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적인 사실의 배후에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초험적(超驗的)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앎의 대상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실에 한정된다는 입장. 이는 근대 자연 과학의 방법과 성과에 의거하여 물리적 · 정신적 현상 세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원 류〕 가장 고유한 의미에서 '실증주의' 는 콩트(A.Comte, 1789~1857)의 이론을 뜻한다. 콩트는 1827년 4월부터 이를 개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1830년부터 저서를 통하여 발표하였는데, 1842년까지 여섯 권으로 출판된 그의 《실증 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를 비롯하여 《실증주의 정신에 관한 강론》(Discours surI'Esprit positif, 1844)과 《실증 정치 체계》(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1852~1854)에서 실증주의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사변적인 형이상학적 고찰을 물리치고 경험 과학적 방법에 입각한 철학을 넓은 의미에서 '실증주의적' 이라고 규정한다면, 로크(J. Locke, 1632~1704)나 흄(D. Hume, 1711~1776) 등의 영국 경험론(經驗論)이나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에서도 실증주의의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실증주의의 창시자 콩트에 앞서 '실증주의' 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생 시몽(C.H.R. Saint-Simon, 1760~1825)이었다. 콩트는 에콜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의 학생 시절에 생 시몽에게서 실증주의적 방법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며 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과학이 정확성을 띌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생 시몽에게 있어서 실증주의는 19세기 산업 문명을 주도한 과학 정신과 유사한 개념이었지만, 푸리에(C.Fourier, 1772~1837)나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왜곡된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결국 콩트에 의해서 비로소 실증주의라는 용어가 철학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실증주의는 유심론(唯心論)과 유물론(唯物論)을 모두 거부하고 이성주의적 선험성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험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콩트의 학설과 범위〕 콩트의 실증주의는 사물의 본질이나 그 내부에 감추어진 목적이나 원인을 발견하려는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시도도 하지 않는다. 또 사물의 본성에는 하나의 질서가 존재하며, 인간은 그 질서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가정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콩트의 실증주의가 과학적 인식의 실증적 이론이자 그 실증성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과학에 대한 하나의 철학은 아니다. 초기 저술 때부터 콩트는 사회를 재조직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실증주의적 학설은 생물학적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사회학적 현상들이 쉽게 변경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행동 특히 집단적 행동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실증주의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것들 간에 성립하는 항존적 관계들을 분석해 내어 과학 법칙으로 이론화하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현상을 단지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를 재조직함에 있어서 그 방법의 역할을 하는 콩트의 실증주의는 단순한 하나의 사고 방식이라기보다는 사회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결 방법이며, 이는 사회 과학 혹은 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실증주의는 역사 철학 · 실증적 정치학·실증적 종교학을 포괄하여 그것들의 종합으로 완성되며,그 신조는 "진보를 목표로, 질서 를 기반으로, 사랑을 원리로" 이다.
《실증 철학 강의》 : 《실증 철학 강의》는 13년에 걸쳐 여섯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제1권(1830. 7)의 첫 번째 강의는 <강의 목적의 설명 또는 실증 철학의 본성과 사명에 대한 일반 고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두 번째 강의는 강의 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까지 인류가 획득한 지식의 총체를 하나의 동일한 이론적 틀 안에 포괄하려는 것이 여기서 추구하는 실증 철학의 목적이며, 이를 염두에 두고 자연 철학의 여러 다양한 분과들이 각 권에서 검토되고 있다. 제2권(1835.4)에 수록된 19~27번째 강의에서 콩트는 천문학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28~34번째 강의에서는 물리학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이렇듯 각 기초 과학들의 일반 정신을 분석하면서 콩트는 물리학의 발전을 위해 수학적 이론들을 물리학의 다양한 분과들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한편 제3권(1838. 3)에 실린 35~39번째 강의에서는 당시에 급속히 발전한 화학에 대한 콩트의 남다른 관심이 발견된다. 또 40~45번째 강의에서 콩트는 생물학적 지식 체계를 구분하여 해부학 · 생물 분류학 · 식물적 생 · 동물적 생 등을 살펴본 후 정신적인 기능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끝으로 자연 철학 전체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있다. 여기서 거론되는 모든 과학은 그 대상의 단순성과 보편성으로부터 복합성과 구체성의 방향으로 서열이 정해져서 수학 · 천문학 · 물리학 · 화학 · 생물학 · 실증 철학(사회학)의 순서로 순위가 매겨졌다. 이 중 여섯 번째인 실증 철학은 가장 발달된 학문으로서 보편성은 가장 떨어지나 가장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학문이고, 가장 먼저 생긴 수학은 특정한 연구 대상은 없지만 천문학 이하 다섯 가지 과학에 대하여 기초를 제공하는 방법 과학이다.
