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나 형이상학적 관념보다는 유한한 인간의 역사 내적 삶 안에서 발견되는 실존적 의미를 중시하는 일련의 신학 체계.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 마르셀(G. Marcel, 1889~1973) 등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대두된 이른바 실존주의(existentialismus)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신학이다.
〔용어와 의미〕 '실존' (Existenz)은 본래 '~로부터 존립함' (existentia)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실존은 사물의 본질(essentia)이 아니라 그 본질의 '생기' (生起) 내지 '현실' (現實), 즉 사물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음' 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세기에 합리주의적이고 객관주의적인 관념론에 대항하여 실존주의가 대두하였는데, 실존주의는 관념적 · 추상적 · 이론적 진리를 반대하고 지금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을 중시하면서 '실존' 을 핵심 개념으로 내세웠다. 그런 점에서 실존주의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 이래 헤겔(G.W.F. Hegel, 1770~1831)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사상의 중심 축이었던 '본질주의' 에 대한 도전이었다. 또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경험하는 인간 소외의 상황과 인간 안에 본질적으로 주어진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근대적 사유 방식 내지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존주의에서는 주로 인간의 본질적 선(善)과 실존적 소외 상태에 떨어진 타락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사유한다. 또 자신의 뜻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 · 죄 · 죄책 · 죽음 등 실존적 한계들을 중시한다. 이러한 사유는 키에르케고르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며, 실존주의라는 말은 바로 그의 철학 경향에서 시작되어 하이데거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실존주의의 원류〕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실존' 으로 보았으며, 그에게 있어서 실존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는 태도였다. 그것은 사람의 깊은 요구에 대한 엄숙한 선택으로 인생의 실재와 부딪히는 것을 의미하였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을 거부하고, 지금 이 순간 특수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실존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신학이라는 것도 개인의 요구와 결단을 요구하는 학문이었고, 진리도 참여함으로써만 얻어지는 '참여의 진리' 였다. 여기서 진리는 더 이상 객관적 · 과학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대상적인 체계 속에 해소되어 버리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그러한 것으로는 인간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마르셀에 의하면, 하느님 역시 인간의 전적인 헌신에 의해서만 '나' 에게 존재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느님은 언제나 '나' 와의 인격적 관계 안에 있을 때에만 하느님이기에, 하느님은'나' 에게 언제나 '당신' 이다. 만일 하느님이 3인칭으로 객체화된다면 이미 사라져 버린다. 곧 하느님을 만나는 곳에서 '나' 도 참된 '나' 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마르셀의 입장이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하느님과 인간, 은총과 책임, 영원과 시간 등은 서로 의지하면서도 대립적이고, 이러한 점에서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이다. 영원한 하느님이 시간적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과 영원이, 하느님과 인간이 교차한다는 사실에 대한 신앙에 있다. 이 신앙은 헤겔식의 변증법적 상호 연결선상에 있는 운동과는 다른 것이다. 그 신앙은 절대적인 역설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역설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혹과 절망의 상황에서 비약하게 하는 실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이다. 이러한 '비약' 은 곤경에 처한 인간의 실존적 결단 즉 신앙의 결과이지만, 하느님이 인간 안으로 찾아옴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 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으로 인간은 예수와 하나가 되며,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바르트(K. Barth, 1886~1968)의 신(新)정통주의 신학이나 틸리히(P. Tillich, 1886~1965)의 실존주의 신학에서는 물론, 고가르텐(F. Gogarten, 1887~1967)과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의 변증법적 신학 · 실존론적 신학 등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실존 신학 사상〕 실존주의 사유 맥락에서 진리는 실존적 또는 주관적 참여를 통해서만 알려진다. 물론 이 참여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었기에 하는 참여가 아니다. 유한한 인간은 현재 객관적인 '불확실함' 에 처해 있다. 인간은 이 실존의 불확실함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유는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모험을 통하여 신앙을 실현해야 한다는 틸리히의 신학에 반영되고 있다. 그의 신학의 실존주의적 입장은 불안과 회의 등 인간 실존의 무의미성을 극복하려는 시도 안에서 존재 자체로서의 하느님과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거칠 때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본질주의적 시각의 신학이 주로 "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를 묻는 신학이었다면, 실존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로 묻는셈이다.
