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고령(高靈). 1894년 12월 6일 충남 서산군 팔봉면 금학리(金鶴里)에서 태어나 충남 당진군 합덕면 합덕리(合德里)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보냈으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9월 18일 종현(鐘峴, 현 명동) 본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종현 본당의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한 신인식 신부는 이듬해 5월 약현(藥峴, 현 중림동) 본당 초대 보좌가 되었고, 1927년에는 종현 본당 내에 있던 성가 기숙사 사감 신부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그는 《가톨릭 청년》에 많은 글들을 기고하는 한편, 강연회 연사로도 활발히 활동하였고 《경향잡지》의 주필(主筆) 한기근(韓基根, 바오로) 신부를 도와잡지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이어 1937년 5월 황해도 신천(信川)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5월까지 재임한 뒤 동성상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1944년 11월에 미아리(현 길음동) 본당 초대 주임을 거쳐 1946년 4월에는 약현 본당 5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8 · 15 광복 후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로 전례를 통해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후 1954년 11월 인천 답동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지도 신부로 임명되어 1년 간활동하다가 이듬해 9월 대방동(大方洞) 본당 3대 주임으로 전임되었고, 1959년에는 서울 대목구 부주교를 겸임하였다. 이어 또다시 약현 본당 주임(1961. 1~1963. 9)과 명동 본당 주임(1963. 9~1964. 8)을 거쳐 가르멜 수녀회 지도 신부로 임명되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67년 10월 휴양에 들어갔다. 1년 동안 병상에서 생활하다가 1968년 8월 12일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교회와 역사》 70호(1981. 6), 한국교회사연구소, p. 5/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4/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편찬위원회 편,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91/ 약현 성당 100주년사 편찬위원회 편, 《약현 본당 100년사》, 천주교 중림동 교회, 1992. 〔金成喜〕
신인식 申仁植(1894~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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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신인식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