수학 이외의 나머지 과학들은 각각 앞의 것으로부터 생겨났으므로 뒤의 것은 앞의 것에 의존한다. 이런 과학들의 발전 단계에서 필연적 귀결은 실증 철학으로서 인간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사회학이다. 콩트에 의하면, 수학과 천체 물리 현상을 다루는 천문학은 일찍이 고대에 출현하였고, 17세기 뉴턴(I. Newton, 1642~1727)에 이르러 제 모습을 갖추게 된 물리학과 라부아지에(A.-L.Lavoisier, 1743~1794)에게서 시작된 화학은 지구 물리 현상을 다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무기체 현상을 다루는 과학들에 유기체 현상을 연구하는 생물학이 비샤(M.-F.-X. Bichat, 1771~1802)에게서 출발하여 자연 현상 전체를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바야흐로 사회 물리학이 도래할 시기이며, 그것이 콩트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모든 지식을 활용하여야 하며, 따라서 그것들을 통합한 종합 과학으로서 사회 물리학은 모든 과학 즉 모든 지식의 정점이라고 하였다.
제4권(1839.4)의 46번째 강의는 질서와 진보를 조화시키려는 콩트의 기본 입장에서 이미 1822년에 밝힌 바있는 그의 주장, 다시 말해 신학과 형이상학의 대립과 실증 철학에 의한 극복을 피력하고 있다. 48번째 강의에서는 실증적 방법의 주요 특징을 언급하였고, 49번째 강의에서는 사회 물리학과 여타의 실증 과학을 비교 · 검토하였다. 그리고 50번째 강의에서는 사회에 대한 정태적(靜態的) 분석을, 51번째 강의에서는 그 동태적(動態的) 분석을 다루고 있다. 제5권(1841.3)은 사회 철학의 역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기서 콩트는 사회의 진보를 결정하는 요인인 지식 · 물질 · 도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식이라고 보고 지식의 진보를 세 단계를 통해 설명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신학적 단계' 로서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초월적 존재(神)에 의존하는 단계이며, 이를 다시 배물교(拜物敎, 원시 시대) · 다신교(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이집트) · 일신교(중세 가톨릭 시대)의 시기로 나눈다.
두 번째 단계는 형이상학적 단계로서 신학적 단계의 초월적 존재 대신 추상적인 본질, 즉 형이상학적인 본질을 지식의 설명 원리로 채택하였다. 유럽의 경우 14세기 초부터 이 형이상학적인 단계에 접어들어 16세기 이후 3세기 동안이 그 절정기였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지식의 발전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가 실증 과학의 단계이다. 콩트는 14세기 이후 발달한 과학의 성과를 종합의 정신으로 조직화하는 실증 철학이 완비되면 비로소 이 단계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끝으로 제6권(1842.8) 콩트의 '개인적 서문' 으로 시작하여 56번째 강의부터 60번째 마지막 강의까지 실증 철학에 대한 보충적인 논의와 함께 방대한 결론을 담고 있다.
