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철 申允鐵(1906~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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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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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철 신부.

연길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06년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간도성 팔도구(八道溝) 인근의 하평(下坪)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덕원 신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3월 21일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 김보용(金寶容, 루도비코)과 함께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출신 본당인 팔도구 본당의 주임 신부로 사목 생활을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왕청(汪淸) 준본당의 주임이 되었다. 한편 신윤철 신부는 왕청에서 사목할 당시 1945년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연길 대목구 내 한국인 사제들과 함
께 체포되었다가 얼마 후 풀려 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소련군이 만주에서 철수하고 난 뒤에도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를 표방하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또다시 체포되어 1948년 인민 재판을 통해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연길 대목구장 브레허(T. Breher,白化東) 주교의 지시로 남하를 결행하였다.
남하하던 중 1948년에 평양교구 대신리(大新里)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잠시 사목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황해도 장련(長連) 본당의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신윤철 신부는 장련 본당에서 사목하는 동안 미사 강론 때마다 반유물론적인 내용을 자주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 신자들이 인민군에 입대하는 것을 만류하여 늘 공산당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결국 '착한 양들과 함께 있겠다' 며 끝까지 본당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1950년 6월 24일 밤, 장련 내무서로 강제 연행된 후 어디론가 끌려가 공산군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45세였다.
※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104호(1984. 2), pp. 9~10/ 《경향잡지》883호(1938. 8), p. 381/ 《가톨릭 青年》 41호(1936. 10)/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1984.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