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審判

〔라〕judicium · 〔영〕jud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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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하였던 감정 및 언행에 대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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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하였던 감정 및 언행에 대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

인간이 세상에 있는 동안 행하였던 감정 및 언행(言行)에 대하여, 하느님이 복음과 율법에 따른 선악(善惡)의 정도를 기준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판결을 내리는 것. 사심판(私審判, judicium particulare)과 공심판(公審判, judicium universale)으로 구분되며, 세상을 떠난 후 이루어지는 판결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 · 연옥 · 지옥 가운데 어느 한 곳으로 가게 된다.
〔의 미〕 '심판' 이라는 용어에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논리학적인 측면에서 이 용어는 여러 가지 개념들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 또는 부정하는 하나의 명제에 불과하지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는 분별의 능력과 온전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닌 하나의 자질을 가리키는 말이다(시편 119, 66 : 필립 1, 9) . 법률학적인 측면에서 '심판하다' 는 '시험하다' 또는 '시도하다' 라는 의미이고, '심판' 은 하나의 법적 결정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 · 법적 차원에서 '심판' 의 근본적인 틀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이룩된 신성한 도덕적 질서이다. 이 질서의 중심적인 개념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며, 이들을 주관하는 원리는 "사람은 자기가 씨 뿌린 것을 거두는 법" (갈라 6, 7)이라는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복음과 율법에 따라 사람들과 사람들의 감정 및 행위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고, 역사 가운데에서 그리고 인간 역사의 종말에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심판의 기준은 율법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율법과 복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최후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로마 8, 1). 즉 믿음만으로 인간은 의롭게 되고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로마 3, 24-26).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거부할 때 인간은 율법 아래 놓이게 되며, 그 율법에 의하여 단죄와 심판을 받는다(로마 2, 12 ; 갈라 2, 16).
〔구약성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심판은 신앙의 한 요소이며, 하느님의 심판에 대하여 그들은결코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신앙에 의하면 하느님은 온 세상의 재판관이시다(창세 18, 25 ; 시편 96, 10 ; 이사 33, 22 : 히브 12, 23 ; 야고 4, 12 ; 1베드 1, 17). 또한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므로(창세 1, 1) 만물의 주인이다. 따라서 그의 재판권은 제한이 없으며,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하느님은 우주와 인간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으로 법을 정하고 정의의 규정을 정한다. 하느님은 선과 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분으로, 선과 악 사이를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는 정확성을 가지고 분별하신다(창세 2, 17 ; 3, 4 ; 4, 22 ; 1열왕 3, 9). 하느님의 시야에는 그 무엇도 숨겨질 수가 없다. 하느님은 겉모양 뿐만 아니라 "사람의 뱃속과 심장을 달아 보시는 분" (예레 11, 20 ; 17, 10)으로서, 사람의 가슴속 은밀한 생각까지도 모두 꿰뚫어 보신다(욥기 22, 13 ; 로마 2, 16 ; 1고린 4, 5). 또한 역사의 주인으로 하느님은 역사의 모든 사건을 지배하며, 의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악인이 벌을 받게끔 안배하신다(창세 18, 23-25).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정의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리고 불의에는 벌을 내리는 최고의 재판관으로 믿고 의지하였다(창세 16, 5 ; 31, 49 ; 1사무 24, 16 예레 11, 20).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온 우주의 심판자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고(시편 67, 5 ; 1사무 2, 10), 이 세상 재판관들의 부정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요청하였다(시편 82편) .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심판을 후세에서가 아니라 바로 역사의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창세 3, 14-19), 노아의 시대에 대홍수에서(창세 6, 13),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창세 18, 20 : 19, 13),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이집트인들의 처벌에서(지혜 11, 10),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불충실로 광야에서 자신들에게 내린 직접적인 심판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전기 예언자들 시대에 하느님의 심판은 그들 메시지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행적과 행동에 따라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에제 36, 19),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을 고발하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상이 예언 전반에 깔려 있다(이사 1, 24-25, 5). 하느님의 이러한 심판은 모든 인류에게 미치고 있지만(아모 1, 2ㅡ2, 3 ; 에제 25, 1-17 ; 예레 25, 30-38), 하느님은 의인과 죄인을 똑같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의인의 구원을 보다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하여 죄인을 단죄하시는 것이다(에제 34, 17-22).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 중에 "남은 자"들만이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다.
