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神學 〔라〕theologia 〔영〕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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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하느님에 관한 사변적 인식을 논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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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하느님에 관한 사변적 인식을 논하는 학문이다.


하느님을 주제로 한 인간의 말 혹은 하느님에 관한 사변적 인식을 논하는 학문. 가톨릭 전통에서 '테올로지아' (theologia)는 좁은 의미에서는 "신론" (De Deo)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로는 계시 진리에 대한 논리적 · 체계적 탐구 전반을 가리키는 "신학"을 뜻한다.
〔용어의 정착〕 신학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신'(神)이라는 의미의 '테오스' (θεός)와 본 (論)이라는 의미의 '로고스''로 (λόγος)가 합성된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에게 있어서는 신을 찬양하는 시(詩)를 의미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에게는 절대 존재로써 다른 존재들을 설명하는 철학을 의미하였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신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주의 정점으로서의 신 개념밖에 없었으므로, 신을 논한다는 것은 곧 우주를 논하는 우주론이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그리스 사상과의 혼동을 우려하여 하느님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신학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철학' 이라고 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오리제네스(Origenes Alexandriae, ?~254)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인식을 신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우세비오(Eusebius, 5세기)를 거쳐, 그 후 삼위 일체인 하느님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사변적 인식을 신론 또는 신학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 · 은총 · 성사에 관한 논의는 '경륜' (οίκονμενία, oeco-nomia)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서방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신학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기피해 왔으므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 후 아벨라르도(Petus Abelar-dus, 1079~1142)가 처음으로 학술 용어로서 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3세기에 대학에 신학 강좌가 마련되면서 이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근 거〕 신학은 하느님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만일 하느님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한 일이 없다면, 종교 현상에 대한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적인 분석은 시도될 수 있어도 신학은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느님은 세상의 창조를 통하여 특히 이성을 가진 인간의 창조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드러냈다. 이를 '자연적 계시' 라고 한다. 즉 세상 만물에 담겨 있는 창조주의 뜻을 이성을 가진 인간이 해득함으로써 자연적 계시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에 관해서 알 만한 것이 그들 가운데에 환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환히 드러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 그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이성(의 눈)에는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로마 1, 19-20).
하느님의 뜻은 피조물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인간 역사 안에 말씀을 통해서 인간화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사고 · 언어 · 상징 · 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계시된 것이다. 이것을 '초자연적 계시' 라고 한다. 이 초자연적 계시의 결정판은 하느님의 지혜요 말씀인 성자의 인간화인 예수이다. 예수의 설교와 생애와 업적은 바로 가장 큰 계시이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 1-2). 하느님 뜻의 인간화 제2 단계는 이러한 계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계시를 수용하면서도 이 계시를 이해하여 응분의 대답을 찾는 노력이며, 인간을 구원으로 부르는 은총에 인간이 인격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 이성이 결합된 행위이고,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의 신앙으로 수용하는 데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인 상호 관계가 성립된다. 신앙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이 계시한 인간의 길을 알고 실천하기 시작하므로 신앙은 인간의 구원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맡긴다. 하지만 이성을 타고난 인간은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더 충만하게 알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으면서도 계시에 대한 지성적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지성적 계시 탐구의 노력을'신학한다' 고 말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는 하느님의 계시에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계시를 수용하는 신앙의 조명을 받은 지성에 있다.
