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철학

實存哲學

〔독〕Existenzphilosophine · 〔영〕existen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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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집단에 속해 있는 일반적인 한 존재로 보지 않고, 완전히 독자적이며 타자(他者)와 구분되는 '개인'으로 보며, 그 개인의 자유와 현 존재의 실현 양식인 실존을 강조하는 철학.
〔기원과 성립〕 실존 철학은 20세기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지만, 그 근원은 19세기 초와 중반에 걸쳐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실존 철학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절대 정신이 전개되는 계기라고만 보는 헤겔적인 사유를 필두로 한 독일 관념론에 대한 반대 사조로 등장하였다. 즉 헤겔(G.W.F. Hegel, 1770~1831)은 개별적인 인간을 절대적인 이념(Idee)이 전개해 나가는 하나의 계기로 보면서 개인을 해체해 버렸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서 헤겔처럼 보편자가 앞서 있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實證主義,positivisme)가 대두되었는데, 실증주의는 실존 철학이 내세우는 구체적인 개인이 지탱될 수 없다면서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처럼 헤겔 철학과 실증주의는 새로운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개인의 가치를 떨어뜨려 놓았던 것이다. 실존 철학은 이러한 시점에서 등장하여, 개인을 '실존' 이라고 외치며 개인에게 그 깊이와 발판을 부여하였다.
실존 철학의 길을 앞서 마련한 것은 독일의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us)였다. 낭만주의는 인간을 구체적인 실존이게 하고, 인간에게 존재의 내용을 부여함으로써 실존 철학이 나아갈 길을 마련해 주었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실존의 문제가 '자유 안에' 있다고 본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의 후기 철학과 니체(F.Nietz-che, 1844~1900) 및 베르그송(H. Bergson, 1895~1941)의 생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것이 독자적이라는 의미를 일깨워 주는 데 기여하였다. 셀링은 실존의 문제는 보편적인 것의 논리적인 필연성을 넘어서서 자유를 지향하며, 단순한 이성의 저편에 있는 근원으로서의 의지(의욕)를 요청하였다. "근원적인 존재(근원적으로 있는 것)는 의지(의욕)"라는 것이다.
〔실존 철학자들의 사상〕 철학자에 따라 실존의 개념과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실존 철학은 동일하지 않고, 그 개념은 때로 의문 투성이로 남기도 한다. '순수한' 실존 철학은 없고 실존 철학 사상가들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실존 철학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실존 철학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키에르케고르 : 실존 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이다. 그는 인간을 개인인 실존이라고 한 최초의 인물이며, 그의 '실존 신학'은 실존 철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실존 신학'은 실존을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래적인 과제로서 받아들여야 할, 타인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스스로 있음'(Selbstsein, 自己存在)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오직 신앙 안에서만, 즉 모든 일시적인 것을 뒤흔들어 놓은 불안과 절망 속에서만 참된 실존인 하느님에 의해 정해진 '자기 자신' 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고, 실현시켜 나간다고 하였다. 이것은 남에 의해서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또 이렇게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하느님에 근거를 둔 신앙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이었는데, 이를 그는 '비약' (飛躍)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비약' 이 정상적 ·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을 '역설' (paradox)이라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에게는 이처럼 역설적이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독일의 실존 철학자들 : 독일 실존 철학의 대표자로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를 꼽을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를 잇는 실존 철학의 제2 인자라고 할 수 있는 야스퍼스는 초기에 칸트(I. Kant, 1724~1804)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에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그에의하면, 실존으로서의 개인 즉 '개별자' (個別者)는 일반적이지 않고 일회적이며, 역사적인 상황 안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개별자' 는 불안 속에서 경험되는 '무'(無)에 대항해서, 결단을 통해 자기 자신의 '스스로 있음' (자기 존재)을 주장하여야 한다. 또 개별자의 실존은 초월(超越)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초월은 고통 · 죽음 · 죄의식 · 투쟁 등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드러나고, 실존은 이에 부딪혔을 때 좌절한다. 그래서 실존은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기 위하여 '초월'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신앙' 이 요청된다. 야스퍼스의 실존 철학 사상이 '좌절의 실존 철학' 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독일의 실존 철학을 진정으로 촉진시킨 철학자는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처럼 평가했지만, 하이데거 자신은 자신의 철학이 실존 철학이나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해석되는 것에 항의하였다. 아무튼 그는 자신의 저서 《존재와 시간》(Sein undZeit, 1927)에 수록된 철학적인 분석들이 새로운 존재 철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실존 철학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을 실존 철학이라고 보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가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실존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실존은 '세계-내-존재(세계 안에 있는 자)'요, 따라서 인간이며, 이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을 안고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실제로 근심이 있다는 것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실존은 존재를 새로이 해명하기 위한 수단이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있어서 자기의 '실존 해명' 은 기초 존재론이다. 