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9월 8일 얀센(Arnold Janssen, 1837~1909) 신부가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서 설립한 선교 수도회. 총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지부는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3동 1-1161번지에 있다. 한국 진출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신언회' 라는 명칭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해 왔으나, 이 명칭이 수도회의 고유 사업과 영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식 명칭을 '말씀의 선교 수도회' 로 바꾸었다.
〔설립자의 생애〕 설립자 얀센 신부는 1837년 11월 5일 독일 라인 강변에 위치한 고흐(Goch)에서 11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고흐 본당 보좌 루이터(Ruiter) 신부의 후원으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1859년 수학과 과학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사제직에 대한 열망도 저버릴 수 없어 신학을 공부한 뒤 24세 때인 1861년 8월 15일 민스터(Münster) 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그후 12년 동안 독일 북서부의 보홀트(Bocholt)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무렵 재상(宰相)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 1898)에 의해 독일 전역에서 문화 투쟁(Kulturkampf)이 벌어지자, 얀센 신부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에 그는 1869년에 뮌스터 교구의 '기도의 사도회' (Gebetsapostolat) 회장직을 맡아 교구 내의 300여 개 본당을 방문하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야 비로소 공식화되었던 교회 일치 운동을 예견한 것이었다.
1873년 교직을 떠난 그가 이듬해 1월 1일 창간한 잡지 《예수 성심의 작은 사자(使者)》(Kleiner Herz-Jesu-Bote) 가 짧은 시일 내에 많은 독자를 얻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원을 설립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문화 투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신학원 설립이 불가능하여 네덜란드 슈타일로 가서 1875년 9월 8일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 (Missions-haus zum hl. Erzengel Michael)을 설립하였다. 이 신학원이 '말씀의 선교 수도회' 의 모태이며, 수도회에서는 이날을 설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 후 설립자 생존시에 로마(1888), 빈(1889), 폴란드(1892), 독일 남부의 웬델(1898) 등지에 신학원이 설립되었고, 이곳에서 양성된 선교 사제들과 수사들이 전세계로 파견되었다.
한편 얀센 신부는 1889년 12월 8일 '성령 선교 수녀회' (Congregatio Missionalis Servarum Spiritus Sancti)를 설립하여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서로 협력하도록 하였고, 1896년 12월 8일에는 관상 수도회인 '지속적인 성체 조배 수녀회' (Servants of the Holy Spirit of Perpetual Adoration)를 설립하여 기도와 자기 희생을 통해 선교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얀센 신부는 1909년 1월 15일 슈타일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말씀의 선교 수도회 첫 선교사였던 요셉 프라이나데메츠(J. Freinademetz)와 함께 1975년 1월 15일 복자품에 올랐다.
〔수도회의 세계 진출〕 얀센 신부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선교 가능 지역으로 내다보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인구 10억의 거대한 나라 중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첫선교지를 중국으로 택하고 1879년 3월 2일 2명의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이어 일본 · 필리핀 · 인도 · 인도네시아 · 홍콩 · 대만 · 한국으로도 파견하였는데, 현재 아시아에 파견된 선교사는 전체의 55%에 이른다. 이외에 아메리카 대륙으로는 1889년에 아르헨티나, 1895년에는미국에 진출하였으며, 1892년 토고를 시작으로 한 아프리카 선교 활동은 앙골라 · 보츠와나 · 가나 · 케냐 · 짐바브웨 · 콩고 · 잠비아로 이어졌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세계 선교를 활발히 펼치던 1901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승인을 받았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대학 강의 · 본당 사목 · 성서 사목 · 매스 미디어 사목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 정의 평화 실현에 참여하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설립자의 가장 큰 소망이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으므로, 수도회에서는 가능한 한 파견된 모든 국가에 피정 센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9년 12월 말 현재 세계 62개 국에서 종신 서원자 4,414명, 유기 서원자 1,107명, 수련자 467명 등 모두 5,988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수도회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모든 활동과 영성의 뿌리는 성서의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한 1, 1)에서 비롯된다. 회원들의 소명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하느님께 대한 헌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본보기를 제공한 '거룩한 말씀' 을 정신과 마음속에 간직한다.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이루어진 형제들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성의 살아 있는 상징이 되도록 노력하며, 모든 노력의 초점을 선교 목표에 두도록 헌신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믿음의 씨앗을 자라게 하는 분은 오직 성령"이라고 굳게 믿었던 설립자의 정신대로 언제나 기도하고 바라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한국 진출 및 사도직 활동〕 1984년 8월 25일 수원교구장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의 초청으로 3명의 회원이 한국에 진출하여 수원교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 센터인 '갈릴래아' (안산)와 어린이 위탁 가정 시설인 '마르철리노의 집' (화성군 왕림)을 운영하고 있고, 성서 공부와 수도자 · 평신도들을 위한 피정 지도 및 영성 상담을 하고 있으며, 분당성 마태오 본당(1997), 중앙 본당(1998), 분당 요한 본당(1999), 대학동 본당(199), , 영통 성령 본당(1998) 등에서 사목에 협조하고 있다. 2000년 11월 말 현재 회원수는 13명이다. (→ 성령 선교 수녀회)
※ 참고문헌 한국 수도자 장상 연합회 양성위원회 편,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사, 1992/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V.J. Fecher, 《NCE》 4, pp. 923~924/ ㅡ, 《NCE》 7, p.826/ H. Jedin, 《LThK》 5, pp. 870~871. 〔金成喜〕
신언회 神言會 〔라〕Societas Verbi Divini(S.V.D.) 〔영〕Society of the Divin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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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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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얀센 신부(왼쪽)와 로마에 있는 신언회 총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