〔학문적인 성립〕 고대 유대교 즉 구약 시대에는 신학적 탐구의 흔적이 없지만, 그리스도교는 그 시작부터 신학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유대교의 반대와 박해를 받았고, 헬레니즘 사상의 도전을 받았으며, 로마 제국의 의혹과 박해를 받으면서 만인을 위한 보편적 종교로 자처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신자들에게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해 주어야 하였고, 반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그리스도교의 정당성과 진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설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해야만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선교적 · 호교적 탐구가 축적되어 2세기에는 호교론(護敎論, apologetica)이 주로 성행하였다. 3세기에 들어서는 호교론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체계적 논술이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 오리제네스, 테르툴리아노(Tetullianus, 160~223)에 의하여 학문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종교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4세기부터는 교회 안팎에서 교리 표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사목자들과 학자들이 4~5세기에 배출되었다. 소위 교부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학의 여러 분야가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 후 시대에 따라 여러 기복을 거치기도 하였지만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학문으로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이와 같이 신학이 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학이 신앙과 이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성이나 신앙의 진리 근거는 진리 자체인 하느님의 지혜이므로, 한 가지 진리가 다른 진리와 모순될 수 없으며 건전한 이성과 건전한 신앙은 서로 대립될 수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인식은 반드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모든 학문은 어떤 사물의 결과 또는 현상을 그것의 원인 내지 원리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원리에서 현상까지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명백해져야 성립된다. 이렇게 각 학문의 기초 원리는 자명(自明)하든지 아니면 그 원리를 상위(上位)의 학문에서 얻어 와야 하는 데 반해 신학의 원리는 자명한 명제가 아니고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 진리이므로 신앙에 종속된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계시된 사물에 대한 인간 이성만의 철학적 사변이 아니고, 신앙의 빛을 받은 또는 신앙과 결합된 이성으로 계시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신학은 사유의 도구로서 철학을 이용하지만, 이성만으로 종교 현상을 해석하는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해석한 것이 교회의 교리이고, 교리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진술하는 것이 신학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교리가 계속되는 한, 신학도 계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용〕 신학이 추구하는 대상은 계시된 모든 사물이지만, 그 많은 사물 중에서 신학이 찾는 진정한 대상은 신학의 주체인 하느님이다. 그리고 계시된 다른 사물들은 하느님과의 관련하에서만 신학의 대상이 된다. 물론 철학에서도 신을 논하지만 최고의 존재로서 신의 본체나 속성을 이성으로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을 추구한다. 쉽게 말해서 철학은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신학은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 문화와 접촉하면서 교부들이 가장 경계한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헬레니즘적 철학화였다. 예컨대 교부들은 신학을 전개하면서 로고스(λόγος)와 그노시스(γνῶσις) 등 그리스 철학의 개념을 원용하였지만, 요한 복음서에서 말하는 로고스(말씀, 이성)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지 그리스의 우주론적 로고스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이레네오(Irenaeus, 130~200)가 말한 그노시스(인식, 지식)는 교리 지식이라는 의미이지 밀교(密敎)의 신비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학에서 탐구하는 신의 본질이나 속성도 신학에서 논해지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세사(救世史)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신학의 내용으로 삼는다. 즉 천지를 창조한 전능자(全能者),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는 전지자(全知者), 인간을 가르치고 징계하는공의자(公義者), ,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전선자(全善者) 등으로서의 하느님이 신학의 대상이다.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을 추구하는 신학은 하느님이 누구이고, 인간 내지 우주와 어떤 관계를 가지며, 무엇을 행하고,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그런데 하느님 계시의 중심점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인간의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성부로부터 구세주로 파견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단연코 신학의 중심 주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한 14, 6)라고 하였으니, 신학의내용은 구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교부들이 이해한 바와 같이 신학은 계시의 학문이고, 계시의 중심점은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신비이다. 그런데 이 신비는 영원한 하느님이 시간 안에서 경륜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이 구원의 경륜을 밝히는 것이 곧 신학이다. 구세사를 전개하는 것은 곧 신학 전체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삼위 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은 이러한 신학의 양대 지주라고 할 수 있다.