인간의 본질은 존재를 향해 '스스로를 벗어나는 것' (Ex-sistens, 脫自)이요, 따라서 존재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실존 철학자들 : 독일 실존 철학자들은 다소 사변적으로 실존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주로 문필가들이 소설이나 희곡을 통하여 실존주의를 표방하였으므로 더 대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프랑스 실존 철학의 대표자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는 독일 철학자들인 하이데거 · 후설(E. Husserl, 1859~1938) · 헤겔 등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으나, 후에는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완성하였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 안에는 실존이 본질보다 앞서 있다. 즉 그전까지의 철학자들이 주장하였던 것처럼 본질이 실존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실존이 먼저 있고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자유이며, 이 자유가 인간의 본질과 생활의 가치를 규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유로서, 하느님과 규범도 없이 완전히 홀로 내맡겨져 있어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심지어 자유에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맞서 있는, 곧 완전히 자기 자신이 아닌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자기 자신이 아니게 하는 것이나 무(無)의 방해를 받아, 자기 자신일 수 없는 것은 무에 의해 부서진 존재이다. 이 부서진 존재에는 부서지지 않은 완전한 존재로서 의식이 없는 육신이 마주서 있다. 그런데 의식은 반드시,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그러나 헛일이 되고, 그런 노력이 아무런 필요도 없는 열정 즉 필요 없는 고통 혹은 '부조리' (不條理)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와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프랑스 실존 철학의 대표자는 마르셀(G. Marcel, 1889~1973)이다. 그의 기본 사상은 키에르케고르와 독일 실존 철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사르트르보다 먼저 등장하였다. 마르셀도 인간의 인격과 그 인격의 자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구체적인 상황을 밝혀 보면 우선 부서지고, 본래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인간이 명상과 충성스러움을 통하여 초월로 뛰어넘어 들어가 하느님을 '너' 라고 부를 수 있게 되면,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셀에게 있어서 실존은 불안이나 근심보다는 희망과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비판과 영향〕 실존 철학은 크게 유신론적인 실존 철학과 무신론적인 실존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 등은 유신론적 · 그리스도교적인 실존 철학자들이고,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는 무신론적인 실존 철학자들이라고 평해진다. 실존 철학에서는 인간이 그냥 있기만 하는 그런 자가 아니라 실존한다고 한다. 곧 인간은 자기 존재의 내용을 다 갖추고 있고, 이 내용을 실현시키려고 결단하는 데서 자기 스스로를 찾아내는 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의지와 자유, 곧 행동 전체가 문제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실존 철학에서 요구되는 것은 개인적인 감동과 진지한 태도이다. 또한 실존이 초월자 곧 세계를 넘어선 그 어떤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월자를 에워싸고 있는 장막이 실존 철학의 한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관념론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것 전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동시에 경험한 것이나 현상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어선 것들은 모두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런 면에 실존 철학의 위험이 있는데, 즉 모든 것을 자기의 실존과 관련 지어 보려고 하고, 인간의 실존적인 측면만 강조하거나 자기 실존의 여러 측면들만 실현하려고 계획하는 것 등에 실존 철학의 맹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존 철학은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존적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언제나 존재에로 나아가는 새롭고 삶이 가득한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삶을 계획해 나가면서 살고 있는데, 이런 일이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실존 철학은 20세기 전반, 즉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30년대에 모든 철학 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세계를 풍미하였다. 또 20세기 그리스도교 신학에 미친 영향도 상당히 크고, 동유럽 지역에도 알려져 개인과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사상의 영향으로 소위 개인을 무시하고 집단으로서의 인간만을 내세우던 옛 동유럽 공산권이 허물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0년대 이후 크게 유행하였는데, 특히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철학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 후 1970년대에 들어 점차 그 열기가 줄어들더니 지금은 겨우 대학 강단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심지어 많은 대학들의 철학과 교과 과정에서마저도 실존 철학이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에 따른 유행 탓도 있겠지만, 철학자들이 너무 어렵게 철학을 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 낭만주의 ; 마르셀, 가브리엘 ; 사르트르, 장-폴 ;실존주의 신학 ; 야스퍼스, 카를 ; 키에르케고르 ; 하이데거)
※ 참고문헌  《키에르케고르 전집》/ 《하이데거 전집》/ 《야스퍼스전집》/ 《사르트르 전집》/ W. Brugger, Philsophisches Woerterbuchl J. Ritter, Historisches Woerterbuch der Philosophiel 조가경, 《실존 철학》,박영사, 1987/ F. Zimmermann, 이기상 역,《실존 철학》, 서광사, 1990/ M. Müller · A. Halder, 강성위 역,《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 1988.〔姜聲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