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인 본당

新泰仁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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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정읍시 신태인읍 평화동 546 소재. 1929년 5월 25일 신성리(현 시기동) 본당 관할 능다리 공소에서 능다리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35년 5월 태인(泰仁) 본당으로, 그리고 1954년에는 신태인(新泰仁) 본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정읍시 신태인읍, 감곡면 화봉리, 산내면, 산외면, 정우면 수금리, 이평면 팔선리, 칠보면, 태인면, 용동면이고, 관할 공소는 동막, 종산, 옥단, 태인, 신기, 진흥, 능교, 화봉 등 8개소. 〔교 세〕 1980년1,783명, 1985년 1,506명, 1990년 1,634명, 1995년 1,498명, 1999년 1,415명. 〔역대 신부〕 초대 김창현(金昌鉉) 바오로(1929. 5~1933. 5) , 2대 허일록(許日錄) 타데오(1933. 5~1938. 6) , 3대 김기봉(金基奉) 필립보(1938. 6~1939. 4) , 4대 김동욱(金東旭) 마티아(1939.4~1942.5), 5대 송남호(宋南浩) 요셉(1942. 5~1947. 11), 6대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1947. 11~1954. 5), 7대이대권(李大權) 바오로(1954. 5~1960. 7) 8대 서정수(徐廷壽) 알렉시오(1960. 7~1967. 6), 임시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1967. 6~10), 9대 이상호(李尙浩) 아우구스티노(1967. 10~12), 10대 안복진(安福鎮) 요셉(1967. 12~1969.12), 11대 김병엽(金炳燁) 베드로(1969. 12~1973. 6) 12대 안용기(安龍起) 가브리엘(1973. 6~1974. 2), 13대 이상호 아우구스티노(1974. 2~1976. 12), 14대 이종원(李種源) 토마스(1976. 12~1979. 8), 15대 김병운(金炳韻) 베네딕도(1979. 8~1981. 4), 16대 성민호(成珉浩) 야고보(1981. 4~1985. 1), 17대 범영배(范永培) 라파엘(1985. 1~1988. 1 ) ,18대 최상범(崔相範) 요셉(1988. 1~1989. 1), 19대 유장훈(劉章勳) 요셉(1989. 1~1990. 5), 20대 나궁열(羅宮烈) 요셉(1990. 5~1995. 8), 21대 김희남(金喜南) 베드로(1995. 8~1998. 1), 22대 전종복(全鍾福) 사도 요한(1998.1~현재).
〔공소와 본당 설립〕 1899년 교세 통계에 신태인 본당의 전신인 능다리 공소의 신자수가 30명으로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설립되었던 것 같다. 1905년 11월 25일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가 이곳을 방문하여 37명에게 견진성사를 주었고, 1924년 10월 28일에는 공소 강당을 완공한 뒤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지속적인 교세 확장으로 1929년 5월 25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 김창현 신부는 부임 직후 20여 평의 목조 성당과 초가 5칸의 사무실을 짓고 활발한 사목을 전개하였다. 당시 신자수는 700여 명이었으며, 관할 구역은 정읍군 새보안, 매대, 북당골, 원바실, 동막골, 청당리 순창군 골개미, 오룡촌, 백필리, 내동, 아천리였다. 그러나 신자수가 점점 줄어들자 2대 주임 허일록 신부는 1935년 5월 1일 정읍군 태인면 태창리로 성당을 이전한 뒤 31평의 성당과 사제관을 건축하고 이름을 '태인 본당'으로 바꾸었다. 4대 주임 김동욱 신부 때에는 사제관이 증축되었고, 6대 주임 김영일 신부는 성당 확장 공사를 준비하였으나 한국 전쟁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본당 이전과 발전〕 1954년 태인에서 신태인읍의 현 소재지로 성당을 옮긴 7대 주임 이대권 신부는, 이듬해 11월 55평의 임시 성당과 36평의 사제관을 완공한 데 이어 1957년부터 성당과 부속 건물 공사에 착수하여 1959년에 120평 규모의 성당과 부속 건물을 완공하였으며, 4개 공소의 강당도 신축하였다. 또 모든 공소에 교회 서적을 비치하여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하는 한편, 공소마다 야학을 설치하여 문맹 퇴치에 힘을 기울였다. 이어 부임한 8대 주임 서정수 신부는 전기 가설 · 성당 보수 · 담장 축조 · 식당 신축 등의 공사를 통해 성당 안팎을 정비하였고, 10대 주임 안복진 신부 때인 1969년 3월에는 교회가 바라는 학생' 이라는 주제로 청소년들을 위한 교양 강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11대 주임 김병엽 신부 때인 1971년 4월 순창(淳昌) 본당에서 쌍치면 일대의 공소를 이관받았다가 12대 주임 안용기 신부 때 상신리(덧골) 공소와 구장리 공소를 수류(水流)본당으로 이관하면서 쌍치면의 오룡촌 · 종암리 · 내동 삽실 공소를 순창 본당에 다시 이관하였다.
1981년 16대 주임으로 성민호 신부가 부임하여 대건회와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고 성당 내부 보수 공사를 단행하였으며, 11월에는 6개의 쁘레시디움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 꾸리아를 창설하였다. 17대 주임 범영배 신부는 1986년 5월 동막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고, 본당 월보인 <서지말>을 창간한 20대 주임 나궁열 신부는 동막 공소 신자들과 함께 유기 농법을 시험적으로 실시해 많은 호응을 얻었고, 1992년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여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으며, 성당을 개축하였다. 또 21대 주임 김희남 신부는 1994년에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이듬해 12월에는 사제관 개축과 더불어 야외 화장실 신축 · 정문 공사 등 성당 환경 정비 작업을 하였다. 22대주임 전종복 신부는 성당 방수 처리 및 도색 작업과 조경사업 등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등 본당 분위기 쇄신에 노력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뮈텔 주교 일기》 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3/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호남교회사연구소 엮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8/ 金九鼎 · 金榮九, 《天主教湖南發展史》, 天主教全州教區, 1964/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吳美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