평가 : 콩트의 철학이 목표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사회체계를 재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 시몽의 직접적 실천 방식과는 달리 사회를 연구하는 특정한 과학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목표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한편으로 사회 구조를 다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의 일반적인 방법을 다루면서 이 둘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만이 사회를 재조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 과학이 배제된 과학 정신 그 자체는 사회를 조직함에 있어서 무익하고, 또 여러 과학을 통한 사전 준비 없이 사회적 사실들만을 다루는 정치 경제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는 과학의 완전한 위계 질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을 결합한 제3의 대안을 마련하려는 작업은 곧 실증주의의 철학적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며, 사회 물리학의 방법적 원리로 실증주의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과학을 종합해 보려는 콩트의 시도는 59세의 나이로 사망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학설의 변천과 영향〕 스승 콩트의 학설에 충실하지 못하였던 제자 리트레(P.-E. Littré, 1801~1881)는 실증주의를 통속화시켜 또 다른 하나의 실증주의를 만들어 냈다. 그는 실증적 정치학과 종교학을 보수적이고 신비적인 성향을 갖는 것으로 간주하여 제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콩트의 《실증 철학 강의》를 원용하였던 이유는 콩트의 공화주의적이며 반교권주의적인 실증 철학이 계몽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 남아 있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실증주의라는 용어는 점점 더 폭넓게 사용되어 그 의미가 매우 모호해졌다. 많은 저자들에게 '실증주의자' 라는 호칭이 부여되었을 뿐 아니라 르낭(E. Renan, 1823~1892)과 텐(H. Taine, 1828~1893)처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실증주의자로 간주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당시 실증주의는 지성 개혁에 의거하여 사회 개혁을 기획함이나 모든 신학적 · 형이상학적 학설에 반대하여 오직 과학적 방법만을 신뢰함을 내포하는 개념이 되었다. 철학사가인 브레이에(E. Bréhier, 1876~1952)에 따르면, "실증주의의 중심 개념은 과학적 통계수치의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내용을 철학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증주의 개념은 인식론과 개념사의 영역에서 과학적 언명의 본질에 관한 연구와 과학적 진보의 조건에 관한 연구의 열기를 고취시켰다. 이렇게 해서 실증주의는 콩트와 관련된 학설뿐만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인식만을 참된 지식으로 보고 경험 과학이 제시하는 확실성을 모든 학문이 추구해야 할 범형으로 보는 입장을 두루 포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실증주의는, 과학에서와 같이 철학에서도 인간 정신은 끊임없이 경험에 조회하고 모든 선천성을 포기해야 언어적 차원에만 집착하여 발생하는 고질적인 과오를 면할 수 있으며, 또 칸트(I. Kant, 1724~1804)가 말하는 '물자체'(物自體)와 같은 영역은 우리에게 접근 가능하지 못하므로 인간의 사유는 관계와 법칙만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그 의미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실증주의는 본래 콩트의 학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며, 리트레, 르낭, 텐뿐만 아니라 밀(J.S. Mill,1806~1873)이나 스펜서(H. Spencer, 1820~1903)의 이론들도 역시 지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실증주의는 프랑스적 기원에서 볼 때, 콩트보다는 콩도르세(M.J.A.N.de C. Condorcet, 1743~1794)와 더욱 관련이 있다고 볼 수있다. 반형이상학적이며 상대주의적인 경향을 갖게 된 실증주의는 근대 자연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19세기 후반 사상계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실증주의는 특수한 용례로서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롬브로소(C. Lombroso, 1835~1909)의학설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그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를 만한 소질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 이상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실증주의 : 밀과 스펜서는 버클리(G. Berkeley, 1685~1753)와 흄 등의 영국 경험론자들을 재해석하면서 콩트의 근본 명제를 계승 · 발전시켜 영국적 실증주의를 세웠다. 