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동 본당

新月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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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양천구 신월4동 436-1소재. 1984년 8월 1일 신정동(新停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관할 구역은 신월2 · 4 · 6 · 7동 전 지역이고, 관할 공소는 연의(延義)골 1개소. 〔교 세〕 1984년 1,883명, 1988년 5,163명, 1993년 6,836명, 1999년 6,557명. 〔역대 신부〕 초대 송진(宋眞) 발렌티노(1984. 8~1988. 3), 2대 염수의(廉洙義) 요셉(1988. 3~1995. 9), 3대 허중식(許重植) 그레고리오(1995. 9~2000. 9), 4대 전형의(全亨義) 베드로(2000. 9~현재).
1980년대 초 정부에서 신정동 · 목동 지역에 신시가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자 신정동 본당은 이 지역의 인구가 급증할 것을 예상하고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기념 사업의 하나로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1983년 7월 신정동 본당은 교구와 협조하여 현 신월동 성당 소재지의 부지 400평을 마련하였고, 이듬해 8월 1일 신월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송진 신부가 부임하였다. 신정동 본당 사목 협의회는 임시로 신월동 성당 부지에 천막 성당을 마련하기로 계획하고,같은 해 9월 14일 정식으로 신월동 본당과 인계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 후 무엇보다도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으므로, 10월에 천막 성당 공사에 착수하여 11월에 7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건축 도중 미관상의 이유로 동사무소 철거반 원들에 의해 천막 성당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1년 내에 철거하기로 강서구청과 협의하였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송진 신부는 다양한 본당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본당 주보 <곱달내>를 창간하였고, 다양한 교리 교육을 전개하기 위해 유급 선교사 제도를 시행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잡아 나갔다. 1985년 3월에는 약속대로 천막 성당을 철거한 후, 성당 건립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으나 성당 신축 계획은 교구 건축위원회로부터 보류 통보를 받았다. 이로 인해 성당 신축 계획은 조립식 성당 건축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3월 철거 직후 성당 공사에 착수한 신월동 본당은, 같은 해 4월 7일 성당(124평)을 완공하였고, 이듬해 2월에는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를 초청하였다. 처음에 수녀원은 성당 앞 연립 주택에 마련되었으나 1987년 3월 성당 내 건물로 옮겼다.
1990년 4월 17일에는 신정동 본당 · 오류동(梧柳洞) 본당 · 신월동 본당들의 삼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많던 신월3동 지역에 103평 규모의 건물을 마련한 뒤 '연의골 공소' 를 설립하였다. 연의골 공소에서는 어린이 집(현재는 폐쇄)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신월동 본당은 1986년부터 성당 주변의 부지를 점차적으로 매입하여 지금은 기존의 성당 부지와 더불어 743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데, 성당 신축 기금을 모금하여 새 성당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 서울대교구 ; 신정동 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신월동 본당 10년사》, 천주교 신월동 교회, 1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