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본당

新亭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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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양천구 신정4동 975-1 소재. 1976년 12월 9일 목동(木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예로니모. 관할 구역은 신정1 · 4 · 5동과 서울 가든 아파트 전 지역. 〔교 세〕1976년 806명, 1981년 2,201명, 1987년 5,815명, 1992년 7,503명, 1999년 7,139명. 〔역대 신부〕 초대 린센(G. Linsen, 진) 제라르도(1976. 12~1981.2), 2대 올리어리(A. O' Leary, 오) 안드레아(1981. 2~1984. 5), 3대 멀둔(P. Muldoon, 조) 파트리치오(1984. 5~1987. 8), 4대 오브라이언(A.O' Brien, 신오복) 안토니오(1987. 8~1988. 4), 5대 아이카롤란(C. Icarolan, 차) 가롤로(1988. 4~1990. 8) , 6대 조학문(曹學文) 바오로(1990. 9~1992. 9), 7대 이재돈(李在敦) 세례자 요한(1992. ~1994.9), 8대 김준철(金俊哲) 토마스 아퀴나스(1994. 9~1995. 9), 9대 김태선(金泰善) 빈천시오(1995. 9~1997. 2), 10대 조승균(趙昇均) 바오로(1997. 2~2000. 9), 11대 한성호(韓成皓) 알베르토(2000. 9~현재).
〔공소 시기〕 1960년대 초 서울시의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서울 시내의 판자촌 철거민들이 양천 지역(현 양천구)에 집단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주민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신자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목동과 신정동에 거주하던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거리가 멀어도 당산동(堂山洞) 본당으로 가야 했다. 이에 당산동 본당 주임 박병윤(朴炳閏, 토마스) 신부는 이 지역 신자수가 30세대 130명에 이르자 1964년 12월 신정2동 김영찬(요셉)의 집에 '신정동 공소' 를설립하였다. 그러나 5대 주임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 신부는 신자가 늘어나면서 공소가 협소하여 공소 예절을 더 이상 거행할 수 없게 되자 1967년 9월 15일 공소를 폐지하고, 당산동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972년 6월 목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지역은 이곳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목동 본당 주임 콘웨이(P.Conway, 구순혁) 신부는 조석중(가리노)의 집에서 신정동 공소를 재발족시켰다. 그리고 3년 뒤인 1975년 초에 공소를 신정 1단지의 유치원으로, 같은 해 10월에는 신정 2단지 제일시장 입구의 지하실로 각각이전하였다. 한편 신월동 지역의 신자수도 점차 증가하자 화곡동(禾谷洞, 현 화곡본동) 본당 주임 김정진(金正鎭, 바오로) 신부는 1975년 10월 신월2동 214-97번지의 개인 집에 '신월동 공소' 를 설립하였다. 1976년 12월 9일 교구 결정에 따라 신정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린센 신부는, 신설 본당과 관할 구역 내의 신월동 공소 간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판단하고, 같은 달 말 신월동 공소를 신정동 본당에 통합하였다.
〔성당 신축과 발전〕 린센 신부는 공소로 쓰던 제일시장 지하실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골롬반 외방선 교회 한국 지부의 지원을 받아 현 성당 부지 318평을 마련한 뒤 1977년 3월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그 해 10월 단층 성당(130평)과 사제관(24평)을 완공하였다. 린센 신부는 성당 건립을 해나가면서도 사목회 · 연령회 · 청년회 등을 결성하여 이 단체들을 중심으로 영화 상영 · 피정 등을 통한 신자 재교육과 성지 순례 · 성령 세미나 등을 통한 신심 활동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점차 성당이 협소하여 신자들이 신앙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린센 신부는 '성당 증축위원회' 를 구성하고 1980년 3월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9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과 수녀원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1979년부터 주말마다 방문하여 본당 사목을 돕던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가 분원을 마련하게 되었다. 본당 관할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에 주력한 2대 주임 올리어리 신부는 1981년에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를 구성하여 관내 무료 진료 · 장학금 지급 · 재활원
방문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할 지역의 인구가 급증할 것을 고려하여 1983년 7월 현 신월동 성당 부지 400평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3대 주임 멀둔 신부는 이듬해 8월 신월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498세대 1,587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5대 주임 아이카롤란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위한 교육관의 용도로 신정4동 975-2번지의 건물(48평)을 매입하였다.
1990년 9월 본당 사목이 교구로 이관되면서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조학문 신부는 사제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성당 인근의 건물(50평)을 매입하였으며, 7대 주임 이재돈 신부는 본당 내 환경 운동을 전담할 '하늘 · 땅 · 물 ·벗' 을 구성한 뒤 다양한 환경 사목을 전개하였는데, 신자들이 점차 재활용 비누를 사용하고 우리 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사목이 정착되어 가면서 교세가 꾸준히 증가하자 10대 주임 조승균 신부는1999년 3월 기존 사제관과 수녀원을 철거한 뒤 성당증 · 개축 공사를 시작하여 2000년 1월 증축 성당(447평)을 완공했다. 한편 1999년 12월에는 신정4동 975-28번지의 주택(50평)을 매입하여 사제관으로 개축하였고, 이듬해 9월에는 고척동(高尺洞) 본당 · 목동 본당과 함께 양천(陽川) 본당을 분리하면서 783세대 2,10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성당 증축 공사와 본당 분할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신정동 본당은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한성호 신부와 함께 본당 단체들의 정비를 통하여 내실화에 노력하고있다. (→ 서울대교구 ; 목동 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신월동 본당 10년사》, 천주교 신월동 교회, 1995.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