〔소 재〕 신학의 주체가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계시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 주었으므로 계시 내용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하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는 인간 각자의 두뇌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 안에서 사건과 인물을 통하여 알려지고 전달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의 출발에서 전달되는 전 과정이 곧 구세사이며, 이 구세사는 거룩한 전통 즉 말씀으로 기록된 성서와 말씀으로 기록되지 않고 입으로 전해 오는 전승(傳承) 혹은 성전(聖傳)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구세사의 전통을 연구하는 것이며, 이 전통을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신학의 소재가 된다. 중요성에 따라서 그 소재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성서 : 구세사의 주역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구약)과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신약) 안에서 성령의 영감(inspiratio)을 받은 저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책들을 성서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성서의 아버지는 하느님인 성령이고, 성서의 어머니는 하느님의 백성(이스라엘과 교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서의 중요성을 과장하여 마치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현하였고, 신약성서에서 교회가 출발한 것처럼 생각하는 견해는 중대한 오류이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구약성서가 출현되기 몇 백 년 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구세사의 주역으로 선택되어 있었고, 신약성서가 출현하기 수십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을 선택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하는 사람은 구세사의 주역으로 선택된 이스라엘과 교회의 중요성을 먼저 인정하여야 성서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더욱이 성서의 저자요 보관자이며 해석자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존재와 사명과 권위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서의 권위를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전제하에서 신학의 소재 중 성서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소재이다. 성서는 구세사의 본류(本流)를 담은 그릇이고 하느님 말씀의 대종(大宗)을 이루는 기록이다. 그리고 성서는 이스라엘과 원시 교회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는가를 표현하는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의 내용은 계시이기 때문에, 성서는 어느 한 시대나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는 사료나 전거로서의 가치를 능가한다. 성서를 통해서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전해진 구원의 메시지이므로, 문헌으로서는 고서(古書)이지만 메시지로서는 만인에게 현재화되어 전해지는 하느님의 자기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의 소재로서 성서는 단순한 문헌학이나 역사학, 주석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성서 주석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원시 교회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또 하느님의 백성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행동하였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려고 한다. 하지만 신학은 이 성서 주석의 결과를 재료로 하여 그것을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계시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신학자는 성서를 훈고학적(訓詁學的)으로만 분석 · 연구하지 않고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전통에 의하여 음미하고 이해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의 현재적 · 실존적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전승 : 성서에 수록되지 않은 하느님 백성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도 신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전승에 속하는 이러한 내용은 성서의 내용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① 교도권의 가르침 : 계시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이고, 교회의 정통 신앙을 지도하는 책임은 교도권(potestas magisterii)에 맡겨져 있다. 교도권은 계시를 경건하게 듣고 거룩하게 보전하고 성실하게 해석하고 진술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도권자들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계시를 어떻게 해석하고 가르치는지 연구하는 일은 성서 연구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성서 연구 자체가 교도권의 지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교회의 교도권은 '통상 교도권' (magisterium ordinarium)과 '장엄 교도권' (magisterium extraordinarium sollemne)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주교단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의미하고, 후자는 교황과 주교단이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의도적으로 결정적인 선언을 하는 것이다. 통상 교도권의 가르침이라도 어떤 문제에 대하여 전세계 주교들이 일치하여 가르치는 것은 무류(無謬)한 것이기 때문에(교회 25항) 신학자들은 특히 주목하여야 한다. 또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교황이 사도좌에서(ex cathedra) 선언하거나, 세계 공의회에서 교황과 주교들이 일치하여 선언한 내용 즉 장엄 교도권의 결정은 계시의 결정적 해석이므로 신자들은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선언된 것은 신앙적 내용이며, 그 결론을 도출한 논증까지 신앙적 내용에 포함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참고 자료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장엄 교도권의 선언문은 시대 배경에 비추어서 최대한 정확하게 확대됨 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② 전례 : 교도권 다음으로 중요한 소재가 전례이다. 전례는 교회가 믿는 바를 경신례(敬神禮)와 성사 거행을 통하여 실천하는 구체적인 신앙 고백 행위이다. 전례는 구체적으로 성서적 · 교리적 표현과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비의 미학적(美學的)인 표현이고 하느님과 인간의 종교적 관계를 설명하며 계시를 행동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교리적 의도에서 전례를 거행하며 신앙 교육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전례 행위는 믿을 교리와 내적 관련이 있으며,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전례가 거행될 때 그 전례 행위는 교회 전체의 교리적 감각을 드러내고 신자들의 신앙을 표출한다. 따라서 전례가 신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이유는, 하나하나의 전례 문장이나 행동이 반드시 교리적이거나 전체적으로 신학적 논증의 집합체라서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③ 교부들의 가르침 : 사도 시대 직후 초기 교회의 학자들로서 뛰어난 성덕과 정통 신앙에 충실한 저술을 남긴 교부들의 주장도 귀중한 신학의 소재이다.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 일체론 · 그리스도론 .은총론 · 구원론 등이 체계화되면서 전례와 교회 생활의 기틀이 마련된 초기 교회의 목격 증인들이다. 또 그들 대부분이 사목자로 직접 교리와 사목을 하였던 만큼, 어떤 주제에 대한 교부들의 일치된 또는 상통하는 견해는 신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교부들 가운데에 서 4~5세기의 소위 대교부들의 저술들과 서간들이 많이 전승되었고, 그 논술도 학문적으로 세련되었기 때문에 신학에서 학문적 권위가 큰 편이다.
