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신암1동 603-10소재. 1945년 12월 20일 대구(현 계산동) 본당 관할 동상(東上) 공소에서 준본당이 되었다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신암1 · 3동전 지역과 신암4동 일부 지역. 〔교 세〕 1956년 226명,1964년 3,619명, 1972년 3,800명, 1976년 5,389명,1981년 4,801명, 1986년 6,262명, 1993년 7,978명,1999년 7,657명. 〔역대 신부〕 초대 강찬형(姜贊亨) 파스칼(1945. 12~1947.6), 2대 김영호(金永浩) 멜키올(1947.6~1950. 11), 3대 권영조(權永兆) 마르코(1950. 11~1951.9), 4대 김동욱(金東旭) 마티아(1951. 9~1955. 5), 5대 이 경우(李慶雨) 가브리엘(1955. 5~1956), 6대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1956~1961. 1) , 7대 비도(J. Bideau, 都) 요한(1961. 1~1962. 4), 8대 뒤라나(A. Durana, 羅聖徒) 아멜(1962. 4~1964. 2), 9대 루메귀(H. Roumegoux, 黃敎人) 헨리코(1964.2~1969.8), 10대 박창수(朴昌壽) 요한(1969. 8~1971. 11), 11대 김광록(金光祿) 베드로(1971. 11~1976. 3),12대 김경식(金烱式) 보니파시오(1976. 3~1980. 5), 13대 정학모(鄭學謨) 루가(1980. 5~1983. 7), 임시 이종흥(李鍾興) 그리산도(1983.7~8), 14대 박도식(朴道植) 도미니코(1983. 8~1990. 2), 15대 이성우(李聖雨) 아킬로(1990. 2~1993. 10), 16대 전주원(全主元) 바오로(1993. 10~1995.10), 17대 이용호(李龍浩) 가브리엘(1995. 10~1996. 8) , 18대 박병기(朴炳璂) 베네딕도(1996. 8~현재).
〔공소 및 준본당 시기〕 신암 지역에 언제 공소가 설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87년 대구 본당 초대 주임 로베르(A.P. Robert, 金保祿) 신부가 작성한 교세 통계에 동상(신암) 공소가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1880년대 초에는 이 지역에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1887년에 동상 공소 신자 30명이 소란골(현 대구시 동구 신암동)의 김상연(바오로) 공소 회장 집에서 공소 예절을 드렸으며, 그 후 신자가 꾸준히 늘어나 1900년경에는 100여 명에 달하였다. 1904년에 동상면 신기리(현 대구시 동구 신암동 749번지 및 750번지)로 공소를 이전하였고, 1923년에는 30여 평의 공소 강당을 지어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33년에 종탑을 세우고 강당을 개축하였다. 이어 같은 해 4월 대구 본당 관할 신암 공소에서 준본당으로 승격되어 대구 본당의 보좌 신부가 매달 며칠씩 이곳에 머무르면서 사목하였다.
〔본당 설립과 발전〕 1945년 12월 20일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강찬형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승격과 더불어 신자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강찬형 신부는 현 성당 자리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그 후 1949년 7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4대 주임 김동욱 신부 때인 1951년에 완공되었다. 5대 주임 이경우 신부 때에는 강당을 건축하였고, 6대 주임 임화길 신부는 사제관 2층을 신축한 데 이어 반야월 공소와 동촌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60년에는 신암유치원(현 파티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9대 주임 루메귀 신부 때인1965년 6월에는 옛 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3층 강당을 신축하여 유치원 · 교리실 · 도서실 등을 마련하였고, 야학교인 신성학원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10대 주임 박창수 신부 때인 1970년 1월 15일에 삼덕동(三德洞)본당에서 신천동(新川洞, 현 복자) 본당이 분리 · 설립되자 신암동 본당에서도 200세대를 이관하였다. 12대 주임 김경식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성당과 사제관을 개축하였고, 1977년 7월 5일 대현동(大賢洞) 본당과 효목동(孝睦洞) 본당을 각각 분리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예수 성심상 건립과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13대 주임 정학모 신부 때인 1981년 11월 30일에는 큰고개 본당을 분리하여 신암4동 일부를 이관하였고, 14대 주임 박도식 신부는 1989년 10월 연건평 608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하 였으며, 1992년에는 노후된 수녀원을 헐고 50평 규모로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17대 주임 이용호 신부는 본당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하여 구역 · 반을 새로 편성하고 각종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6년 8월에 부임한 18대 주임 박병기 신부는 사회 복지 사업에 주력하여 매월 1회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으며, 성서 읽기 백 주간을 실시하여 신자들이 성서 읽기를 생활화하도록 하고있다. (→ 대구대교구 ; 계산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新岩本堂 50年史》, 新岩天主敎會,1997/ 《김보록(로베르) 신부 서한집》 1, 영남교회사연구소, 1995/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편찬실〕
신암동 본당
新岩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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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