 행사가 전례 시계(時季) 즉 전례력과 어울려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전례는 그 성질상 신심 행사보다 월등히 우위를 차지하므로 전례와 조화되도록 신심 생활을 인도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전례 13항). 신심은 대상이 적합하고 목적에 어긋나지 않으면 전례와 상반되지 않으며, 오히려 건전한 긴장 관계가 이루어진다. 전례의 우위성이 존중될 때 전례 신심과 대중 신심은 함께 존속한다. 대중 신심은 전례에서 나오고 전례로 향해져야 하는데, 사실 신심은 전례를 토대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과 일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신앙인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전례를 통해 현실적으로 신심 생활을 영성화하는 데 있다. 이는 신심이 전례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특히 성찬과 부활에 대한 신심으로 믿는 이들의 열성과 신앙심을 의미하는 희생과 봉헌의 삶을 표현하였다. 희생과 봉헌을 통한 신심 생활의 포기는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명의 삶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례는 거룩한 표지(標識)하에서 하느님과 교회의 위격적인 만남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교회 각 지체의 전인격(全人格, apersona)과의 만남이다. "거룩한 표지하에서" 라는 말은 직접적이 아니고 표징적 즉 성사적 성격을 의미하며, "하느님과의 위격적 만남"은 전례의 하느님 중심적 성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은 하느님과 인간의 유일 중재자인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격을 뜻하고, "하느님과 교회와의 만남이란 전례의 교회적 성격을 의미한다. 또 "전 인격적 만남"이란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말한다. 이 만남의 주도적인 역할은 하느님이 하신다. 이는 하향 선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상향 선이다. 상향 선의 작용은 인류의 감사와 찬미와 청원으로 이어진다. 이 예배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별된 이들이 공적이고 공무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찬미 ·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전례의 성사성은 신심을 능가한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실현하므로 하향 선이 있지만, 신심 행위는 상향 선만 있다. 전례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효력을 지니지만, 신심은 사적이고 주관적 특성을 지닌다. 전례는 공적이고 공무적이지만, 신심은 의무적 성격이 거의 없고 사적이어서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 또 신심은 전통성을 살펴 승인하고 권장하는 정도이지만, 전례는 교회 자체의 행위이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1947년 11월 20일에 발표했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회칙 <메디아토르 데이>(Mediator Dei)에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있다. "법적 관점에서는 거룩한 전례에 속하지 않으나어느 면으로는 전례적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또 사도좌와 주교들에 의해 거듭 승인되고 찬양될 정도로 중요성과 품위를 지니는"(182항) "이 신심업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자극하여 참회의 성사에 항구히 나아가게하고, 경건하고 열심히 미사 성제와 영성체에 나아가게하고, 우리 구세주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고, 천상 성인들의 탁월한 모범을 본받도록 하여, 우리가 구원의 효과를 주는 전례에 참여하게 한다" (183항). "그러므로 이 모든 신심업들을 무모한 모험으로 개혁하여, 그것들이 전례적 예절의 방법과 규정에만 속하게 하려는 사람은 위험스럽게도 착오로 가득한 일을 행하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거룩한 전례적 영감과 그 지침들은 반드시 그 신심업에 유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가치를 발휘하게 하여, 하느님의 집이 꾸며지는 데 부적합하고 부당하거나 거룩한 직무 이행에 유해하고 건전한 신심에 위배되는 것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184항). "따라서 우리의 기도와 모든 신심업은 최상의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적 힘을 기울여 나아가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185항)
※ 참고문헌 J. Chatillon, devotio, 《DSp》 3, pp. 702~716/ J.W. Curran, dévotion, 《DSp》 3, pp. 716~7271 Dictiomaire de la vie Spiritualité, 1983,pp. 345, 352, 903/ A. Tanquerey, Téologie Ascétique et Mystique, Descléeed., 1925/ P.Y. Tissot, La vie intérieure simplifiée, Beauchesne ed., 1923, pp.86~100, 248~296/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서울 가르멜 수녀원 역,《신심 생활 입문》, 가톨릭출판사, 1991/ 《신심 운동》, 200주년 기념사목 회의 의안 5,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위원회,1984/ K. Rahner, 정대식 역, 《영성 신학 논총》, 가톨릭출판사, 1983,pp. 135~154/ 정대식, 《전례와 영성 생활》, 가톨릭출판사, 1993, pp. 203~219. 〔鄭大植〕
〔신심 운동〕 교회는 초기부터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사명과 책임(마태 28, 19-20)을 의식하고 전례를 보충하고 또 공적 신심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적 신심의 관행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 행전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사도 8, 14-18 : 15, 5-11). 하지만 교회는 신앙을 삶 안에서 보다 활성화하고 영적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심 운동을 장려하고 권장해 왔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신심 행위와 관련된 문제들과 쟁점들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은 교계의 권위였고, 신심 운동은 모든 이의 회개와 영성 생활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였다.
