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로마의 순교자. 축일은 7월 18일.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 말년에 일곱 명의 아들과 함께 순교하여 로마 인근의 티부르티나 가도(ViaTiburina)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교 행전에 따른 사화〕 심포로사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는 저자 미상의 오래된 순교 행전에 언급되어있다. 여기에 따르면, 심포로사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로마의 호민관 제툴리오(Getulius)의 아내로 로마 근교의 티볼리(Tivoli)에서 7명의 아들 즉 크리셴스(Crescens) · 율리아노(Julianus) 네메시오(Nemesius) 프리미티보(Primitivus) · 유스티노(Justinus) · 스탁테오(Stacteus) · 에우제니오(Eugenius)와 함께 살았으며, 그녀의 남편 제툴리오는 그녀보다 먼저 가비이(Gab)에서 순교(축일은 6월 10일)하였다고 한다.
티볼리에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은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신탁을 받고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기 위하여 심포로사와 일곱 아들들을 유인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심포로사를 헤라클레스 신전으로 끌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곳에서 그녀는 갖은 고문을 받은 다음 무거운 돌을 목에 매단 채 강에 던져졌고, 티볼리 의회의 의원이었던 그녀의 오빠 에우제니오(Eugenius)가 그녀의 시신을 찾아 도시 외곽에 묻었다. 다음날 황제는 또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일곱 아들들을 다시 유인하였으나 실패하자, 그들을 헤라클레스 신전 공사를 위해 세워 두었던 7개의 말뚝에 나누어 묶게 하였다. 일곱 아들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받다 순교하였으며, 시신은 궁전에 있는 깊은 도랑에 던져졌다. 그래서 이교 사제들은 훗날 이곳을 '흉칙하게 살해된 일곱 명의 장소' (ad septem biothanatos)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비오타나투스' (biothanatus)는 '자살자' 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교도들은 고문받다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이 용어로 지칭하였던 것이다. 순교 행전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후 1년 반 동안 박해가 없었는데, 순교자들의 시신들이 이때 티부르티나 가도에 이장되었다고 한다.
〔사료 비판과 순교록〕 순교 행전이 전하는 이 수난기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식별하기는 어렵다. 이 수난기가 3세기경 아프리카의 율리오(Julius Africanus)에 의해 쓰여졌다는 설도 있으나, 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339)를 비롯한 다른 어떤 역사가들도 아프리카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로마의 순교자 행전이나 이탈리아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는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5세기 말경 익명의 저자에 의해 수집된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에는 심포로사와 그녀의 아들들이 7월 18일에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 언급되는 아들들의 이름은 순교 행전과 다르다. 이 순교록의 사본들 중 하나(Codex Bernensis)에는 이름이 다른 것에 대해, 순교 행전에 언급된 이름과 다른 이름이 기록된 또 다른 "순교 행전이 현존하고 있다" (quorum gestahabentur)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이 순교록에는 6월 27일에 순교한 7명의 형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순교자들의 이름은 순교 행전에서 제시하는 심포로사 성녀의 일곱 아들의 이름과 일치한다.
따라서 심포로사 성녀가 순교한 일곱 아들을 두었다는 전승을 따랐던 순교 행전의 저자는 그녀를 일곱 순교자들의 어머니로 제시한 뒤, 6월 27일에 순교한 일곱 명의 순교자들을 그녀의 아들들이라고 제시하였을 가능성이크다. 만약에 그렇다면, 심포로사 성녀가 일곱 아들을 두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순교 행전에서 제시한 일곱 아들의 이름은 실제 아들들의 이름이 아닐 것이다. 일부 성인 전기학자들은 심포로사의 일곱 아들이, 일곱 아들을 둔 로마의 순교 성녀 펠리치타(Felicitas)의 경우처럼, 마카베오서 7장에 나오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본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70년 이후 간행된 《로마 순교록》 (Matyrologium Romanum)에서는 7월 18일의 순교 성인으로서 심포로사와 순교 행전에 나오는 일곱 명의 순교자 이름을 수록하고 있다.
〔역사성과 공경〕 17세기에 보시오(Bosio)는 로마에서 9마일 정도 떨어진 티부르티나 가도의 '일곱 형제들' (le Sette Fratte)이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대성전의 유적을 발견하였는데(Roma Sotteranea, 105~109), 이 장소는 순교 행전과 《예로니모 순교록》에서 심포로사와 아들들의 무덤으로 제시한 지점과 일치했다. 그리고 스티븐슨(Stevenson)에 의해 폐허로 남은 대성전이 그들의 무덤 위에 세워졌던 것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즉 752년에 교황 스테파노 2세(752~757)에 의해 로마의 페스카리아(Pescaria)에 있는 성 안젤로 성당으로 이장된 유해가 그것이다.
1610년 이곳에서 발견된 한 석관에는 "여기에 스테파노 교황에 의해 이장된 순교 성녀 심포로사, 그녀의 남편 조티치(제틀리오)와 그의 아들들의 유해가 있다"는 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티볼리 교구에서는 현재 그들을 수호성인들로 공경하고 있다.
※ 참고문헌 Michael Ott,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4, Remy Lafort, S.T.D., 1912/ Victor Saxer, 《LThK》, pp. 1167~1168/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469/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The Penguin Group, 1983, p. 126/ 《MartRom》, pp. 171, 339. 〔편찬실〕
심포로사 (?~?)
〔라〕Symphor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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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