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휴전 神 - 休戰 〔라〕Treuga Dei 〔영〕Truc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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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기간과 특정 축일에 싸움을 중지하도록 교회가 전례력으로 정한 법령. 11~12세기의 유럽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배 경〕 6~7세기경에 이루어진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 민족의 개종은 초기의 내적이고 영적인 개종이었던 경우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 민족들은 군주나 족장이 개종함으로써 일반 백성들까지 개종한 경우였기 때문에, 외적으로 종교만 바뀌었을 뿐 습관과 미신적인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난폭한 성향의 이 민족들에게 가톨릭의 윤리와 법을 통용시키고 그들을 문화적인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다. 더욱이 10~11세기의 서유럽 사회는 정치적인 불안정과 봉건 사회로 인해 영주들 사이에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사회 안정과 윤리적 질서를 원했던 교회는, 윤리적인 면에서 일부일처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왕들과 봉건 영주들에게 그들의 무절제한 결혼 생활의 잘못을 끊임없이 지적하였다. 그러나 일반화된 봉건 영주들 사이의 전쟁으로 사회 전반에 나타난 현상은 약탈 · 잔인한 복수 · 음주 · 무절제한싸움 · 호색한들의 폭행 등이었다.
이렇게 사회법이나 교회법이 통용되지 않는 무질서 속에서 사회 질서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이러한 노력은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르퓌(Le Puy)의 주교는 975년에 처음으로 교회 회의에서 귀족들에게 교회의 재산과 가난한 이들의 재산에 손대지 말 것과 훔친 것은 되돌려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비슷한 노력들이 13세기까지 이어지면서 평화에 대한 염원은 커져 갔고, 왕과 대귀족 및 하층민들은 많은 호응을 아끼지 않았다. 폭력과 약탈의 주 계층인 중간층이나 하급 귀족들은 반항하였지만, 주교들이나 지배 계층은 대중의 호응 속에 이를 전개해 나갔다.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은 수호 성인들의 유해를 들고 행진하였으며 대중들은 거리에서 '평화'를 부르짖었다.
이 같은 현상은 처음으로 나타난 대중적인 종교 운동이었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이 평화를 부르짖으며 참여한 것은 자신들의 교회를 지키고, 동시에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 및 상인들의 상업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대처한 방안은 폭력을 행사한 지방 전체에 성사 금지 벌을 내리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벌은 효과가 있었다. 많은 교회 회의에서도 귀족들에게 평화를 위한 선서를 요구하였으며,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전쟁과의 전쟁" 효과는 11세기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명문화와 규정〕 평화를 위해 노력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나 복수극, 결투를 금지시킬 생각을 못하고 교회와 가난한 이들에게 약탈한 것들을 되돌려 줄 것만 종용하였다. 따라서 약탈자들은 계속 무기를 갖고 폭력을 사용하였으며, 교회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에 교회는 휴전을 구체화할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이 구체적인 방법을 처음으로 밝힌 교회 문서가 1027년 엘느(Elne) 교구가 툴루즈에서 개최한 교구 시노드에서 작성되었다.
엘느 교구장 올리바(Oliba di Vich) 주교는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자신의 교구와 그 주변에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성사를 금지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즉 주일에는 모든 전쟁을 중단하고 하느님께 흠숭의 시간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교회가 오래 전부터 주일에는 모든 생업이나 유흥을 피하고 성스럽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쳐 왔는데, 이것을 싸움 또는 전쟁에까지 확대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클뤼니 수도원 제5대 원장인 오딜로(Odilo, 962~1049) 아빠스에 의해 고무되어 "하느님의 휴전"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확산되기 시작하여 이를 위한 교회 회의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오딜로 아빠스는 프랑스의 주교들에게 "목요일은 주의 승천, 금요일은 주의 수난, 토요일은 주의 무덤, 일요일은 주의 부활을 기념하여야 하며, 구원받기 위해서 이날들에는 하느님이 두려워서라도 원수와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 같은 생각은 여러 곳에서 받아들여졌고, 왕과 제후들이 호응함으로써 차츰 프랑스 전역에 정착되었다.