한편 후기 예언자들 특히 유배 후기 묵시 문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결정적인 구원에 앞서 모든 죄인과 하느님을 대적하는 원수에 대한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였다. "야훼의 날"로 일컬어지는 이날의 심판은 하느님께서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며(이사 66, 8),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이방 민족들을 모아놓고 종말론적 추수와 포도 수확을 하실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요엘 4, 12-14). 이 심판은 일종의 법정적인 재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 건설 이전인 이 시대의 마지막 이전에 일어나 각 나라들이 패망하게 될 전쟁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심판은 다니엘서 7장 9-10절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태곳적부터 계신이"가 그의 보좌(寶座)에 앉아서 책을 펴 놓고 심판을 거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최후의 심판은 형식적인 절차로서 거의 자동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행위는 하늘의 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공과(功過)에 따라 심판받기 때문이다. 이때 의인들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겠지만, 죄인들은 공포의 날이 될 것이다(아모 5, 18-20 ; 지혜 4, 15-16).
이러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사상은 유배 후기의 시편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일어나소서, 세상을 재판하시어 교만한 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소서"(시편 94,2).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는 이 심판은 닥쳐올 미래의 무서운 사건임에 틀림없고, 인간은 누구도 그 심판에서 면죄받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만이 인간을 그 심판에서 구해 줄 수 있다. "당신의 종을 재판에 부치지 말아 주십시오. 살아 있는 사람치고 당신 앞에서 무죄한 자 없사옵니다"(시편 143, 2).
〔신약성서〕 신경(信經)의 내용 중에는 산 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이 언급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그분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셈을 바칠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가 육화한 것은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요한 3, 17 : 8, 16 : 12, 47). 비록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로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 각자는 그분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 그리고 행위 속에서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변함없는 시금석(試金石)이 되었으며,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존재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심판이었다. 그분이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옴으로써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요한 9, 39 : 12, 31), 세상의 임금(요한 16, 11)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요한 3, 18 ; 5, 24)이 심판을 받은것이다. 비록 유대인들이 심판자인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예수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사탄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 되었다(요한 12, 31). 왜냐하면 예수는 당신의 죽음과 동시에 성령을 파견하였으며, 변호자인 성령은 세상의 두목이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음을 드러내었다(요한 16, 8. 11). 결국 심판이란 하느님께서 내리신 판결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속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은 각자의 마음속 깊이 이미 이루어진 판가름을 환하게 드러낼 뿐이다.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보편적인 사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예수와 더불어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완성은 그분의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는 종말론적 예언자로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며(루가 11, 14-22 ; 17, 20 ; 마태 12, 22-29),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고 지상 위에서 그것의 실현을 시작하신다(루가 7, 19-23 ; 마태 11, 2-6).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활동하는 동안 세상 일의 심판자가 되기를 거부하였지만(루가 12, 14), 세상의 마지막날에는 영광 속에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을 각자 그들의 삶에 따라 심판할 엄청난 최후의 심판을 주재할 것이다(요한 5, 22-30 ; 8, 16 ; 사도 10, 42 ; 17, 31 ; 로마 2. 16 ; 1고린 4, 5 ; 2고린 5, 10 ; 2디모 4, 1. 8).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재림할 것이며,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고, 모든 나라들은 그 앞에 불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양을 염소와 구분하듯이 그들을 갈라놓을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던져질 것이다. 비록 마지막 심판에 대한 묘사가 마태오 복음에서만 발견되고 있지만,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설교에서 핵심적인 사상임이 신약성서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사도 행전 17장 31절에서는 "과연 그분은 정하신 사람을 시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고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이에 대한)확신을 주셨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그분은 우리에게 분부하시어,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사실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게 하셨습니다"(사도 10, 42),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각자 몸을 지니고 행한 대로 좋거나 나쁘거나 갚음을 받기 위함입니다"(2고린 5, 10)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심판의 결과는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첫 인간의 잘못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간(로마 5, 16. 18)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그 화를 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 죄로 인하여 죽으시자, 하느님은 죄의 멍에에서 우리를 풀어 주기 위하여 육체 속에서 죄를 처형하셨다(로마 8, 3). 모두가 유죄 판결을 받아야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거저 의롭게 되는 것이다(로마 3, 24-26).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이제 유죄 판결은 없다(로마 8, 1). 그러므로 신앙인은 용기와 확신을 갖고 심판의 날을 맞이할 수 있다(1요한 4, 17). 예수는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으며,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드러났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H. Ringgren, 《ER》 8, pp. 205~208/ J.A.T. Robinson, The Parable of the Sheep and Goats, 《NTS》 2, pp. 225~237/ R.H. Charles, Critical History ofthe Doctrine ofa Future Life in Israel, in Judaism, and in Christianity, 1913/ S.D.F. Salmond, Christian Doctrine of Immortality, 1904/ C.H. Dodd, Parable ofthe Kingdom, 1936/ R. Otto, Kingdom of God and the Son ofMan, 1943/ D.E. Holwerda, Holy Spirit and Eschatology in the Gospel John, 1959. 〔閔丙燮〕
〔교의 전승과 형성〕 교회 전승에는 성서에서 언급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불명확한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심판과 관련된 가르침은 특히 신경이나 신앙 고백을 통하여 나타났으며, 교회 초기부터 거의 모든 신경이나 신앙 고백은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 신경(DS 6), 아타나시오 신경(DS 75~76), 니체아 신경(DS 125~126),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DS 150), 에피파니오 신경(DS 42, 44), 제11차 톨레도 교회 회의(675) 신경(DS 540) 등이다.