틸리히가 신학의 내용을 실존적으로 구성해 나갔다면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자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 철학을 이용해서 루터(M. Luther, 1483~1546)의 신학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바르트는 하느님과 인간은 전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하느님을 파악할 수 없다는 시각을 견지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에 대해 전적인 타자이며,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자신의 신학 체계를 인간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은, 그에 앞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 차이를 전제하고 강조하였던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이 크다. 바르트는 "내가 만일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극적 의미로서나 적극적 의미로서나 시간과 영원은 무한한 질적 차이를 지니며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다고 하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언제나 상기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하느님과 인간은 대립적이다. 본질주의 철학의 집대성자라고 할 수 있을 헤겔이 정(正)과 반(反)의 종합(合)을 말하였지만, 바르트에게는 연결되는 종합의 가능성이 없다.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바르트에게는 하느님과 인간, 은총과 책임, 영원과 시간 등이 서로 의지하면서도 대립적이었다.
불트만은 우리가 바로 여기 있다는 사실로서의 현존재(Dasein)와 현존재의 존재 방식인 실존을 거론한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아 성서의 '실존론적 해석' 을 시도하였는데, 신약성서의 세계관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령 그노시스주의의 영향으로 신약 시대에는 우주를 세 개의 층으로 보고, 신들은 하늘에, 악마는 지하에, 그리고 인간은 그 사이인 땅 위에 거주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불트만은 이 우주관을 인간이야말로 '본래적 실존' 과 '비본래적 실존' 사이에 있는 가능적 존재임을 말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런식으로 불트만은 성서의 고전적 상징 내지 교리를 현대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맞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객관적 내용을 포기하고 현대적으로 해석된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장을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에 그의 실존 신학적 의의가 있다.
이와는 달리 라너(K. Rahner, 1904~1984)는 다른 방식으로 실존주의적 신학 경향을 드러내었는데, 하느님은 애당초 인간과 분리되어 있다는 식의 대상적(對象的) 하느님 이해를 거부하고, 인간의 하느님 인식은 본래 주어져 있는 인간의 실존론적 구조에 상응하여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면서 진리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본래적 인식 구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칸트(I. Kant,1724~1804)의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인간을 중시하는 현대의 상황에 어울리는 신학을 이루고자 하였다. 인간의 본래적 구조는 하느님으로부터 옴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가운데, 신학을 인간학 위에 정초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라너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의 본래적인 구조를 "초자연적 실존 범주" (Dasübernatürliches Existential)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는 인간을 인간이 되도록 해주는 실존론적 구조이다. 라너를 실존주의 신학자라고 단순히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지만, 하이데거를 통해 전달된 실존적 요소가 그의 신학에서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비 판〕 실존 신학에서 인간의 실존적 경험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틸리히가 지적하였듯이, 실존 신학도 참으로 '신학' 이기 위해서는 본질주의적 접근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실존적 경험을 틀 지우려는 신학적 시도는 불가피하게 보편적 관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언어의 상통성과 보편성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편성은 결국 본질 개념을 지시한다. 따라서 철저한 실존주의자였던 사르트르의 "인간의 본질은 그의 실존이다"라는 말은 본질주의적인 틀이나 선재 관념 없이는 실존주의적 분석도 불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신학은 인간의 실존적 결단 내지는 참여 행위와 더불어 언제나 그 결단과 참여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신학이 '원형' 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주의적 구조는 피할 수 없다. 신학이 신학인 한, 언제나 보편적 · 원천적 사건과 개념을 이용하게 된다. 따라서 마땅히 실존적 태도와 본질적 접근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라너, 카를 ; 마르셀, 가브리엘 ; 바르트, 카를 ; 불트만, 루돌프 ; 사르트르, 장-폴 ; 실존 철학 ; 키에르케고르 ; 틸리히 ; 하이데거)
※ 참고문헌 John Macquarie, Twentieth Century Religious Thought :The Frontiers of Philosophy and Theology 1900~1980, London, SCM Press, 1981/ Eberhard Simons, Existence, 《SM》 2/ W. Andrew Hoffecker ed., Buil-dingA Christian World View, vol. 1,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House, 1986/ Wolfgang Nethöfel, Evangelisches Kirchenlexikon :Intemationale Theologische Enzyklopädie, Bd. I,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86/ Jiirgen Moltmann, Was ist Heute Theologie(차옥숭 역,《오늘의 신학 무엇인가》, 한국신학연구소, 1989)/ Paul Tillich, Pers-pectives on 19th and 20th Century Protestant Theology(송기득 역,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한국신학연구소, 1980). 〔李贊洙〕
실존 신학
實存神學
〔영〕existential theology · 〔독〕Existenzthe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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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