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神化 〔그〕θεόσις 〔라〕deificatio 〔영〕de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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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었으며 승천함으로써 인간이 신이 되도록 하였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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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었으며 승천함으로써 인간이 신이 되도록 하였다는 가르침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로서, 신성(神性)과 인간성(人間性)을 지닌 하느님과 함께 살며 일치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었으며 승천함으로써 인간이 신(神)이 되도록 하였다는 이 가르침은 동방 교회 비잔틴 신학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용어는 구원 경륜(όικονομία)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구원 경륜의 질서〕 성서적 용어인 구원 경륜은 그리스 교부들이 처음 사용하였는데, 신학에서는 본질적이고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구원 경륜은 인간과 함께하는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인간 구원을 위하여 이루시는 신적 경륜 즉 인간 구원을 위한 신적 계시이며 계획이다. 구원경륜의 계시 내용은 먼저 유일한 하느님이 유일한 구원적 표징을 드러내는 구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안에서 구원을 위한 기나긴 준비를 하였다. 아버지는 구원 경륜의 질서(ταχύς) 안에서 인간을 위해서 당신을 계시하고 성령과 함께 아들을 파견하였다. 그래서 삼위 일체의 신비 안에서 아들은 육화되어 세상에 오고, 아버지의 모든 구원 경륜에 성령은 결정적으로 협력하였다. 성령은 아들에 의해 실현된 구원 경륜을 인간들 가운데에서 그리고 교회안에서 종말 때까지 실행하면서, 아들을 동반하며 함께한다. 신적 질서는 인간 구원을 위한 이러한 삼위 일체의 지속적인 구원 활동 안에서 드러난다.
교부들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의 신적 계획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와(exitus aDeo) , 모든 이가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되돌아가게 된다(reditus ad Deum)고 하였다. 즉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모두 아버지께로 완성되어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구원 경륜서술은 성서적인 면에 교부적인 시각이 혼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에페 1, 3-14). 즉 아버지는 부활한 아들의 영을 인간에게 선사하고, 성령은 알파를 향한 구원의 오메가로부터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하였으며 그 안에서 신적 표징을 계시하였다. 오직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난 아들만이 힘과 지혜임을 계시하였던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힘이요, 지혜(1고린 1, 30), 모상(ἐνικών, 요한 14, 9 ; 골로 1, 15), 말씀(요한 1, 1-17. 18), 길(요한14, 6),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1디모 2, 5), 영원한대제관(히브 5, 1-10)이다. 이 아들이 성령과 함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다시 길을 열어 인간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아버지는 항상 아들 안에서 성령과 함께 모두를 기다린다. 이제 구원의 역사 안에서 유일하며 변할 수 없는 신적 표지가 최종적으로 마지막 현실 안에서 계시되었다. 그것은 신적 표지이며 동시에 통달 · 계획 · 규정이자, 구약과 신약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안에서 드러나는 행위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적 활동 과정은 저항할 수 없이 진행되는데,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그것은 바른길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 종말론적으로는 나감(exitus)-되돌아옴(redius) 교회론적으로는 교회의 시대 안에서, 인간학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은 신화이다. 또 우주론적으로는 영광을 누리는 창조가 부여된다(로마 8, 16-25). 영원한 결과인 구원은 철회될 수 없다. 성서를 근거로 해서 교부들은 이러한 변형 정식들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이는 인간이 은총을 입어 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신적불변성 안에서 움직이고 인간은 영원으로 변형된다는 신화에 대한 진술은, 특히 비잔틴 교부들의 신학을 통해 발전되었다.
〔신학적 근거와 형성〕 성서적 근거 : 하느님의 모상(창세 1, 27) 또는 하느님을 닮은 인간(창세 1, 26)이라는 표현에서 성서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밖에 그리스도를 따름, 불사불멸, 부패하지 않음, 신적 본질과의 통교, 하느님 존재,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형제들, 하느님에 의한 탄생, 예수의 어머니들, 재생, 새 사람, 갱신된 인간, 창조-새 창조물, 신적인 동시적 선택, 신적 공동 상속, 신화적 거룩함, 신화적 말씀, 거룩한 변모 등 신약성서 전체의 본문 안에서, 통시적(通時的)으로는 성서 집성의 연대기적 순서나 본문의 순서에 따라 신화를 서술하는 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공시적(共時的)으로는 이를 구원 경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성령 안에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낸다. 즉 신화는 신적인 구원 경륜적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 안에서 결정적인 변모가 일어남을 말한다. 신적 선물인 구원 경륜의 불변한 지속성 안에서 신화의 의미는 구원과 창조의 최정상에 놓여지는데, 이러한 신학적인 입장은 동방 교회 상징 신학의 고전적 장(章)으로서 하느님의 모상이자 하느님과 닮은 인간에 대한 구원론적 관점이다.