밀에 의하면, 학문의 역할은 의식의 사실을 탐구하는 것인데 이때 의식의 사실은 감각들의 결합이며, 논리학은 그 속에서 본질적인 것들을 추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펜서는 모든 학문을 현상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환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신실증주의 혹은 논리 실증주의 : 실증주의의 과학주의가 과학 비판 즉 과학의 성립과 근거에 관한 연구를 진전시킴에 따라 과학의 성립 근거인 경험 자체에 대한 비판이 중심 주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형성된 또 하나의 넓은 의미에서의 실증주의가 마흐(E. Mach, 1838~1916)나 아베나리우스(R. Avenarius, 1843~1896)의 '경험 비판론'과 푸앵카레(H. Poincaré, 1854~1912)의 '약속설' (conventi-onalisme)에까지 실증주의의 맥이 이어지게 하였다. 마흐의 후임으로 빈 대학으로 온 슐리크(M. Schlick,1882~1936)를 중심으로 카르나프(R. Carnap, 1891~1970) ,노이라트(O. Neurath, 1882~1945), 바이스만(F. Waismann) ,파이글(H. Feigl), 카우프만(F. Kaufmann) 등 철학자 · 수학자 ·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빈 학파' (Wiener Kreis)를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신(新)실증주의 또는 논리 실증주의가 생성되었는데, 신실증주의 또는 논리 실증주의라는 표현은 바로 '빈 학파' 의 작업을 통칭하기 위해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실증주의 또는 논리 실증주의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개념들로부터 결론을 도출하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 인식 이론에 의해서 '통일 과학' 을 세워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때 형이상학의 명제들을 제거하는 작업은 바로 의미의 논리적인 분석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논리적 경험주의' 라고도 불리는 이 실증주의는 경험론뿐만 아니라 형식 논리학도 물리치는 콩트의 실증주의 입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유심론적 실증주의 : '정신주의적 실증주의' 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유심론적 실증주의' (positivisme spiritualiste)라는 용어는 라베송 몰리앵(J.-G.-F.L. Ravaisson-Mollien, 1813~1900)의 저서 《19세기 프랑스 철학》(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e siècle, 1868)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도래할 프랑스 철학은 멘 드 비랑(M.-F.-P. Maine de Biran, 1766~1824)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의 주도하에 '유심론적 실재론' 또는 '유심론적 실증주의' 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19세기부터 프랑스에서의 철학 활동은 국가가 관장하게 되었고 공공 교육의 한 장치가 되어 대학 철학 또는 강단 철학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 당시 '신(新)철학' 이라고 불리던 이와 같은 공인 철학은 처음에는 절충주의(eclectisme)를 표방하며 모든 학설에서 타당한 것만을 취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를 넘어 두 번째 국면, 즉 라베송, 라슐리에(J. Lachelier, 1832~1918),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이르러 비로소 절충주의를 넘어서 일종의 실증주의가 성립되었다. 유심론적 실증주의는18세기의 감각주의를 배척하며, 심리학적 방법을 철학의 방법으로 사용하여 존재 일반의 조건들을 의식과 그 존재 양식에서 찾는 내적 관찰에 의존함을 내세운다. 이와 같은 입장을 베르그송의 제자 르 루아(EdouardLeRoy, 1870~1954)는 영 · 미 논리 실증주의자들에 앞서 이미 1901년에 '신실증주의' 라고 명명하였다. (⇦ 콩트, 오귀스트 ; → 논리 실증주의 ; 밀, 존 스튜어트 ; 스펜서,허버트)
※ 참고문헌 Sylvain Auroux ed., Encyclopédie philosophique univer-selle, Puf., 1990/ Emile Bréhier, Histoire de laphilosophie, Puf., 1981/ Paul Edward ed.,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MacMillan, 1967/ André Lalande, Vocabulaire technique et critique de la philosophie, Puf., 1926/ Jacques Muglioni, Auguste Comte, Kim, 1995. 〔車乾熙〕
실증주의
實證主義
〔라〕positivismus · 〔영〕posi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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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실증주의를 창시한 오귀스트 콩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