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미로, 폴란드의 (1458~1484)

Casim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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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프랑스의 생 샤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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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프랑스의 생 샤펠 성당.

성인. 축일 3월 4일. 폴란드 왕 가시미로 4세와 오스트리아의 공주 엘리사벳 사이에서 13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신앙 깊은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모께 대한 신심과 정결의 신성함을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간직하였고 여섯 살부터는 요한 들루고즈(Jan Dlugosz, 1415~1480)신부에게 학문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부왕과 헝가리 귀족들에게서 헝가리의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 축출 공작에 군대를 인솔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가시미로는 이 계획이 부당하다는 확신에 따라 거부하였다. 이 문제로 부왕의 노여움을 사 조그만 성 안에 연금된 가시미로는 이를 오히려 좋은 기회로 삼아 기도와 수덕에 전심했다. 거친 옷을 입고 마룻바닥에 자면서 주의 수난과 성체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였다. 종종 자정에 일어나 성체 조배도 하였다. 자기를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부왕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동정을 지켰다. 성모께 대한 신심도 뛰어나 그가 지은 <하루도 빠짐없이 성모를 찬송하세>란 찬가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도 읊어지고 있다. 부왕이 국사로 리투아니아에 가 있는 동안(1481~1483) 가시미로는 부왕을 대리하여 폴란드를 통치하였는데 그시대 사람들의 전기에 의하면 '가난한 자의 옹호자' 라고 불렸을 정도로, 생활이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을 물심 양면으로 위로했다. 권좌에 앉아 다스리기보다는 늘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하길 원했다. 1484년 26세의 나이로 대공(大公) 직위를 겸하고 있던 리투아니아를 여행하던 중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빌나(Vilna)의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존 때부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사후는 한층 더 공경을 받았으며 많은 기적도 일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1518년 폴란드 군대가 적군에 포위되어 패망의 위기에 있을 때 가시미로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켜 대승리로 이끌었고, 1604년 사후 120년 만에 그의 무덤을 열었을 때는 옛 모습이 잠자는 듯 보존되었으며 손에 든 그가 쓴 성모 찬미가의 글씨도 선명하였다고 한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시성되고 폴란드 백성의 원의에 따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주보가 되었다. (→ 폴란드)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 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 New York/ A. Sagrera, 《NCE》2. [裵文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