그리스 사상과의 혼합 : 일반적으로 비잔틴 동방 교회 신학은 먼저 제2 경전을 포함한 성서와 전승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 세상을 초자연 세계의 가현물(假現物)로 본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영향을 받아 다분히 신비적이고 그리스 사상적인 면이 있다. 사실 신화라는 용어와 사상은 그리스 사상이 첨부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비잔틴 신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중심적인 관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많이 이용했는데, 특히 신화란 개념이 대표적이다. 이런 면 때문에 하르나크(A. von Harnack, 1851~1930)는 그리스 교부들의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변화되는 문화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시 조명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헬레니즘 시대라는 조건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려는 그리스 교부들의 이러한 노력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비잔틴 신학자 로스키(N.O. Lossky, 1870~1965)가 언급하였듯이, 비잔틴 신학은 그리스 사상의 규범 안에서 교회의 전승을 표현하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과 투쟁이었다.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라기보다는 헬레니즘의 그리스도교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화는 헬레니즘에서 출발하였으나, 그것이 비인격적인 존재로 향하는 신플라톤적 복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에 그 중요성이 있다. 즉 비잔틴 신학에서 신화는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일치 안에서 새로운 성서적 삶의 새로운 표현으로 나타나 헬레니즘 안에서 토착화된 것이다.
비잔틴 신학에서의 신화의 의미 : 신화는 구원 경륜과 함께 거론되는 비잔틴 신학의 구원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첫 번째로 신화되었으며, 또한 스스로 생명의 성령이 되었다(1고린 15, 45). 그는 또 인간으로서 형제들에게 영을 주는 능력을 지녔다. 이제 그는 소멸될 수 없는 영의 유일한 원천이면서(사도 2, 32-33) 인간 신화의 원천이다. 그가 신화되면 그를 믿는 사람들도 신화되며, 그가 영광을 받으면 그들도 그러할 것이다. 로마서 8장 10-11절에 표현된 사도 바오로의 신학에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에서 출발하여(로마 6장)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분명히 그와 함께 죽어야 하며, 그와 함께 묻혀야 한다. 그와 함께 영광에 싸여 있는 것은 그가 저승의 문들을 부수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을 위해 신비의 문을 열었다.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항상 자신과 성령 그리고 아버지의 유일한 신적 선함을 무상으로 주고 있다(시편 69, 6 : 필립 2, 13 : 마태 9, 35-11, 1 ; 28, 19 ; 2고린 13, 13 : 묵시 22, 1-5).
그런데 이 무상의 선물의 출발점은 항상 구원의 오메가, 즉 성령과 함께 아버지에 의해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이다. 부활은 항상 인간의 신화를 위한 신적인 길이며, 신화는 부활에 대한 응답이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죽고 인간을 위해 부활한 사실을 수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안에 머물러 있는 성령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온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미 인간을 예견하여 알고 있고(로마 8, 28-30), 세상 창조 이전에 아들 안에서 이미 인간을 수락하였다(히브 10, 10. 12. 14). 따라서 이 무상의 선물은 하느님이 이미 인간을 수락하였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선물은 인간들에게 수단과 방법도 제시해 준다. 즉 말씀과 청취, 마음의 회심, 성찬, 신앙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공동체, 기쁨 안에서 거행되는 지속적인 전례 등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일들, 즉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모두 신화를 향한 참된 길들이다.
비잔틴의 신학은 교의가 표현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신비로 직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렇게 신비 안에서 충만히 사는 것을 신화라고 한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연민이 인간을 신화로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서방 교회에서처럼 현실 안에서 초자연적인 은총만을 구하면서 내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신성과 인간성을 지닌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영적 체험 안에서 복음적 충만과 신화를 살아가기 위한 영성의 중심으로 '자기 비움' (κένωσις)을 강조해 왔다. 인간이 신화 안에서 느끼는 무한한 구원적 해방은 근본적으로 자기 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성적으로 열려 있음은 하느님과 일치하며 지속적으로 회심으로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느님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교부들의 주장〕 오리제네스 : 오리제네스(Origenes Alexandriae, ?~254)는 인간은 그 자신 안에 하느님과 동일 본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유사함을 인식하는 유비(類比)라는 원리에 기초하여 모상을 인식할 수 있으며, 완벽한 닮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창세 1, 26-27). 이 모상은 퇴색될 수 없으며, 죄에 의해 파괴되지도 않는다. 오리제네스는 매우 역동적으로 최종 현양을 향해 있으며, 성부께로 돌아간 뒤 구원자의 인성과 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탄원하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고찰하였다. "이러한 구원자는 자신을 스스로 비천하게 하면서 비방자에 의해 비천해졌지만 계속해서 교회 앞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빛을 발한다. 원수들에게서 받은 수난으로 비천하게 된 상태에서 정화가 필요한데, 오로지 성부만이 그를 정화시킬 수 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모상을 바라보면 성부의 모습인 그 모범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타나시오 :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Atha-nasius, 293?~373)는 구원의 사건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본질에 있어서 참 하느님이고 참 인간이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구원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하느님 자신이며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면서 그들을 신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었다고 한 아타나시오의 신학 안에는 근본적으로 구원론적인 전망이 들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원에 관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육화가 상당히 강조된 면을 볼 수 있는데, 즉 전통적인 주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원론은 단순한 대조 즉 육화(σαρκώσις)-신화(θειοποιεησις)로 확립된다.
