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신천3동 850-3 소재. 1970년 1월 1일 삼덕동(三德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본래 이름은 '복자 본당' 이었으나, 1988년 3월 신천동 본당으로 바뀌었다가 1999년 4월 8일 다시 복자 본당으로 환원하였다. 관할 구역은 신천1 · 3동 전 지역과 신천2 · 4동, 수성구 범어3동, 수성 4가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1,599명, 1980년 3,565명, 1990년 5,450명,1999년 5,264명. 〔역대 신부〕 초대 서정길(徐正吉) 요한(1970. 1~10), 2대 전달출(全達出) 토마스 아퀴나스(1970. 10~1972. 10), 3대 이창호(李昌鎬) 안드레아(1972.10~1977.7), 4대 이대길(李大吉) 시메온(1977. 7~1982. 5) ,5대 이성우(李聖雨) 아킬로(1982. 5~1987. 1), 6대 정순재(鄭淳在) 베드로(1987. 1~1990. 6) , 7대 윤광제(尹光濟)다윗(1990. 6~1993. 10), 8대 장태식(蔣泰植) 리노(1993.10~1998. 8), 9대 최시동(崔時東) 요한(1998. 8~현재).
교구에서는 1964년 11월 9일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신천동에 순교 기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교구민 전체를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 기금으로 1966년 10월 17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3년여 만인 1969년 12월 22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이듬해 1월 1일 복자 본당을 설립하였다.
1967년 12월 12일 사제 서품을 받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서정길 신부는 부임하던 해인 1970년 7월에 복자 김대건상을 건립한 데 이어 8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3대 주임 이창호 신부는 순교자 기념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하여 1973년 10월에 언양(彥陽)의 대재〔竹嶺〕 교우촌에 모여 살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許仁伯, 야고보) · 김종륜(金宗倫, 루가) ·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등 3위 순교자 유해를 감천리 교구 묘지에서 성당으로 이장하였다. 4대 주임 이대길 신부 때인 1979년 2월에 사제관을 준공하고 1981년 9월에는 교리 교육 및 회합실로 사용할 복자 회관을 건립하였으며, 5대 주임 이성우 신부는 1983년 7월 성당 내에 만남의 방을 마련하고 이듬해 10월 수녀원을 완공한 데 이어 1985년 8월에는 성모 동굴을 조성,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복자 회관을 증축하였다. 7대 주임 윤광제 신부 때인 1991년 6월 2일에는 교구 최초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실이 마련되었고, 8대 주임 장태식 신부는 1994년 8월에 사제관과 수녀원 건물을 증축하였다. 한편 신천동 본당은 해마다 전 신자들의 화합과 나눔을 위한 한마당 잔치를 개최하고 있으며, 무의촌 무료 진료 봉사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또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음악회와 연극 등을 개최하여 젊은이들을 교회로 이끌고있다. 그리고 2000년 5월에 성모상을 새로 단장한 본당에서는 9대 주임 최시동 신부를 중심으로 대구대교구 시복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3위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해 꾸준히 기도를 바치고 있다. (⇦ 복자 본당 ; → 대구대교구 ; 삼덕동 본당)
※ 참고문헌 천주교 부산교구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마백락, 《경상도 교회의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 <심지 곧은 자리>, 《빛》 177호(1998. 1), 천주교 대구대 교구, pp.58~61/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건립 신천동 본당>, 《가톨릭 다이제스트》 50호(1994. 5), 가톨릭 다이제스트사, pp. 49~52. 〔金成喜〕
②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11-2소재. 1981년 5월 8일 잠실(蠶室)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송파구 잠실4 · 6동 전 지역과 방이2동 · 송파동 일부 지역. 〔교 세〕 1981년 2,404명, 1986년 7,267명, 1991년 8,663명, 1995년 8,694명, 1999년 8,380명. 〔역대신부〕 초대 김자문(金子文) 네레오(1981. 5~1986. 8), 2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도(1986. 8~1991. 8), 3대 전창문(田昌文) 가브리엘(1991. 8~1996. 9), 4대 이해욱(李海旭) 프란치스코(1996. 9~1997. 9), 5대 한만옥(韓晚鈺) 토마스(1997. 9~현재).
1971년 2월 잠실 지구 개발 사업에 착수한 서울시에서 토지 구획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잠실 일대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아파트 입주와 더불어 신자수도 급증하자 당시 잠실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잠실 본당에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교구에서는 1981년 5월 8일 잠실 본당에서 동 잠실(東蠶室) 본당을 분리하고 초대 주임으로 김자문 신부를 임명하였다.
김자문 신부는 우선 송파구 잠실6동의 장미 상가 5층(155평)을 임대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고, 같은 해 11월 11일 행정 구역명 변경에 따라 본당 이름을 신천동 본당으로 바꾸었으며, 12월 12일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그 후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1982년 4월 29일 현 성당 부지 691평을 매입하였고, 같은 해 8월 3일에는 마천동(馬川洞) 본당 관할의 오금동(梧琴洞) 공소 신자 93세대 315명의 교적을 이관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9월 11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2년여 만인 1985년 10월 9일 연건평 95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2대 주임 최익철 신부 때인 1989년 10월 13일에는 오금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성당 방음 공사를 실시하였다. 3대 주임 전창문 신부는 매년 부활 · 추석 · 성탄절에 이웃 돕기 행사를 대대적으로 실천하였고, 가정 방문 · 구역 미사 · 구역별 성가경연 대회를 통하여 신자들의 친교와 유대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93년 10월 성당 보수 공사에 이어 이듬해 9월에는 사제관 및 회합실을 개수하였다. 4대 주임 이해욱 신부는 1997년 4월 28일 대건 노인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한만옥 신부는 1999년 6월 18일부터 성당 내부 공사를 하였고, 7월 4일에는 김대건 성인상 제막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듬해 5월 18일에는 성당 외벽 공사를 하였다. 현재 신천동 본당에서는 가정 성화 및 통일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북한 동포 돕기를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잠실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신천 본당 10년사 편찬위원회 편,《믿음과 사랑의 발자취》, 천주교 신천동 교회, 1991. 〔편찬실〕
신천동 본당
新川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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