교회의 초기 신심은 주로 개인의 기도 생활과 영적 성장에 초점을 두고 본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전되었으나, 교회의 확장으로 신심들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아지자 이를 심사하고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성(省, congregatio)을 교황청 내에 설립하게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교회의 신심 생활과 연결된 특별한 문제들을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들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공의회에서도 신심들을 입법화했는데, 그 예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교회의 인준 없는 신심들을 경고했고(DS 1821~18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메디아토르 데이>를 반영한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에서 신심에 관한 조항들을 포함시켰다(전례 8~10항, 12~13항 : 교회 67항). 이 조항들은 하느님과 영혼의 친밀성을 증진시킴에 있어서 신심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들이다.
현대의 신심 운동은 개인의 영성 심화를 기초로 하지만 초본당적인 형태의 신심 단체로 변화되고 있다. 신심 운동은 그 시대의 요청, 시대적 관심과 욕구에 부응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신앙심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시대적 요청이나 지역적 관심이 바뀌면 언제든지 소멸되고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동기는 언제나 성서적 바탕, 현실에 대한 신앙적 감각, 애덕 실천을 위한 방법이나 사회의 복음화에 있다. 즉 신심을 통한 영적 성장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신심 운동은 교회 안에 새로운 영을 불어넣으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이다. 그래서 신심 운동은 신자 개인의 성화와 교회 쇄신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신심이나 신심 운동을 절대화함으로써 신심 운동간에 배타적 사고가 있어서는 안된다. 또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교회 인준 아래 구성된 신심이나 신심 운동이라도 각자의 신분과 영성적 조건에 따라 분별 있는 선택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신심 단체에 가입하는 욕심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며 영적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심이 성령께 마음을 열어 그분의 역사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와 일치하면서 성부께로 나아가는 파스카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도와 도움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모든 신심 단체는 교구 · 본당에 종속되어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개인 신심도 중요하지만 특히 신심 단체를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는 사목자의 보다더 적극적인 관심과 사목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특히 현대 교회의 신심 가운데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정통 교리와 차이가 있고 또 사적 계시를 지나치게 일반화하거나, 개인의 신앙 체험이나 영성 생활 혹은 신심을 과장되게 미화시켜 성령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질식되어 버리는 신심의 형태가 있을 수 있으므로 교회의 지도는 필수적이다.
〔신심회〕 신심회(信心會, pia unio confraternitas, sodalitas)는 교회가 관리하는 신심의 여러 형태를 법적인 관점에서 표현한 말이다. 가톨릭 교회의 단체는 크게 성직자들로만 구성된 성직자 단체(consociatio clericalis), , 평신도들로만 구성된 평신도 단체(consociatio laicalis), 그리고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함께 구성하는 혼성 단체(consociatiomixta)로 구별된다. 이 단체들은 설립 목적에 따라서 다시 재속 제3회(tertius ordo saecularis), 형제회(confraterni-tas), 신심 단체 혹은 경신단(敬神團, associatio piae unio-nis), 사도직 단체(associatio actionis catholicae)로 구별된다.
