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산 25-4소재. 1979년 2월 4일 심곡(深谷, 현 심곡2동) 본당 관할 신천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 설립 당시 '신천리 본당' 이었으나 1981년에 '소래(蘇萊) 본당' , 그리고 1988년 6월 12일 다시 '신천 본당' 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관할 구역은 안현동 전 지역과 신천동, 대야동, 미산동, 은행동, 계수동 일부지역. 〔교 세〕 1979년 1,169명, 1984년 2,133명, 1989년 3,802명, 1994년 2,350명, 1999년 4,921명. 〔역대신부〕 초대 데일리(J. Daly, 정일우) 요한(1979. 2~1981.10), 2대 주임 서리 매킨토시(R. Mclntosh, 閔杞植) 로베르토(1981. 10~1982. 1), 3대 뢰트게링(J. Röttgering, 오명환) 요셉(1982. 1~1987. 2), 4대 현명수(玄明洙) 바오로(1987. 2~1988. 1), 5대 홍창만(洪昌晩) 루가(1988. 1~1991.1), 6대 이용길(李龍吉) 세례자 요한(1991. 1~1994. 2), 7대 한세만(韓世晩) 시몬(1994. 2~1995. 7), 8대 신배곤(申培坤) 바오로(1995. 7~1996. 1), 9대 김인환(金仁煥) 베드로(1996. 1~2000. 7), 10대 김재영(金載永) 요셉(2000. 7~현재).
〔전사와 공소 시기〕 현 신천 본당 관할 지역의 신앙 전통은 박해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즉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함박리(현 부천시 옥길동)로 피신한 심락천 · 심원경 · 심봉학 · 박도섭 · 박사앙 등과 이들로부터 교리를 배운 이웃 마을 대골(현 시흥시 대야동)의 윤용배 가족들은 이곳에서 어렵게 신앙 생활을 이어 가다가 대부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하였다. 한편 병인박해 때 충청도 서산에서 대골로 피신하여 정착한 정춘화는 소래지역에 '대골 공소' 를 설립하고 선교에 주력하였다. 약현(藥峴) 본당 소속이었던 이 공소는 1889년에 제물포(濟物浦, 현 답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본당 소속이 되었고, 신자수가 늘어나자 1908년 새말(현 신천) 공소를 신설한 데 이어 1938년에는 소사(素沙) 공소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소사 공소는 1946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6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인천교구가 분리되면서 대골 공소는 인천교구 소속이 되었다.
1971년 초 소사 본당 5대 주임 슈미트(P. Schmit, 심재성) 신부는 소래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 위하여 부지2,700평을 마련하였으나, 성당 건축이 마땅하지 않자 다시 현 성당 부지 1,500평을 매입하였다. 그러나 성당건립을 위해 노력하던 슈미트 신부가 본국으로 출국하면서 본당 설립 문제는 교구로 위임되고 말았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신천리 일부 지역에 서울 양평동 지역 철거민들의 정착촌이 형성되고 신자수 역시 급격히 늘어나자, 인천교구에서는 신자수가 감소하던 대골 공소를 폐지하는 대신 신천리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1979년 2월에 신천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주임으로 데일리 신부를 임명하였다.
〔본당 설립과 발전〕 초대 주임 데일리 신부는 신천리 공소 강당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성당 건축에 들어가 '건축위원회' 를 구성하고 1980년 5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당은 3대 주임 뢰트게링 신부 때인 1983년 3월에 2층 규모(213평)로 완공되었다. 또 이듬해 7월에는 교육관 신축 계획을 수립하고 바자회와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현명수 신부는 성령 세미나와 성지 순례 등을 통하여 신자들의 내적 신앙 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1987년 10월 교육관 건축에 착수하였고, 그 해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5대 주임 홍창만 신부는 1989년 2월 교육관(393평)을 완공하였고, 6대 주임 이용길 신부는 본당의 내실화를 위하여 예비자 교리반을 활성화하고 주일학교를 재정비하였다. 이에 신자수가 증가하자 신천 본당에서는 1992년에 대야동(大也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696세대 2,009명의 교적을 이관한 데 이어 1995년에는 포동(浦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188세대 474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이후에도 주변 지역 개발로 신자수가 급증하자 1999년 2월에 다시 도창동(道倉洞) 본당을 분리하고 285세대 791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 인천교구 ; 소사 본당 ; 심곡 본당)
※ 참고문헌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인천교구 25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ㅡ,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金善美〕
신천 본당
新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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