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구미시 신평1동 54 소재 1979년 2월 21일 원평(元坪)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신평1 · 2동, 공단1 · 2동, 비산동, 임은동, 상모동, 광평동, 사곡동, 오태동 전 지역과 원평동 일부 지역. 〔교 세〕 1979년 413명, 1984년 1,390명, 1988년 2,934명, 1992년 3,190명,1999년 3,699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근(金永根) 베다(1979. 2~1981. 2), 2대 고건상(高建相) 멜키올1981.2~1984. 2), 3대 이석진(李錫震) 그레고리오(1984. 2~1987.1), 4대 맹봉술(孟奉述) 요한(1987. 1~1990. 7), 5대 조성택(趙成澤) 사도 요한(1990. 7~1993. 10), 6대 김영기(金永基) 대건 안드레아(1993. 10~1995. 7), 7대 전재천(全在千) 암브로시오(1995. 7~현재).
1971년부터 전자 공업 단지로 조성된 구미 지역은 1978년 시로 승격되면서 신흥 산업 도시로 급성장하였고, 이에 따라 전국 각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평동 ·비산동 · 공단동 등지의 기숙사에 거주하며 생활하였다. 이에 이 지역을 담당하던 왜관 감목 대리구에서는 공단 지역의 사목을 위하여 구미에 본당 설립 계획을 세우고, 1978년 10월 현 성당 부지를 마련한 뒤 이듬해 2월 21일 원평 본당에서 신평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네딕도회의 김영근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사제관과 수녀원 및 임시 성당 겸 강당으로 쓸 근로자 회관을 시공하여 같은 해 6월 사제관, 8월에 수녀원, 9월에는 근로자 회관을 완공하였다. 이어 김영근 신부는 성당 건립과 함께 숨은 신자 찾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원평 본당에서 이관받은 임은 공소에서 주일마다 공소 미사를 봉헌하는 등 공소 활성화에도 노력하였고, 대건회 · 성모회 · 청년회 ·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설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 고건상 신부는 새 성당 건립에 노력을 기울여 베네딕도회의 지원과 신자들의 정성으로 새 성당을 완공한 뒤 1983년 5월 1일 이동호(李東鎬, 플라치도) 아빠스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신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981년 3월 14일 성심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가정 사목에 관심을 쏟아 가정 미사 봉헌 · 부부 주말 피정 등을 실시하였다. 3대 주임 이석진 신부는 교세 신장에 힘써 재임 3년 동안 교세가 무려 두 배나 증가하였고, 1979년에 창간하여 64호까지 발간되다가 중단된 주보(週報) <신평 회보>를 재창간하였으며, 본당 구역을 증설하여 모든 행사에 신자들이 구역 단위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구역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이어 4대 주임으로 부임한 대구대교구 소속의 맹봉술 신부는 공동체의 내실을 다지기 위하여 해마다 가정 방문을 실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전 신자 면담을 통하여 신자들을 철저히 지도하였고, 성서 읽기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인성회를 조직하여 장학금 지급 · 양로원 방문 등 불우 이웃 돕기를 실천하였다. 5대 주임 조성택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한 신심 단체에 참여하기를 권장하여 단체들이 활성화되고 체계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6대 주임 김영기 신부는 활성화된 단체들의 활동으로 회합실이 크게 부족하자 교육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부지를 마련하는 한편, 임시로 조립식 회합실을 건립하였다. 또한 <신평 회보>를 <빛과 소금>으로 개칭하고 신자들간의 나눔의 장이 되도록 내용을 확대 · 개편하였다. 그리고 1995년 7월 7대 주임으로 전재천 신부가 부임하여 교육관 건립위원회를 발족시켜 2000년 11월 현재 교육관 건립이 진행 중이며, 사회 복지 활동과 소공동체의 정착을 사목 방침으로 정하여 신앙 생활의 내실화에 힘쓰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원평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새들 20년 -신평 본당 20년사》, 천주교신평 교회, 1999. 〔편찬실〕
신평동 본당
新平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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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