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탄진 본당

新灘津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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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대덕구 석봉동 187-3 소재. 1971년 7월 22일 대흥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착한 목자. 관할 구역은 대전시 대덕구 신탄진동, 목상동, 평촌동, 덕암동, 상서동, 문평동, 미호동, 신일동, 관평동과 충북 청원군 현도면 전 지역. 〔교 세〕 1971년 503명, 1975년 1,845명, 1982년 1,034명, 1987년 1,928명, 1992년 1,753명, 1999년 1,730명. 〔역대 신부〕 초대 이종린(李鍾麟) 요아킴(1971.7~1974. 11), 2대 유영소(劉永昭) 블라시오(1974. 11~1977.10), 3대 조장윤(趙璋允) 베르나르도(1977. 10~1982. 9),4대 유호식(俞浩植) 아우구스티노(1982. 9~1987. 8), 5대 김영곤(金永坤) 필립보(1987. 8~1992. 8), 6대 손만재(孫萬宰) 세례자 요한(1992. 8~1998. 2) , 7대 윤여옥(尹汝沃) 안토니오(1998. 2~현재).
신탄진 본당은 1923년 대전(현 대흥동) 본당 주임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 때 설립된 신탄진 공소로부터 시작되는데, 1940년 당시에는 신자수가 72명에 이르렀고 1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공소 강당도 있었다. 그러나 신탄진 공소 신자들은 대흥동 본당 주임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의 도움으로 1962년에 현 성당 부지를 매입하는 등 본당 승격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한편 1971년 대덕군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되면서 이 지역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그 해 7월 22일 신탄진 공소도 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주임으로 이종린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종린 신부는 그 해에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3대 주임 조장윤 신부는 1979년에 2층 건물을 완공하여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을 마련하고 '성심 어린이 집' 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4대 주임 유호식 신부는 1983년에 신용 협동 조합을 결성하여 수익금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민 대부분이 외지에서 들어온 맞벌이 젊은 세대들인 점을 고려하여 구역 단위 조직을 정비하고 매주 구역별 미사를 봉헌하는 등 공동체적 유대를 돈독히 함으로써 신자들의 정신적 안정을 도왔다. 한편 1986년 2월 24일 대화동(大禾洞) 본당이 설립되자 회덕 · 와동 · 장동 일대의 신자를 이관하였으며, 이듬해 3월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어 5대 주임 김영곤 신부는 1988년 1월, 1층에 사제관을 완공하였고, 3월에 지하실이 완공되자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90년 12월 9일 성당을 완공한 뒤 1992년 3월 7일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6대 주임 손만재 신부는 성당 방수 공사 등 성당 안팎을 정비한 데 이어 구즉 공소에 새 강당을 지어 주었고, 7대 주임 윤여옥 신부 때에는 장애인 신자들을 위해 휠체어 계단 공사를 하였으며, 1999년 2월에는 유아실, 3월에는 지하 식당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999년 1월 26일 봉산동(鳳山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305세대 873명을 이관하였다. (→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대전교구 30년》, 1988/ 《목동 본당 8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목동 교회, 199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