한편 그 이전 박해 시대 교부들의 문헌은 전해져 오는 양도 희귀하고, 그 가르침도 비교적 소박하고 학술적으로 덜 세련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 시기가 사도 시대에 근접하고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하였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들의 증언을 크나큰 존경과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박해 시대 교부들은 사도들 다음으로 중요한 신앙의 스승들로 간주된다. 교부학의 발전으로 이미 비교적 잘 알려진 교부들의 유작들뿐만 아니라 박해 시대 저술가들의 단편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여러 지방의 신경들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신학의 소재들이 더욱 풍부해졌다.
④ 교회의 역사 : 교회의 역사에 등장한 중요한 사건이나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실시된 제도나 중요한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도 신학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고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단설, 여러 가지 박해들, 여러 가지 다양한 교회법, 수도회들의 정신과 규칙들, 지방 교회 회의들의 결의 사항, 성인들의 행적,지방 교회들의 오래된 행정 체제나 관습, 여러 가지 신심 운동, 사도직 활동 등 교회 활동 전반이 신학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역사 안에 나타난 신앙 생활의 구체적인 형태는 동 시대 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도 하지만, 다음 시대의 신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연구하는 것을 실증 신학(實證神學,theologia positiva)이라고 한다. 실증 신학은 역사적 사실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고, 과학적 지식을 중시하는 가운데 교회의 성장이나 제도 혹은 교의 등을 다룬다.
〔신학적 사변〕 실증 신학이 제공하는 연구 결과는 하느님의 존재와 그 범위를 확인하고 계시의 표현 양상을 파악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성립될 수는 없다. 이성의 인식 법칙에 따라 사물의 개념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명제를 판단하고, 추리 작용을 통하여 계시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진술하여야 신학이 성립된다. 이렇게 신학적 사변으로 정리된 것을 사변 신학(思辨神學, theolo-gia speculativa)이라고 하는데, 실증 신학과 사변 신학을 함께할 때에만 어떠한 주제를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학적 사변을 전개하려면, 먼저 계시와 신앙의 전제 조건인 하느님의 존재와 그 속성에 대한 철학적 규명이 요구되고, 그 계시를 수용하는 인간의 영성적 능력의 존재와 역할이 규명되어야 한다. 이렇게 계시의 가능성이 밝혀지면 역사와 논리에 의하여 계시의 사실성을 논증할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계시 외적(外的) 연구를 통하여 신학의 성립 가능성을 밝히는 일을 일반적으로 기초 신학(基礎神學, theologia fundamentalis)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시 진리가 인간의 건전한 이성적 진리와 모순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의 요청에 부응한다는 것을 논증함으로써 반대자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호교론을 전개할 수도 있다.