사심판 : '개별 심판' 이라고도 하며, 사망 직후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유는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여러 종교나 철학 사상 안에서 자주 등장하였는데,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문헌이나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고르기아스》 (Gorgias)에 나오는 영혼의 심판에 관한 언급 등이다.
① 초기 교부들의 증언 : 교회 초기에는 육신 부활과 최후 심판 이전에 누구나 죽은 후 하느님의 얼굴을 본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우선 누구나 마지막날에 보상이나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최후 심판에 관한 성서의 강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세상 종말에 최후 심판이 있기 직전까지 1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왕국이 군림하게 된다는 천년 왕국설에 관한 요한 묵시록 20장 1-6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중에는 임종 때에 인간에 대한 심판의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비록 처음에는 심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교부들은 분명하게 죽음의 순간부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이 서로 분리된다고 주장하였다.
유스티노(Justinus, 100?~165?)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죽은 후 각각 따로 머물게 되며, 선한 사람들이 머무르게 되는 장소는 악한 자들의 장소보다 더 좋으며, 각자가 머무르는 그 장소에서 최후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고하였다(《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 5 ; PG 6, 488). 반면에 타시아노(Tatianus, 120~180)는 죽음과 영육의 분리를 구분지으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죽어 영육이 분리된 후 세상 종말에도 그치지 않는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하지만, 하느님을 아는 자들은 죽어 한 순간 영육이 분리될 뿐 소멸되지는 않는다(《그리스인들을 위한 강론》 13 ; 《TU》 4. 1, 14)고 하였다. 이 말은 악한 자들의 영혼은 육신과 분리될 뿐만 아니라 세상 종말에 가서 소멸되어 사라질 것이나, 선한 자들의 영혼은 한 순간 육신과 분리되지만 여전히 소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장은 죽은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죽음의 순간에 일어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60~223)는 순교자들의 영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은 지하로 인도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다가올 심판을 기다리면서 선한 사람들은 위로와 안식을 누리고, 악한 사람들은 벌과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교자들은 즉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하였다(《영혼론》 55, 58 ; 《CSEL》 20, 388, 394-395 ; 《부활론》 43 : 《CSEL》 47, 88-89). 푸아티에의 힐라리오(Hilarius, 315~368)는 루가 복음 16장 19-31절의 부자와 라자로 비유를 들어 지옥이 죽음의 순간에 죄인들을 삼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아브라함의 품속이나 고통의 장소 모두 마지막 날 영복(永福, beatitudo)이나 영벌(永罰, damnatio)의 심판을 기다리는 곳이라고 하였다(《시편 주석》 2, 49 ; 《CSEL》 22, 74). 영혼이 육신을 떠나자마자 받게 될 심판에 대하여 명확하게 언급한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는 이런 심판을 부활 후 받게 될 최후 심판과 구별하였다. 또한 그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면서 그러한 심판의 거부는 곧 복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완고한 행위라고 보았다(《영혼론) 2, 4. 8 ; 《CESL》 60, 341). 그러나 이것이 의인들이 부활하기전에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재론》 1. 13. 2 ; 《CSEL》 36, 67).
② 중세 이후 교의의 형성 : 사심판의 의미를 함축하는 '중간적인 상태' 에 대한 언급이 1274년에 개최된 제2차 리용 공의회에서 거론되었다. 서방 교회는 이러한 거론을 동방 교회와 재일치의 계기로 삼았는데, 당시 서방 교회는 사망 직후 개별적인 사심판이 있은 다음 천국에서 보상을 받거나 잠정적으로 연옥 단련을 받거나 지옥 형벌을 받는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동방 교회는 이와 같은 교의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공의회에서는 서방 교회의 교의 입장을 확고히 옹호하였지만, '사심판'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DS 856~859).