이 단체들 중에서 신심 단체는 목적에 따라 단체의 명칭과 그 회의 성격이 나타난다. 신심회는 영적이거나 형제적이거나 신심 사업(opera pietatis) 또는 자선 사업(operacaritatis)을 목적으로 한다(교회법 114조 2항). 어느 단체이든지 교회법에 따른 정관이 바르게 작성되어 관할권자의 인준과 서면 동의를 얻어(312조 2항) 목적에 따라 생활하여야 한다. 또 회의 설립과 회원 자격과 의무(316조 1~2항)는 정관 및 교회법에 의하여 작성되어야 하며(322조) ,단체의 해산도 교회의 공법을 따라야 한다(320조 1~3항; 326조 1~2항) . 한국 천주교회 창립 이후에 도입되어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 1932)에 의해 공식 관리된 신심회로는 예수 성심회(SodalitasSSmi Cordis Iesu) , 성모 성심회(Cofraternitas SSmi Imma-culati Cordis Mariae pro conersione peccatorum), 매괴회(玫瑰會, Sodalitas SSmi Rosarii) , 성의회(聖衣會, Confraternitas Sacri Scapularis B.M.V. de Monte Carmelo)가 있었다. 그러나이 단체들은 새 교회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국 천주교공용 지도서》의 효력이 정지되자 후속 조치 없이 자동 해산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명시한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 온 신심 행위의 풍습을 중히 여기며"(교회 67항)라는 규정과 "관습에 따라" (secun-dum consuetudinem, 전례 13항)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주교들의 명령으로" (de mandato Episcoporum, 전례 13항) 다시 소생될 수 있다.
1995년 6월 4일 성령 강림 대축일부터 시행된 《한국천주교 사목 지침서》 209~214조에는 신자 단체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209~212조가 신심회에 관한 조항이다. 209조에서는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처럼 신심 단체들을 개별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교회가 인준한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를 권장하고" 210조에서는 신심 운동들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사목 지침서 해설서에서는 210조를 해설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에 도입된 신심 운동들로 한국 천주교 200주년 사목 회의 의안대로 신심 운동과 활동 단체들을 소개하였다. 즉 국제 마리아 사업회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운동(M.B.W.) · 성령 쇄신 운동 · 꾸르실료 · 레지오 마리애 · 매리지 엔카운터 등이다.(⇦ 신심 운동 ; 신심회 ; → 매괴회 ; 성모 성심회 ; 성의회 ; 예수 성심회)
※ 참고문헌 A. Verheul, Introduction to the Liturgy, Liturgical Press Collegeville, Minnesota, 1968, pp. 133~148/ 一, 김복희 역, 典禮神學》, 분도출판사, 1994, pp. 148~164/ Modem Catholic Encyclopedia, A Michael Glazier Book, Liturgical Press Collegeville, Minnesota, 1994/ J.W.Curran, 《NCE》 4, pp. 832~833/ Missae Votivae, Missale Romanum, 1970,pp. 831 ~850/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 Iussu et Auctori-tate RR. Ordinariorum Denuo Editum et A Sancta Sede Approbatum de Seoul, 1958/ Codex Iuris Canonici Pii Ⅹ Pontificis Maximi, Westminster, Maryland, Newman Press, 1949/ Litterae Encyclicae Pii PP. XII , Mediator Dei, 《AAS》 39, 1947, pp. 531~53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성 베네딕도 수도원 역, 《거 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분도출판사, 1964, pp. 81~82/ Herbert Vorgrimler, general ed., Commentary on the Documents of Vatican II ㅡ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 vol. 1, Burns & Oates, Herder andHerder, 1967, n. 13, p. 16 ; nn. 103~105, pp. 71~72/ 一, On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 67, p. 295/ 윤형중 편, 《한국 가톨릭 지도서》, 가톨릭출판사, 1965/ 《신심 운동》,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 의안5,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위원회, 1984, pp. 28~821《교회법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정진석, 《교회법 해설》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1, pp. 80~1 14/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정진석,《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해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pp.504~512. 〔李淨雲〕
신심 信心 〔라〕devotio 〔영〕dev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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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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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은 하느님과 더 깊이 일치하는 신앙인의 영성적 도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