기초 신학 다음에 계시 내용 자체에 대한 연구가 따르는데,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계시 내용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적인 성격을 지녔으므로 비록 신앙의 빛을 받은 이성의 논리적 사유를 통하여 규명할지라도 그 표현은 인간의 언어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의 표현 자체나 계시를 해석한 표현은 모두 인간의 언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신학적 언어는 언제나 일의적(一義的, univocus)으로가 아니라 많은 경우 유추적(類推的, analogicus)으로 해석되어야 이해할 수 있다. 신학적 사변은 계시가 통속적인 언어로 표현되었거나 상징적 표상으로 표현된 것을 엄밀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삼위 일체 교리의 위격(per-sona)이나 사도 바오로가 자주 사용한 "그리스도 안에" , "성부 오른편에 앉다"와 같은 말들을 엄밀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또 계시 내용을 유추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우구스티노의 삼위 일체 교리나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설명하거나 원죄의 결과를 보면서 원죄의 원인을 추리한다. 그리고 계시된 단편적 명제들을 원인과 결과의 관련을 밝힘으로써 체계화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부활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련시키거나, 하느님의 보편적 원인성에서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을 논하거나, 성령이 성자에게서 발함에서 성자와 성령이 구별됨을 설명하는 경우이다. 신학적 추리의 마지막 작업은 이미 확인된 두 가지 진리에서 새로운 명제를 도출하거나, 한 가지 확인된 진리에 논리적 추리를 가하여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도출된 결론을 신학적 결론(conclusio theologica)이라고 하는데, 이 결론은 논리적 결론일 뿐 실재적(實在的) 진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이러한 결론이 다른 데서 명시적으로 계시된 진리와 모순되면 이 신학적 결론은 포기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변 신학은 16세기부터 조직 신학(組織神學, theologia systematica)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같은 시기부터 조직 신학의 내용 중에서 윤리 도덕에 관한 연구가 별도로 진행되어 윤리 신학(倫理神學, theologia moralis)이라는 분과가 생기면서, 주로 믿을 교리에 관한 내용도 별도로 취급되어 교의 신학(敎義神學, theologia dogmatica)이라는 분과가 성립되었다.
〔신학의 분과와 단일성〕 역사적으로 보면 13세기까지 신학은 단일 학문이었으나 14세기부터 신비가들의 영성체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관조하고 영성적 진보를 도모하려는 '신비 신학' 과 '영성 신학' 으로 분리되었다. 또 13세기부터 사목자들의 고해성사 집전에 참고서로서 인간 행위의 선악을 논하던 것이 16세기에 '윤리신학 이라는 또 하나의 분과로 분리되었다. 14~15세기의 신학이 어렵고 추상적인 주제에 몰두하여 구세사적 관점을 소홀히 하는 경향에 맞서서 계시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실증 신학' 이 대두되었다. 또한 14세기부터 교권과 속권의 투쟁이 심화되면서 교회의 제도를 옹호하는 독립된 교회론이 출현하였고, 종교 개혁으로 자극을 받아 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옹호하는 호교론이 발전하였으며, 17세기 중엽부터는 교회론을 중심으로하는 호교론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 외에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전문화되고 학교교육의 편의를 위하여 17~18세기에 와서는 성서 신학 · 교부학 · 마리아론 · 사목 신학 등이 서서히 분립하였고, 20세기에는 복음 선포에 이바지하는 많은 분과 신학이 태동되었다.
그런데 성서와 전승을 통하여 계시된 진리를 교회가 신앙으로 이해한 것을 교리라 하고, 교리를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신학이라고 한다면, 신학자의 교육 성향·문화적 배경 · 시대의 요청 · 학파의 인맥에 따라서 같은 신앙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신앙을 설명하는 방법이나 이론 체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의 일치가 저해되지 않는 한, 신학의 다원화 현상은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신학은 많은 분과와 학파를 가지고 있지만, 계시에 대한 신앙적이고 이성적인 이해라는 점에서 고도의 통일성을 가진 학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신비를 관조(觀照, contemplatio)한다는 면에서 대단히 사변적이지만, 그 신비가 인간의 구원적 실천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대단히 실천적인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차원 높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신학의 과제〕 19세기 후반기에 역사학이 과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학문하는 방법론이 변화되었다. 가톨릭 신학계에서도 어떤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그 사물의 역사와 현상의 비판을 종합해야 얻을 수 있다는방법론에 의하여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다. 이 새로운 학풍은 현대 사회의 변천과 아울러 신학 전반의 쇄신을 자극하였다. 먼저 신학의 소재들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가 성행하여 교부학 · 성서학 · 전례학이 크게 성장하였으며, 그 결과 신학의 소재가 풍부해지고 조직 신학에 새로운 방향과 방법과 과제를 제공하게 되었다.