1336년에 교황 베네딕도 12세(1334~1342)는 교황령 <베네딕투스 데우스>(Benedictus Deus)를 통하여 하느님의 지복직관이 죽은 직후 의인들에게 이루어진다고 선언하였다. 아니면 얼마의 연옥 단련 후에 지복직관을 누린다고 하였으며, 죽을 죄 중에 세상을 떠난 자들도 마찬가지로 죽은 직후 곧 지옥 벌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같은 선언은 그의 선임 교황 요한 22세(1316~1334)가 1331년말과 1332년 초까지 아비농에서 했던 강론 중에서 육신 부활 전까지는 아무도 지복직관을 누리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황 요한 22세의 주장은 가톨릭 신앙에 맞지 않는 것이었으며 많은 소요를 불러일으켰으므로, 교황은 특별히 이 문제를 연구할 추기경들과 신학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들은 교황의 견해가 가톨릭 신앙에서 벗어난 것임을 밝혔고, 1334년 사망하기 직전 교황은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는 글을 썼다. 그 후 교황 베네딕도 12세가 이 문제를 보다 면밀하게 조사하여 엄밀한 신앙 교의적 정의를 발표하였는데, 사심판이라는 말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가르침에는 하느님의 사심판 교의가 함축되어 있었다(DS 1000~1002).
그 후 1439년 피렌체 공의회에서도 사심판을 함축한 교의 입장이 정립되었고(DS 1304~1306), 피렌체 공의회의 입장은 다시 1575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또 1743년에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는 동방의 마론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앙 고백문 안에서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피력된 사심판에 관한 교의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공심판 : ① 초기 교부들의 증언 : '최후 심판' (ultimum iudicium)이라고도 하며, 종말론에서 다루는 재림, 육신의 부활, 천국 · 연옥 · 지옥 등의 교리와 관련되어있다. 공심판은 초기 교회 때부터 사유되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회에 영향을 미쳐 왔다. 2세기경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는 하느님 심판의 의로움 때문에 육신의 부활은 필연적이라고 역설하면서, 만약에 심판이 영혼에 한해서만 이루어지고 육신은 영원히 분리되어 있다면 하느님의 심판은 의로움이 부족한 것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덕을 행하거나 사악을 저지른 자가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과 영혼이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하느님 심판의 의로움이 곧 부활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죽은자의 부활》 20 ; 《TU》 4. 2, 73).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Irenaeus, 130~200)는 그노시스주의에 대항하여 부활론을 주장한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 자체를 심판으로 보았다. 그것은 다시 올 예수 그리스도가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고 성부의 의지를 행하며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행한 사랑의 응답에 따라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려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이단 반박》 5, 27-28). 히폴리토(Hyppolitus Romanus, 170~236)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날에 행할 심판의 행위를 성부로부터 부여받은 그의 마지막 선교 활동이라고 하였다. 의로운 이들과 불의한 이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불려오게 되며, 심판의 전권을 위임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성부의 정의로운 심판을 수행하고 각자에게 그가 행한 바대로 갚아 준다(《그리스어 전집》 3 ; 《TU》 20. 2, 141)는 것이다.
락탄시오(L.C.F. Lactantius, 250?~321?)는 오직 하느님을 믿는 자들만이 심판을 받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거나 단죄를 받은 것이라는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진리와 일치하는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신의 훈시》 7, 20 ; 《CSEL》 19, 647~649). 이와 같이 초기 교부들의 공심판에 대한 증언들은 다소 명확한 용어로 표현되지는 않았어도 그 의미는 충분히 함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심판에 대한 증언들은 인간의 하느님과의 관계나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② 중세 이후 교의의 형성 :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에서는 이단인 알비파(Albigenses)에 맞서 다음과 같이 전통 신경들의 가르침을 요약하였다. "세상 종말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 선택받은 자들이나 버림받은 자 각각에게 그의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모두 다 각자의 육신을 가지고 부활할 것이며, 그때 그들이 행한 선하거나 악한 행실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악마와 더불어 영원한 벌을 받고,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DS 801). 그리고 제2차 리용 공의회에서는 공심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심판 날에 모든 사람들은 각자 몸을 지니고 행한 대로 좋거나 나쁘거나 갚음을 받기 위하여' (2고린 5, 10) 그리스도의 법정 앞에 출두할 것이다" (DS 854).
