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의 처. 1801년 봄에 남편과 큰아들 유중철(柳重哲, 요한)이 체포된 뒤, 그 해 10월22일(음 9월 15일)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監營)에 갇혔다. 11월 11일(음 10월 6일) 아들 유중철과 유문석(柳文碩, 요한)은 교수형을 받고 그 외 가족들은 유배형을 받았는데, 신희는 함경도 경원부(慶源府)의 비(婢)로 결정되었다. 이에 며느리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와 조카 유중성(柳重誠, 마태오)이 천주를 위해 죽기를 원한다고 항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주감영을 떠나 네 마을 정도를 지났을 때 갑자기 유배가 취소되어, 신희는 이듬해 1월 31일(음 1801년 12월 28일) 전주 숲정이에서 이순이와 유중성, 그리고 동서인 이육희(李六喜) 등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유중철 ; 유항검 ; 이순이)
※ 참고문헌 《邪學懲義》, pp. 4~5, 170/ 《달레 교회사》 上, pp. 527~555. 〔方相根〕
신희 申喜(?~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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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