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형제 신부. 형은 안토니오 공베르(Gombert, Antoine, 孔安國), 동생은 줄리앙 공베르(Gombert, Julien, 孔安世). 안토니오는 1875년 4월 25일 태어났고, 줄리앙은 1877년 9월 7일 태어났는데 1900년 8월 1일 함께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9일 함께 한국에 입국하였다.
① 안토니오 신부는 1900년 안성(安城)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안성 · 평택 · 천안 등지의 16개 공소도 돌보았다. 구한말(舊韓末) 의병 운동과 3 · 1 운동 때 일본인에게 쫓기는 사람들을 성당에 수용하여 보호하였다. 1909년(융회 3) 안법(安法)학교를 설립하고 자비로 운영하였으며, 1912년에는 안법학교 여자부를 신설하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 2명을 초청하여 여학생 교육을 위촉하였다. 1922년 교우들의 헌금으로 로마네스크식 벽돌 성당을 신축하였고, 1924년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1927년에는 교세의 확장으로 평택(平澤) 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또한 1921년에는 천안(天安) 공소를 개설하였다. 31년 동안의 안성 본당에서의 사목에 이어 대 · 소신학교의 영적 지도를 맡았으며, 1943년에는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와 함께 '성가소비녀' (聖家小卑女, 현 서울 성가 소비녀회) 회칙을 작성하였다.
② 한편 동생 줄리앙 신부는 1901년 금사리(金寺里)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충남 남서부 지방(부여, 논산, 청양, 예산, 홍성, 서산, 서천, 보령)의 사목을 담당하면서 1906년 4월에는 성당을 신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조국 프랑스에서 동원 명령이 내려 1915년 11월 프랑스로 귀국하였다가 전쟁이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와 사목을 계속하였다. 1923년 논산(論山) 본당에 부임하여 1927년 구(舊)성당 건물 72평을 신축하였다. 6 · 25 동란이 발발하던 당시 안토니오 신부는 서울 혜화동 가르멜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동생 줄리앙 신부는 인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도 신부로 수녀들의 영성을 지도하고 있었다. 안토니오 신부는 1950년 7월 11일경 인천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서 체포되어 납북, 죽음의 행진 중 11월 11일 옥사하였고, 줄리앙 신부는 다음날인 11월 12일 선종하였다. (→ 금사리 본당 ; 생제, 피에르 ; 구포동 본당)
※ 참고문헌 《서울敎區年報》/ <뮈텔 일기>/〈드망즈 일기>/ 《安城 天主敎會 發展史 資料》/《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尹善子〕
공베르
Gombert, Antoine ; Gombert, Ju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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