교의 신학에서는 구세사를 축으로 하는 체계를 세워서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신학관이 형성되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가 교회론의 핵심이 되었다. 성사론에서는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서의 재료와 형상론을 넘어서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분여되는 표지라는 관점이 중심이 되었다. 또 윤리 신학에서는 권선징악적 법리론에서 그리스도의 신비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에서 구현되는가를 논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신학의 의도와 방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수렴되었고, 변천하는 인간 사회의 고뇌와요청을 감안하여 세상 만사에 계시의 빛을 제시하고 제공하는 신학이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종래의 신학이 소위 인간의 신학이었다면, 현대의 신학은 하느님의 인간학이 되고자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현대의 학문 발전은 신학을 자극하여 신학의 쇄신을 도모하는 반면에, 사회의 변천은 여러 가지 신학적 과제를 제공한다.
선교 신학 :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세상의 복음화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세속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와 세계의 인구 증가가 교회의 성장을 능가하는 현실에서, 교회의 일차적인 임무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가를 깊이 반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신학도 학자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는 신성한 철학이 아니고 생생한 복음의 설교학이 되어야 하며, 신학자는 복음의 정보 제공자가 아니고 복음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교 신학은 계시를 해설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계시로써 인간 현실을 해석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 시대 · 지역 · 민족의 고유한정신과 사회 현상을 깊이 통찰하고 여기에 적응하는 복음 선포의 의의와 방법을 추구하는 선교학에 신학적 바탕을 제공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평신도 신학 : 교회 안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평신도에 대해서 <교회 헌장>(Lumen Gentium)이 역사상 처음으로 그 신원과 사명에 대하여 교의적으로 언급하였다. 평신도의 신원은 세례성사 · 견진성사 · 성체성사들로 축성된 하느님의 백성이고, 성직자나 수도자처럼 고유한 성소를 받은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들은 혼인성사의 은총을 받아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며, 그들의 가정은 성직자 · 수도자의 요람이 된다. 따라서 평신도의 성소는 현세 안에서 현세적 사물을 관리하면서 세상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를 현존하게 하는 소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나 사회에서 그 사명을 수행하는 힘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과 애덕의 힘이다. 그렇다면 평신도 신학은 평신도가 세속 가운데에서 세속 사물을 관리할지라도 그 재속성(在俗性)이 평신도의 특징이 아니라 재속성을 신앙적으로 성화하는 것이 그 특징임을 밝혀야 한다.