여기서 아타나시오는 말씀의 신성과 인간의 인간성 사이에 놓여지는 '변화의 체계' 를 설정하고 있다. "그가 스스로 인간이 되셨기 때문이요, 우리는 신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하나의 몸으로 보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인간들의 폭력을 참아 내셔야 했던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불후의 명성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말씀은 현실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부와 진정으로 같은 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신화시킬 수 있는 이는 참으로 하느님뿐이다. "창조된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은, 성자께서 진정으로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신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부 옆에 앉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분께서 인간의 육을 취하셨다면, 이는 성부의 말씀의 본성 때문이 아니다. 말씀이 인간적 육의 본성을 취하시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악과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분께서 육을 취하시지 않았었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신화될 수 없을 것이다" (Contra Arianos II 70 : PG 26, 296).
인간의 구원은 '말씀이 인간이 됨' 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실제로 이러한 일치에서 그분의 인간적 본성에 신성을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인간 자체의 신화와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씀이 그의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그분에 의해 취해진 진정한 육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그 무엇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성자께서 성부 본질의 탄생이라고 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불확실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은 성부의 지혜이며 로고스인 것이 확실하며, 그 안에서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 그의 찬란함과 밝음 속에서 비로소 모든 것이 그분이 원하는 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성자의 표지와 모상 안에서 그분은 고찰되고 형성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성부는 한 분이시다. 실제로 누구든지 그분을 보게 되면 성부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구원되었고 새롭게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Contra Arianos Ⅱ, 70 : PG 26,296 : Contra Arianos 1. 16c : PG 26, 45).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 : 모든 동방 교부들은 그리스도인의 신화와 육화의 목적과 활력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중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enus, 329/ 330~389/390)는 빛의 세 가지 분출로써 이해된 유일한 하느님은 양육하고 신화한 자신의 창조물과 통교하고 일치한다고 하였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육 안에서 인간의 인간적 삶을 당신의 삶으로 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법을 의미하였다. 즉 육화의 열매와 성령의 작업, 인간의 신화는 높이 들어올려진 십자가(수덕적 노력)에 참여하고 협력함으로써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며, 또 이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골로 3, 11).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으시기 때문이다. 그분 덕분에 우리는 '신들' 이 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보다 더 나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더 못한 것을 취하셨다 . ···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죄로 인해 넘어짐으로 약해지고 무력해진 인간들을 자신 에게 끌어당기기 위해서 하늘에 오르셨다" (Or. 1, 5 : PG35, 398-399).
육화로 인해 인간 본질이 상승(승천)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전생애가 구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완성되는 전례 예식을 통해서 그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었는데, 특별히 파스카 시기에 그러하다. "오늘 구원이 세상에 도달하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 ··· 황천문들이 완전히 활짝 열렸다. 그리고 죽음에 그 값이 치러졌고, 옛 아담이 해방되고 새 아담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창조물이니, 갱신하시오" (Or. 39, 14 : PG 36, 350 Or. 45, 24-25 : PG 36, 655-658 ; Or.45, 1 : PG 36, 623).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는 <말씀>(Logos) 편에서, 인간 본질의 상승(승천)이 구원적 사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의미를 대표한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의 모습에 따라서, 육화된 말씀은 동요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참여로써 이미 명확하게 역사적 인간성의 신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오 :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5?)는 말씀의 육화를 기초적 구원 사실로 보았다. 사실 그는 육화의 신화적 가치를 독특하게 설명하여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점에서 그는 개별적 인간만이 아니라 내적 인간성을 객관화시킴으로, 플라톤적으로 사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개체들을 인간의 우주적인 성격과 구분하여 이해하지 않았다. 따라서 말씀은 육화하면서 의심 없이 개별 인간성에 결합되며,. 또 모든 인류 각자에게도 결합되어 내적 인간성을 신화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사물들에 대한 일관된 시각으로 아들의 신성과 개별적 인간성을 구별하면서 동시에 그 둘의 결합이라는 현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의 성립이라는 사실도 단언하였다. 또 인간은 괴로움에서 무한한 원의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고 하였다. 오직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이는 포착될 수 없는 하느님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면서(자기 비움), 필사적으로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을 걸어간다(신화).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옴(자기 비움)으로써 자신 안으로 발전적으로 되돌아가고내적 인간 안 에 일치한다. 여기서 수난은 하느님을 향한 경주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며, 자신 안으로 돌아가는 조건이기도 하다. 인간은 외적인 옷을 갈아입는 것에서 자신 안에 있는 모상 즉 "자유롭고 살아 있는 풍경과 시선"을 다시 발견하여야 한다.