'신의 휴전' 이 지닌 일반적인 의미는 한 주일 중 일정한 기간, 다시 말해 주님의 수난에서부터 부활날까지는 무기에 손을 대지 말자는 것이었다. 1042년부터는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로 정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더 적게 적용되기도 하였다. 그 후 중요한 성스러운 기간 즉 대림 시기 · 사순 시기 · 부활 시기로까지 확장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축일들 · 성 요한 축일 · 사도들의 축일까지로 확장하였다.
11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에 한정되었던 이 운동은 점점 확산되었다. 1066년 바르셀로나에서 '신의 휴전' 이 선포되었고, 1082년에는 리에주(Liège)의 주교가 이를 신성 로마 제국 지역에 소개하였으며, 3년 뒤에는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1056~1106)가 참석한 마인츠 교회 회의의 결정에 따라 제국 내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신의 휴전' 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군주 정치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실시되지 않았다. 1089년에는 남부 이탈리아에도 신의 휴전이 적용되었다. 11세기 말경에는 교황이 '신의 휴전' 을 직접 관장하게 되었다. 니콜라오 2세 교황(1058~1061)이 1059년에 열린 로마 교회 회의에서 관심을 표명한 이후 여러 교회 회의와 공의회에서 평화 유지를 위해 노력하였고 회칙이 반포되었다. 그리고 1095년의 클레르몽 교회 회의에서는 모든 그리스도교 국가에 1주일 동안의 휴전을 선포하였고,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들은 그 신분에 관계없이 3년마다 휴전을 지지하는 맹세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신의 휴전' 에 관한 규정은 이후 교회 회의에서 계속 재확인되었다.
'신의 휴전' 은 라테란 공의회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제1차 라테란 공의회(1123)에서는 '신의 휴전' 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문화하였고(15조), 제2차 라테란 공의회(1139)는 신자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규정을 언급하면서 '신의 휴전' 준수 의무를 명시하였으며, 제3차 라테란 공의회(1179)에서도 '신의 휴전 준수' 를 공표하였다(21조). 그러나 이러한 규정들은 공의회들에서 새롭게 결정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이전의 공의회에서 선언된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전(全) 교회에 더욱 명료하게 선포한 것이었다. 즉 '신의 휴전' 은 매주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이며, 일 년 중에는 대림 시기 시작부터 주의 공현까지, 성령 강림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8일째까지로 정하고 결투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교회 장례를 금한다는 등의 결정이었다.
〔평가와 의미〕 사회 평화를 위한 새로운 노력이었던'신의 휴전' 준수는 당시에 봉건주의가 정치적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사실 봉건주의는 개인의 평화에 대한 염원과 실천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며,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12세기에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신의 휴전' 은 13세기 들어서 왕이 귀족들을 지배하고 왕의 영향력이 교회의 평화를 대신하게 됨에 따라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끝내 사라졌다. 비록 불완전하고 한정된 기간에만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휴전' 운동은 교회의 사회의 역할에 대한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왕국이 불안정하고 공공 질서를 세속 권력이 세우지 못할 때 교회가 유럽 사회의 일상 생활에 권위를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또 '신의 휴전' 은 평화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질서와 법의 통용을 교회적인 정신으로 가능하게 한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라테란공의회 ; 프랑스)
※ 참고문헌  E. Amann · A. Dumas, L'epoca feudale, Storia della Chiesa, vol. Ⅶ, ed. S.A.I.E., Torino, 19771 A. Fliche, La Riforma gre-goriana, Storia della Chiesa, vol. VIII, ed. S.A.I.E., Torino, 1977/ R. Fore-ville · R. De Pina, Dal Primo Concilio Lateranese all'avvento di Innocenzo Ⅲ , Storia della Chiesa, vol. Ⅸ-1~2, ed. S.A.I.E., Torino, 1977/ M. Kndwles, D. Obolensky, il medio evo., Nuova Storia della Chiesa, vol. 2,ed. Marietti, Torino, 1977/ K. Bihlmeyer · H. Tüchle, Storia della Chiesa, vol. II , ed. Morcelliana, Brescia, 1979/ P. Guiducci, Storia della chiesa, ed. Elle di ci, Torino, 1988 / F. Kempf · H. Beck, il primo medioevo, Storiadella Chiesa, vol. Ⅶ, ed. Jaca Book, Milano, 1975. 〔具本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