공심판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사유는 새로운 역사 의식의 영향을 받아 그 의미가 심화되고 새로워졌다. 구세사안에서 공심판의 의미를 보다 확연히 드러내려는 두 가지 사유가 공심판에 관한 전통적인 교회 사유에 첨부되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갈 의로움의 심판이었고, 두 번째는 인간에게 돌아갈 의로움의 심판이었다. 전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활 동안 지극히 제한되고 미비한 영광을 받았을 뿐이며, 수난의 비천함을 몸소 당한 후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가 갚음을 받을 의로움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 종말에 가서야 세상과 하느님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온전하게, 보다 깊고 넓고 충만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 종말에 가서야 인류 구원사가 온전히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공심판과 사심판 사이에 관계가 있다. 죽은 자들이 곧 받는 사심판은 완전한 심판이 아니며, 완전한 심판은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공심판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종말에 가서야 각자 신비체 안에서 행한 역할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때 가서야 각자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자신이 행한 선행과,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행한 악행 또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인간은 자신의 행위들이 창조와 구원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교회 초기에 예로니모(Hieronymus, 341?~420)는 공심판과 사심판의 관계를 면밀하게 정의하였는데, 이는 훗날 스콜라 신학 노선으로 확립되었다. 《신학 대전》에서 사심판과 공심판의 관계를 거론한(Ⅲ. 59q. 5a) 스콜라 신학의 거장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 의하면, 죽은 후 영혼은 불변의 상태에 이르고 그가 행하였던 행위들은 신적인 심판에 놓여지며, 보상이나 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또 세상 종말 때에 이루어질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러한 두 번의 심판은 똑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이 두 번 중복하여 심판함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더 나은 심판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중의 심판은 불합리하지 않다고 역설하였다. 이중의 심판은 각기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사심판 때에 받는 보상은 불완전하며 육신이 분리된 영혼은 인간적으로 비정상적인 조건을 지니며 연옥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모두의 완성은 공심판 때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리서의 가르침〕 한국에서 교리서로 가장 많이 읽힌《상해 천주교 요리》(詳解天主教要理)에는 사심판과 공심판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사심판은 사람이 죽어 육신을 떠난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혼자 받는 것이며, 성총 지위에 있는 영혼은 천국에 오르며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은 지옥 벌에 떨어지고 소죄나 보속할 죄벌이 남아있는 영혼은 연옥 단련을 받게 되는 등 각각 다르게 판결을 받는다. 공심판은 육신이 부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와, 천사들과 모든 사람 앞에서 각 사람의 사심판의 판결을 공포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자신은 자기 공덕과 죄벌에 대하여 잘알게 되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나, 공심판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사심판으로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었지만, 공심판을 통해 인류의 문제가 종결되고, 사회 구성원들 각각이 미친 영향들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또 하느님의 자비와 공의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천사와 악마, 선인과 악인들 모두가 굴복하게 된다고 하였다.
현행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각 사람은 죽자마자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그의 삶을 판결하는 사심판을 통하여 영혼은 영원한 갚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즉 정화를 거치거나, 즉시 하늘 나라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 즉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이다(1022항). 또한 공심판인 최후 심판을 통해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각 사람이 하느님과 가졌던 관계의 진상이 결정적으로 밝혀질 것이며, 각 사람이 지상 생활 동안 행한 선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의 궁극적인 결과까지도 드러날 것이다. 그때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전체에 대한 당신의 결정적인 말씀을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창조 업적의 궁극적인 의미와 구원 계획 전체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모든 것들을 그 궁극적 목적으로 이끄는 하느님 섭리의 놀라운 길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최후 심판은 피조물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한 하느님 정의의 승리를 드러낼 것이며, 당신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1039~1040항). (⇦ 공심판 ; 사심판 ; → 연옥 ; 영벌 ; 영복 ; 종말 ; 죽음 ; 지옥 ; 천국)
※ 참고문헌  Russell Shaw ed., Our Sunday Visitor's Encyclopedia of Catholic Doctrine, Indiana, Huntington, 1997, pp. 360~361/ G. Rotureau, P.O., Jugement Général, 《Cath》 6, pp. 1178~1180/ M. Vidal, P.S.S., Jugement Particulier, 《Cath》 6, pp. 1182~1 185/ J.H. Wright, 《NCE》 8, pp. 30~33/ C. Thomas Moore ed., S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vol. 55, London, Eyre & Spottiswoode, 1975, pp. 129~133/ 尹亨重, 《詳解天主教要理》 上, 가톨릭 출판사, 1957, pp. 251~254, 329~337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pp. 386, 392~394. 〔梁蕙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