〔구원과 신화〕 인간의 신화에 대한 신학적인 기초가 분명하게 마련된 것은 막시모(Maximus Confessor, 580~662)에 의해서였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간성의 위격적 결합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 예수는 위격적으로 하느님이므로 하느님 안에서 신적 에너지와 인간적 에너지의 통교(περιχώρησις, circumcessio)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통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 위격자들일 뿐이며, 위격적으로가 아니라 은총에 의하여 하느님과 결합되는 것이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말씀하는 것을 듣는다.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다"(요한 10, 34). 따라서 이제 그 사람은 하느님이다. 그리고 하느님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본질 또는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적인 은총과 섭리에 의해서이다.
이단자 펠라지우스(Pelagius, 354?~418?)가 말하였듯이 인간의 활동과 에너지가 그의 삶을 신화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 에너지에 의해서 신화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활동은 순명적이다. 따라서 신적인 에너지와 인간적 활동 사이에 상호 협동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두 에너지들의 관계가 존재론적 기초가 된다. 그러나 본질들이 서로 혼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데, 이는 인간에 의해 신적 존재 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자 그레고리오(Gregonius Palamas, 1296~1359) 역시 이러한 점을 주장하였다. "하느님은 자신의 완전함 안에서 사람들을 하느님 자신에게 결합시키심으로써 위격적도 본질적도 아닌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들과 신성의 일부분을 통해서 신화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는 각자 자신 안에 현존한다."
막시모에게서도 이레네오(Irenaeus, 130~200)와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ae, 150?~215?)와 유사한 구원론적 신학이 발견되는데, 그에 의하면 육화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의 회복(recapitulatio)은 창조의 진정한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종말론적 목표(육화한로고스, 그리스도)를 향한 역동적인 과정으로서 창조된 본질에 대한 그의 신학으로 명확하게 확립되었다. 육화는 인간의 죄성과 부패에 대해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최후의 영광을 위한 선재 조건이다. 신화로써 인간은 그가 창조된 최고의 목표를 성취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느님 사랑의 일방적인 행위에 의해 실현된 이 목표는 인간 역사의 뜻과 인간에 대한 심판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노력과 자유로운 응답에 그 완성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 구원 ; 그리스도론 ; 동방교회 ; 육화)
※ 참고문헌  T. Federici, Teologia Biblica della Divinizzazione, Doxo-logia 3, Roma, 1990/ J. Meyendorff, Byzantine Theology, Historical trends-doctrinal themes, New York, 1979/ v. Lossky, Théologie mystiqque de I' Eg-lise d'Orient, Paris, 1944/ G. Bosio E. dal covolo M. Maritano, Introduzioneai Padri della Chiesa, Secoli II e III , Torino, 1991/ L. Scipioni, Il Verbo ala Sua umanità-Annotazioni per una cristologia patristica, 《Teol》 2, 1977/M.Simonetti, I Principi du Origene, Torino, 1968/ J. Scherer ed., Disp. con Er.7, 1~9, Paris, 1960/ B. Studer, Soteriologie. In der Schrift und Patristik,Freib. im Br., 1978/ Ch. Kannengleser, Le mystére pascal du Christ selon Athanase d'Alexandrie, B. Borghini, trad. it., De Incar. 54, 3, Alba, 1972/ J. Rousse, 《DSAM》, cit., coll. 945ss(Ep. 101 : PG 37, pp. 182~183)/ E. Bellini, trad. it., Su Cristo il grande dibattito, cit., 29/ L. Malevez, L'Eglise dans le Christ. Etude de théologie historique et théorique I, 《RSR》 25, 1935, pp. 260~280/ R. Schwager, Der wunderbare Tausch. Zur physischen Erlösungs-lehre Gregors von Nyssa, 《ZKT》 104, 1982, pp. 1~24/ L. Malevez, In illud Quando subjecerit ommia(PG 44, 1303ss), De perfecta christiani, fomma (PG 46, 251ss), art. cit., 267~271.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