교회 직무의 신학 : 평신도의 고유한 신원과 사명이 밝혀져야 하듯이 교계적 성직의 위상과 소임에 대한 재평가도 요청된다. 중세와 근세의 교회 생활은 거의 성직자들이 전담하였고 평신도들은 사목의 대상일 뿐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으로 격려되어 많은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이론적으로나 실제상으로 불분명한 면이 많다. 이러한 불분명함은 직무 신학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종래의 교계 제도에 대한 이해에서 교황직과 주교직의 관계가 선명하게 파악되지 못하였으며, 주교단의 본질이나 주교단성(collegialitas)도 불분명하고, 특히 부제직과 사제직의 관계가 모호하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를 논할 때 항상 전체 교회를 논하면서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와의 관계나 지역 교회의 본질과 위상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소위 본당 단위의 공동체를 자신 있게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또 성서와 전승에서는 사제직이 공동체에 대한 봉사직이라고 하였는데, 공동체에 봉사하는 직무에는 언제나 권위가 수반되고 다소간의 관료적 형태를 띠게 되므로, 성직 수행에 부수되는 권위 · 권리 · 의무의 관계와 한계도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 일치 운동에 관한 연구 : 가톨릭 교회 밖에서 시작된 이 운동에 대하여 교회는 오랫동안 염려하고 주저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치 운동이 제시하는 과제는 매우 복잡하고, 신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역사적 연구도 필요로 한다. 일치 운동에 관한 공의회 교령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들의 연구가 필요하다. 즉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의한 교회의 본성, 각 교파가 공유하는 신앙의 유산, 구원의 기관으로서 각 교파의 가치, 성서와 전승의 관계, 교계 제도의 본질과 사명, 교황의 수위권과 각 교파의 교직과의 관계, 각 교파에서 시행되는 전례나 성사의 의미,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각 교파의 관련성 등이 깊이 있는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타종교에 대한 연구 : 과거에는 주로 호교적 의도로 타종교가 연구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복음화적인 의도로 여러 종교들의 구원적 가치가 탐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종교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비추어 여러 종교 안에서 인간 구원에 이바지할 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에서 모색되고 있지만, 문제의 근본은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를 감안하여 신앙을 갖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이 어떠한지 탐구하는 것이다.
지상 사물의 신학 : 계시에 나타난 구원의 경륜은 인간의 구원을 목표로 하지만, 구원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인간이다. 이 인간은 시간 · 공간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물질을 관리하여 세상을 경영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이란 인간의 본질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 상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완성 즉 구원은 영원에 있지만 이 영원에 이르는 도정(道程)은 현세에 있다. 현세는 주어진 물질 세계만이 아니고 인간이 이룩하는 모든 것 즉 사상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과학 등을 다 포함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지상 사물' 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물들은 창조 질서에 포함되기 때문에 구원 질서에도 포함된다. 위비(J. Huby)가 말한 대로, 우주는 인간이라는 석상을 세워 두는 단순한 받침대가 아니다. 우주 안의 모든 자연 현상과 인간 현상은 비록 밀도(密度)는 다를지라도 섭리와 인간과 물질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완성으로 나아가는 역사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구원은 우주의 갱신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엽부터 신학자들은 인간 구원의 우주적 차원에 착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지상 사물의 신학이 태동하였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 인간과 물질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진화하는 현세에 대하여 신앙인은 종말론적인 초월적 태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내재론적인 참여를 택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Gaudium et Spes)은 신앙인에게 세속의 것이 아니면서〔超越, transcendens〕 세속 안에 있어야〔內在, immanens〕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지상 사물의 신학은 필요하고 가능한 것이다. 물론 지상 사물의 신학에서 현세 사물들이 인간 구원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 신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현세 사물이 인간 구원에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지, 그런 관계의 구원적 가치가 무엇인지 계시의 조명을 받아서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지상 사물의 신학은 신앙인의 현실 참여가 질료적(materialiter)으로는 세계사의 참여가 되면서, 형상적(formaliter)으로는 구세사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 계시 ; 교부학 ; 교의 신학 ; 교회론 ; 교회 일치 운동 ; 교회 직무 ; 구세사 ; 구원 ; 구원론 ; 그리스도론 ; 기초신학 ; 사목 신학 ; 삼위 일체론 ; 선교학 ; 성사 신학 ;성서 ; 성서 신학 ; 신론 ; 신비 신학 ; <신앙과 이성> ;신학사 ; 영성 신학 ; 전례학 ; 전승)
※ 참고문헌  Y. Congar, La Foi et la Théologie, Desclée, Tournai,1962/ E. Schillebeeckx, Revélation et Théologie, Bruxelles, 1965/ H. Fries,Théologie, Encyclopédie de la Foi, tom. 4, Cerf, 1967, pp. 310~322/ K.Rahner, 《SM》 6, pp. 233~246/ G.F. van Ackeren, 《NCE》 14, pp. 39~49/ 정하권, 《가톨릭 사전》, pp. 734~736. 〔鄭夏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