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합덕 본당

新合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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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운산리 253 소재. 1960년 11월 18일 합덕(合德) 본당 관할 공소 12개가 합하여 버그네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62년 운산리 본당으로, 그리고 1967년에는 신합덕 본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우강면 전 지역과 합덕읍, 순성면, 면천면, 심평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아찬리, 중방리, 신송리, 신촌리, 원치리, 세류리, 백석리, 대치리, 남산 등 9개소. 〔교세〕 1960년 1,880명, 1965년 2,575명, 1972년 3,304명, 1976년 1,533명, 1980년 1,734명, 1987년 2,255명, 1993년 2,782명, 1997년 3,383명, 1999년 3,396명. 〔역대 신부〕 초대 이규남(李圭男) 요셉(1960. 11~1972. 12) , 2대 구자오(具滋五) 베네딕도(1972. 12~1980.8), 3대 윤인식(尹仁植) 바오로(1980. 8~1985. 3), 4대 이종대(李鍾大) 요셉(1985. 3~1990. 2), 5대 송갑의(宋甲儀) 사도 요한(1990. 2~1994. 8), 6대 윤영균(尹英均) 미카엘(1994. 8~1999. 2), 7대 양택규(梁宅圭) 안드레아(1999. 2~현재).
1959년 합덕 본당 주임 박노열(朴魯烈, 바오로) 신부는 운산리 지역 신자들을 위해 운산리 중동의 환자 수용소 건물에 공소 강당을 마련하고 버그네 공소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50여 명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교세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신평 · 우강 · 면천 지방의 11개 공소 회장들이 뜻을 모음으로써 1960년 11월 18일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규남 신부는 1962년 4월 성당 신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듬해 대지를 매입한 뒤 1965년 12월 153평의 현 성당을 완공하였으나, 봉헌식은 1967년 4월 12일에야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 집전으로 거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사제관을, 1969년 9월에는 강당을 완공하였다. 한편 성당 안팎을 정비한 2대 주임 구자오 신부는 신촌리 공소와 백석리 공소 강당을 신축한 데 이어 합덕 본당에서 분가할 당시 이관받았던 솔뫼의 성역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솔뫼 성역화 사업은 그 후 대전교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교세 확장으로 1975년 4월 10일 신평(新平) 본당을 분할하여 신평면 일원의 8개 공소와 신자 1,660명을 이관하였다. 3대 주임 윤인식 신부 때인 1981년 7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면서 옛 사제관을 수녀원으로 개축하여 이듬해 3월 서울 성가 소비녀회를 초청하였고, 1983년 9월에는 대치리 공소를 신설하고 공소 강당(18평)을 신축하였다.
4대 주임 이종대 신부 때인 1988년 4월 10일에는 교육관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4월 23일 이를 완공하였고, 신송리 공소와 세류리 공소의 강당을 완공하였으며, 5대 주임 송갑의 신부는 사제관을 개축하고 고해소 공사 등 성당 안팎을 정비하였다. 6대 주임 윤영균 신부는 주일 저녁 미사를 신설하고 원치리 공소와 아찬리 공소 강당을 완공하였으며, 1999년 1월에는 성모 성심 꾸리아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7대 주임으로 양택규 신부가 부임하여 주보(週報)를 창간하고 대건회를 설립하였으며, 본당 신자들이 신심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 운산리 본당 ; → 대전교구 ; 구합덕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