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본당

新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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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신창리 705 소재. 1952년 6월 29일 제주 중앙(濟州中央) 본당 관할의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한경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용수, 조수 등 2개소.〔교 세〕 1952년 350명, 1956년 700명, 1959년 1,329명, 1964년 2,226명, 1971년 2,000명, 1977년 2,235명, 1982년 2,326명, 1987년 2,317명, 1990년 1,477명, 1999년 1,214 명. 〔역대 신부〕 초대 조응환(曹應煥) 타데오(1952. 6~1953.5), 2대 김병준(金丙準) 요한(1953.5~11), 3대 이젤(H. Eisel, 梁) 해롤드(1957. 4~1962. 10), 4대 오루케(C.O'Rourke, 吳) 가롤로(1962. 10~1964. 2) , 5대 로세(J. Roche,廉) 요한(1964. 2~1967. 3), 6대 도허티(J. Doherty, 洪) 요한(1967. 10~1969. 10), 7대 김병준(1969. 10~1971.9), 8대퀸(J. Quinn, 高) 요한(1971. 9~1974. 4), 9대 오고르만(D.O' Gorman, 殷) 다니엘(1974. 4~1977.4) 10대 이대원(李大元) 미카엘(1977. 4~1983. 2), 11대 임문철(林文喆) 시몬(1983. 2~1985. 2), 12대 현상보(玄相保) 그레고리오(1985. 2~1988. 9), 13대 러셀(J. Russell, 설) 요한(1988. 9~1996. 11), 14대 현경훈(玄景勳) 미카엘(1996. 11~1999.2 ,15대 송동림(宋東林) 레오(1999. 2~현재).
신창 공소는 1935년 신창초등학교에 부임해 온 교사 안병호(베네딕도)가 18평 규모의 가옥(현 신창 우체국 자리)을 빌려 선교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그 후 활발한 선교 활동으로 1947년에 신자수가 100여 명에 이르자, 공소 회장 홍순익은 그 해 말 현 성당 부지 1,300평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즉시 본당으로 승격되지 못하였고, 1949년 11월에는 인근에 용수(龍水) 공소가 설립되었다. 한편 한국 전쟁 때인 1951년 4월부터 춘천교구 소속 조응환 신부가 신창 지역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면서 신창 공소는 '신창 준본당' 으로 승격되었다. 조응환 신부가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운 뒤 1952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6월 29일 4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가짐으로써 신창 준본당은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초대 주임으로 조응환 신부가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5월 춘천교구로 복귀함에 따라 제주 중앙 본당 보좌 김병준 신부가 신창 본당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김병준 신부가 군종 신부로 입대하게 되어 중앙 본당 보좌 쿠퍼(C.Cooper, 가롤로) 신부가 신창 본당의 임시 주임을 겸하다가 1954년 4월 1일 한림(翰林) 본당이 설립되면서 신창 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었다. 공소가 된 후에도 신자들은 활발한 신앙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55년 10월 새 공소 강당(25평)을, 그리고 이듬해 1월에는 사제관(18평)을 완공하였다.
1957년 4월 신창 공소가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어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젤 신부는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자 이듬해 6월 성당(120평)을 개축하였고, 같은 해 7월에는 신자로부터 현 성당 묘지의 부지 4,900평을 기증받았으며, 8월에는 성당 인근의 부지 780평을 매입하였다. 한편 1957년 10월 20일에는 판포(板浦) 공소가 설립된데 이어 이듬해 1월에는 조수(造水) 공소가 설립되었다.
4대 주임 오루케 신부는 1963년 10월 25일 '한경 평화 협동 조합' 을 설립하였고, 5대 주임 로세 신부는 1965년 5월 강당(48.5평)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1967년 3월 로세 신부가 신병 치료차 귀국함에 따라 그 해 4월 호간(J. Hogan) 신부가 보좌로 부임하였다가 8월에 전임되었고, 이어 제주 중앙 본당 보좌로 있던 로반(M. Roban) 신부와 서귀포 본당 보좌로 있던 라이언(T.Ryan, 나) 신부가 임시로 본당의 사목을 맡아 주었다. 계속되는 신부의 교체로 혼란을 겪던 신창 본당은 6대 주임으로 도허티 신부가 부임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8대 주임 퀸 신부는 1972년 3월 20일 사제관(20평)을 증축한 데 이어 이듬해 5월 20일 전교 회장의 사택(13평)을 신축하였으며, 10대 주임 이대원 신부 때인 1978년 12월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여 '인보 성체 수도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12대 주임 현상보 신부는 1985년 9월 '신창 성 이시돌 유치원' 을 개원하였고, 이듬해 4월에는 2층 사제관(55평)과 용수 공소 강당(15평), 1987년 4월에는 청수 공소에 교리실(30평)을 신축하였다.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러셀 신부는 성당이 오래되어 신자들이 불편을 느끼자, 1988년 3월에 구성된 '성당 건립 추진 위원회' 를 중심으로 1992년 10월부터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6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33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신창 본당 관할의 용수 공소 지역에는 1845년 8월 17일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금가항(金家巷)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페레올(J.Ferréol, 高) 주교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와 함께 라파엘(Raphael)호를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그 해 9월 28일 국내에 최초로 표착하였던 용수리 포구가 있다. 이에 본당에서는 현재 이곳을 성역화하기 위한 작업을 교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 제주교구 ; 제주 중앙 본당) 〔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